5. 동강의 전설
동강 할미꽃과 전산옥을 찾아서
동강의 전설
정선의 동강변에 있는 문희마을에 시집온 처녀가 있다. 그녀는 같은 고을인 미탄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그의 아버지 박씨는 빈농으로 먹고살기가 힘들어 살림밑천이라고 하는 큰딸을 나락 열섬 값을 받고 문희마을의 전씨댁으로 팔다시피 하여 치웠다. 시집온 박씨 며느리는 그런대로 살기가 괜찮은 시댁에서 보금자리를 터서 시아버지와 시어머니의 사랑을 받으면서 잘 살아갔다. 그녀의 남편은 한쪽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이었으며, 그것은 어릴 적에 산에 버섯을 따러갔다가 실족을 하여 한쪽 다리를 절게 되었던 것이다. 몸은 장애를 안고 있지만 마음이 곱고 성실하였으며 박씨 부인을 잘 챙겨주었다.
어느 날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다가와서 살며시 말을 한다.
“애야, 밥 먹다가 구역질을 하던데 혹시 입덧이 아니더냐. 어서 떡두꺼비 같은 손자 놈을 받아서 불알을 한번 만져보고 싶다. 오늘부터 큰 일은 내가 다할 테니 그냥 편안하게 쉬어가면서 잔일만 해라.”
“어머님, 저도 애가 들어선 것 같기도 한데 바람대로 아들을 낳았으면 좋겠습니다. 다행히 씨가 잘 들어앉았으니 아들을 되는데 까지 낳아 보겠습니다. 저도 오늘부터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치성을 드리겠습니다.”
“아이구, 우리 며느리가 착하기도 하지. 어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한단 말이고. 너그 시아버지가 독자라서 외롭게 살아서 아들을 넉넉하게 낳아 자손을 번창하게 하려는 꿈이 절실하더라.”하고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이야기를 나눈다.
박씨 부인은 시부모님의 성원으로 아쉽지만 첫 번째는 딸을 낳았다. 시부모와 남편은 겉으로는 서운한 기색은 보이지 않았지만 속내는 아마 아쉬워하는 것 같았다. 자신도 큰딸로 태어나서 자기 할머니가 살림밑천이니 힘을 내라고 말한 것도 어머니로부터 들은 적은 있지만, 사실상 스스로의 마음을 달래기 위한 방편이었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다. 하늘은 무심한지 시부모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연속으로 딸을 낳아 이미 세명이나 되었다. 박씨 부인은 하늘이 캄캄하고 시부모와 남편 보기가 어려워 뒷산에 올라가 실컷 울다가 내려왔다. 그녀는 다시 한번 아들 낳는데 도전하기로 하였다. 문희마을 옆에 있는 산신각에 매일 들러 지극 정성으로 빌었고, 절매나루가 있는 무당소에도 마른 고추를 던져가며 아들 낳기를 빌었다. 이런 지극정성에 하늘도 감동하였는지 그해 가을에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았다. 비로소 긴 세월이 지나 집안에 참다운 웃음꽃이 피기 시작하였다. 그날 시어머니가 그에게 한 말이다.
“아, 야야. 아들을 낳는다고 너무 고생했다. 내가 니 마음을 어찌 모르겠나. 여자의 일생이라는 것이 이렇게 슬프기도 즐겁기도 하지만 참으로 기구하다고 보면 된다. 너는 남편에게 잘하고 시부모에게도 잘하는 효부열녀이느니라. 내가 오늘 나루터에 나가 튼실한 가물치를 한 마리 구해다가 푹 고와줄께. 미역도 한뭇을 이미 챙겨놓았다.”하고 며느리의 심정을 잘 헤아려 따뜻한 말로 다독여 준다.
세월은 흐르고 흘러 박씨 부인은 큰 딸을 아우라지로 시집보내고 둘째 딸은 여량으로 막내딸은 영월 거운마을로 모두 다 출가시켰다. 막내인 아들은 집안의 가업을 이어 몸이 불편한 남편과 함께 머슴을 들여 밭농사를 지으며 그럭저럭 살아갔다. 이제 시부모님은 다 떠났고 그녀 자신이 사실상 집안의 기둥이 되어 남편을 부축하고 아들을 다독이며 한 많은 산골이자 강변생활을 해나갔다. 이제 나이도 빠르게 먹어가고 머리숲은 점점 하얐게 변해갔다. 큰 사위와 둘째 사위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뗏목을 실어 나르는 떼꾼이 되어 동강물 위에 운명을 걸고 살아 나갔다. 막내딸은 거운마을 만지나루에서 강가에서 배를 띄워 물고기를 잡고 산에 올라 버섯이나 약초를 캐면서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다. 박씨 할매의 아들은 다행히 몸도 튼실하고 부지런하여 밭에다가 수수며 채소를 심어서 내다 팔아 그런대로 잘 살아갔다. 손자도 보고 손녀도 다 보았기에 전씨 가문에 대한 의무를 다하였고 이제는 출가외인이라지만 딸들이 자신이 그래왔던 것처럼 잘 살아가기를 바랬다. 출가하면 친정을 잊고 살아야 하는 미덕을 알고 그렇게 딸들에게 가르쳤지만 마음 한켠으로는 딸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느 날 나루터에 사는 할매로 부터 흉흉한 소문을 들었다.
“아이구, 요 아래 황새여울에서 떼가 뒤집혀 뗏꾼들이 거센 강물에 실려갔다고 하는데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른다고 하데. 아우라지에서 출발하였으니 떼꾼들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어떻게 그 험한 물살을 벗어날 수가 있겠는가.”
“뮈시라꼬. 그 뗏목이 아우라지에서 출발하였다는 게 정말인가. 매년 황새여울에서 그런 사고가 나던데 우리 사위들이 아니기를 빌어보네. 참으로 먹고살기가 힘드니까 목숨을 걸고 떼를 타야 하니 어찌 하겠는가.”하고 박씨 할매는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말을 한다.
드디어 비보가 들려왔다. 여량에 사는 둘째 사위가 강물에 쓸려가서 시신이 영월 덕포에서 발견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박씨 부인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비통해하였고, 그런 비정한 세월이 미워졌다. 바로 앞에 흐르는 동강물소리가 무슨 악귀의 고함처럼 무섭기도 하였으며, 둘째 딸의 서러움을 생각하니 밥 한술도 목을 넘어가지 않는다. 예로부터 부모들이 딸은 출가외인이니 다 잊어버리고 죽어도 그 집의 귀신이 되니 잘 살던 못 살던 저들의 팔자라고 여기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렇지만 박씨 할매는 그럴 수가 없었고 둘째 딸이 불쌍하게 보였다.
해가 바뀌어 박씨 할매는 어렵게 살고 있는 둘째 딸이 있는 여량으로 찾아간다. 그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딸에게 한마디를 건넨다.
“야야, 너그 서방이 그런 변을 당하여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나. 내가 굶어 죽더라도 그 떼는 타지 말라고 그랬는데 지금 말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우짜던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아이들 키우면서 새로운 낙을 찾아야 한다. 알긋제.”
“아이구, 어매. 나는 지긋지긋한 이 세상이 살기가 싫다. 시부모 모시고 애들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면 돈을 벌어야 하는데 논이 있소, 밭이 있소. 그러니 먹고살라고 그 위험한 떼를 타게 된 게 아니오. 어매는 어찌 우리들 키웠는지 지나고 보니 그 마음을 알겠데.”
“오냐, 여자의 일생이라는 게 하늘이 정해준 것이라 인력으로는 바꾸지를 못하다고 안 하더나. 그러니 친정집을 잊어버리고 시집의 귀신이 돼라 안 하더나. 그런데 나는 너가 친정을 찾아오지 못할 거라는 걸 알고 직접 찾아왔다. 우리 순아! 어떻던가 자식들을 보아서라도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알긋제.”
“야, 오매. 이제 나도 친정을 잊은 지 오래이니 오매도 날 찾아오지도 생각하지도 마소. 죽어나 사나 이 산골에서 나물이나 뜯어먹어면서 애들을 키워볼 테니 나를 잊어버리라. 사람이 정신만 차리면 죽기야 하것소.”하고 둘째 딸이 눈물을 한 움큼 훔치더니 비장하게 말을 한다. 박씨 할매는 지니고 있던 몇 푼 안 되는 돈을 살며시 딸의 손에 쥐어준다.
이렇게 둘째 사위가 뗏목을 타다가 죽고 나자 박씨 할매는 모든 게 운명이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바로 잡아갔다.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논은 말할 것도 없고 밭 한 뙈기 가지기도 힘든 현실에서 뗏목을 타는 일밖에 더 있겠는가. 그냥 욕심 없이 아이들 밥 안 굶기고 하루하루 살면은 그것이 복이라고 믿었다. 박씨 할매는 마음이 울적하면 한 번씩 올라가는 조상들 산소터에 앉아서 무슨 물뱀처럼 흘러가는 동강을 고개를 숙여 바라보며 한바탕 욕지거리를 퍼붓는다. 똑같은 강인데 그 오래전 아들을 낳았을 때는 용왕께도 고맙다고 절을 하고 그랬지 않았던가. 그때는 동강물이 징그러운 뱀이 아니라 끊임없이 솟아나는 어머니의 젖줄처럼 보이지 않았던가. 박씨 할매는 마음이 서글플 때면 항상 그곳을 찾아가서 욕하기도 또 빌기도 하였다. 자기 아들은 그래도 아버지가 다리가 불편한 것을 대신하여 며느리 하고 억척같이 일했다. 자기 집은 그래도 남편의 거동이 불편한 것 외에는 큰 걱정은 없는데 출가외인이라고 잊어버려야만 하는 딸들의 걱정이 떠나가지 않는다. 어찌 보면 자신의 잘못이라고 여겼다. 처음에 딸이 아닌 아들이 태어났더라면 더 이상 낳으려고 하지 않았을 텐데 그넘의 아들을 얻으려고 계속 딸을 낳아 기어코 고생을 시키고 말았으니 마음이 아프다.
또 세월은 몇 년이나 흘러가고 박씨 할매의 주름살은 깊어지고 머리숲은 백발로 뒤덮였다. 조용한 가운데 슬픔은 남모르게 당도하는 것인가. 기쁨도 없었는 바는 아니지만 그것을 잘 못 느끼는 게 사람인 것 같다. 얼마 전 아들이 둘째도 고추 달린 놈을 낳아 삼대독자를 면한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이던가. 기쁨 뒤에는 어김없이 슬픔이 당도하는 것인지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다. 큰 사위가 이번에는 뗏목을 타다가 영월 삼옥리 둥글바위에 떼가 부딪혀 박살 나 죽고 말았던 것이 아닌가. 둘째 사위가 죽었을 때 떼를 안 타겠다고 단단히 약속을 해놓고 배운 것이 떼를 모는 것이라 그 일에 손을 놓지 못했던 모양이다. 박씨 할매는 이제 울힘도 없고 해서 그냥 실성한 사람처럼 허허 웃고 말았다. 그런데 가만히 있자니 울화가 치밀어 견딜 수가 없었다. 사위들의 안전을 위한다고 산신당에 치성을 드리고 무당소에 하던 용왕굿도 이제 안하기로 하였다. 제일 가고 싶은 곳은 시부모를 모신 산소터이었다. 칠족령 가는 길에 있는 산소터는 훤히 터여 마음을 달래기에는 좋은 장소이다. 산소터 옆에 있는 방석같이 생긴 바위가 항상 앉았다가 오는 장소이다. 얼마나 앉았던지 바위의 표면이 빤질거릴 정도이었다.
박씨 할매는 어찌 보면 유교의 예법을 거스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냥 출가외인이라 생각하고 발길도 끊고 소식도 끊고 하였으면 그 슬픔도 모르고 살아갔을 텐데 무슨 집착인지 딸들에 대한 걱정을 한시도 놓지를 않으니 말이다. 박씨 할매는 절대로 안 찾아간다고 마음먹었던 아우라지에 있는 큰딸집을 찾아가서 딸에게 이야기를 한다.
“아이구, 연아! 무슨 이런 낭패가 다있노. 둘째 사위가 물에 빠져 죽었으니 당연히 떼를 안탈줄 알았는데 왜 그랬을까. 먹고살고 자식 키우기가 어렵다는 건 알지만 얼마 전에 동서가 죽는 것을 보았다면 그만두는 게 도리가 아닌가.”
“어매, 왜 내가 안 말렸겠는가요. 나한테 절대로 안 탄다고 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하였는데 저그 친구들이 남자가 한길을 가야지 겁을 먹고 빠져서는 안 된다고 바람을 넣었던 모양이요. 또 대대로 뗏목을 타던 집안이었으니 그 피는 못 속이는 모양이요.”
“우짜던가 마음 단단히 먹고 새끼들 잘 키우고 살아가야 한다. 여량에 사는 너그 동생도 자주 만나면서 서로 힘이 되어주어야 한다. 니가 친정집에 맏이이고 또 너그 할아버지가 살림밑천이라고 좋아하고 안 그랬나. 어찌하던지 너그 세명의 자매인 둘째 순이, 막내 옥이, 너 연이는 억척스럽게 살아가고 출가외인은 친정집인 우리 집에는 안 오더라도 너그들은 왕래를 해야 한다. 알긋제.”
“야, 어매. 어매는 이제부터 나를 찾아오지 마소. 집에는 아버지도 있고 남동생도 며느리도 있고 손자들도 있는데 거기에 신경 쓰야지 내한테 뭐할라고 신경쓰노. 내가 시집갈 적에 출가외인이라고 친정을 잊어라고 하더만 어매 자신은 거꾸로 나를 찾고 있으니 분명 병인 것 같다. 오지 마라, 알긋제.”하고 모녀는 아쉬운 이별 인사를 한다.
분명히 큰딸이 말했듯이 박씨 할매는 딸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지 못하는 병에 걸린 것이 맞는 것 같다. 다른 수많은 어머니들 마음도 박씨 할매와 같은데 겉으로 표현을 안 해서 그런가. 그것이 맞을 것이다. 왜 어머니가 지식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안 보고 싶겠는가. 단지 살아가기가 힘든데 딴 곳에 신경을 쓰지 말고 지금 그 자리의 일에만 집중하라는 뜻이 있을 것이다. 죽어서는 시집의 귀신이 되고 그녀가 뿌린 씨앗이 퍼져서 대를 이어가지 않는가. 자꾸 찾으면 딸들은 친정을 생각하게 되어 굳건한 마음이 흔들릴 수가 있으니 비정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제 갈길을 확실히 가라는 뜻일 것이다.
박씨 할매의 막내딸은 문희마을에서 조금 아래쪽에 있는 영월 거운마을에 살고 있다. 큰딸과 둘째 딸이 교통이 불편한 동강 위쪽에 있지만 막내는 강변길을 따라서 반나절을 걸어가면 만날 수가 있다. 두 명의 사위를 잃고 난 후에 박씨 할매는 막내사위에게 당부하려고 딸네집으로 간다. 가까이 있다 보니 서로 왕래도 잦았고 막내딸이 어미한테 정을 덜 받았는지 자주 찾아온다. 자기 아버지가 헛기침을 하면서 출가외인이 왜 왔느냐고 눈치를 보이지만 속으로는 사위하고 오는 것이 싫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막내사위는 거운마을 강가에서 뗏꾼들을 상대로 숙박도 하고 민물매운탕을 끓여서 팔기도 한다. 그런대로 큰 고생을 하지 않고 잘 살아가는 편이고 나머지 사위들처럼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뗏목을 타지 않으니 조금은 안심이 된다. 막내딸은 박씨 할매를 닮아 인정이 많고 또 눈물도 많았다. 한마디로 남의 슬픈 이야기를 들으면 자기 일이나 되는 것처럼 같이 울고 하는 것은 물론이고 기억력이 좋아서 자기 어머니로부터 들은 동강변의 이야기를 남들에게 들려주곤 한다. 떼꾼들이 들이닥치면 그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그들이 술이 한잔 들어가면 의례히 하는 술주정을 잘 받아주기도 하는 생각이 탁 트인 여인이다. 한 번씩 짓궂은 떼꾼들이 노래를 한번 청하면 남편이 슬며시 자리를 비워주는 틈을 타서 애절한 정선아라리를 불러주곤 한다. 다 그게 그의 어머니로부터 듣고 배운 것이기에 장사를 잘하게 되는 것이 어머니 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막내사위는 숙박하는 떼꾼들의 매운탕거리를 장만하기 위해 바로 앞에 있는 만지소에서 거물을 치고 걷고 하는 다소 덜 위험한 일을 한다. 그물을 치고 걷기 위해 나룻배를 강 한가운데로 왔다 갔다 하지만 숙련된 기술로 무난하게 잘 해왔다. 문제는 강물이 불어나면 강 중심에 회돌이가 한 번씩 생겨 그곳에 갇히면 빠져나오기 힘들지만 그런 일은 지금껏 없었다. 막내딸의 이름은 산옥이고, 성은 전씨이니 전산옥이가 되는 것이다. 이제 만지나루의 전산옥이라고 하면 떼꾼들에게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또 그 집을 키워준 것은 그녀의 음식 솜씨가 우선이지만 떼꾼들의 청을 잘 들어주는 후덕한 여인이라는 것도 있다. 또 하나 빠뜨릴 수 없는 것은 자기 언니들의 서방이기도 자기의 형부이기도 한두 명의 떼꾼들이 만지나루에 항상 숙식을 하도록 동료들에게 소개를 해준 것도 큰 몫을 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박씨 할매에게 비보가 들어왔다. 막내 사위가 만지소에서 그물을 건져 올리다가 회돌이에 빨려 들어가 죽었다는 소식이었다. 참으로 있을 수 없는 슬픈 소식이었고 어찌하여 몇 달 전에 보았듯이 멀쩡하던 사위가 눈감고도 배를 젓던 그 만지소에 빠져 죽었다는 말인가. 한 번씩은 어느 가정에 불의의 사고가 일어나지만 박씨 할매에게는 끊임없이 일어나니 정말로 기구한 운명이라고 가슴을 쳤다. 그녀가 둘째 사위와 첫째 사위를 강물에서 잃고 분노하여 산신당에 비는 것을 끊고 용왕제에도 참여를 안 하였기에 동강의 물귀신이 잡아간 것인가. 또 칠족령 밑 산소터에 올라 얼마나 동강물을 저주하였던가. 그게 죄업이 되어 화가 막내사위에게 미친것인가. 박씨 할매는 끝없이 닥쳐오는 딸들 집의 불운에 치를 떨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 누가 한말처럼 딸들에 대한 집착이 몰고 온 병이기도 한 것일까. 그렇지만 아들을 낳겠다고 계속 딸을 낳은 자기에 대한 책임도 피해 갈 수가 없다고 믿는 모양이다.
이제는 더 이상 잃어버릴 사위도 없고 오직 딸들 만이라도 마음을 다잡고 잘 살아가기를 비는 도리 밖에 없다. 박씨 할매는 백운산 자락의 칠족령 가는 길에 있는 산소터 방석바위가 자신을 달래주는 유일한 장소가 되어버렸다. 더 이상 동강을 향해서 욕을 할 힘도 없이 그냥 꾸부정한 허리로 목을 꺾어 바라보기만 하였다. 산신에게 빌고 용왕에게 비는 것도 다 허튼 짓이며 오직 사람의 운명은 타고난 것이라고 믿었다. 박씨 할매는 아무도 듣지도 않는 정선아라리를 구슬프게 불러본다. 어린 딸들이 시집가기 전에 한 번씩 불러주었는데 그 노래의 이야기가 자신들의 운명을 대변하여 주었단 말인가. 박씨 할매는 이제부터 딸들을 출가외인이라고 다시 여기며 집착에서 벗어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제는 세월도 많이 흘렀고 몸도 쇠약해져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다스는것만 해도 부담이 되기에 자연스레 잊혀지기도 했다. 나이가 드니 그 좋던 기억력도 약해지고 한 번씩 아들이나 며느리에게 헛말을 하기도 하였다. 칠순을 넘겼으니 살만큼 살았으니 이제 동강물의 흐름처럼 그냥 유유히 흘러가기를 바랐다.
이제 딸들이 어찌 사는지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기다리지도 않았다. 박씨 할매가 절대로 찾아오지 말고 친정을 잊으라고 한 약속을 지켰는지 소식이 없었다. 그렇지만 한켠으로는 서운한 게 없잖아 있었고 살아가기가 어려워서 그런가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어찌 어미라는 사람은 자식들을 잊지를 못하는 것인가. 운명적으로 그렇게 태어나서 그런 건지 잊기로 마음먹었지만 그럴수록 그리워지기도 하였다. 단지 바라는 것은 모든 과거의 기억을 상실해 버리는 그 기억상실증이라는 증상만이 해결해 줄 수가 있는 것일까.
세월은 다시 흘러 이제 박씨 할매가 세상을 더났다. 작년에는 남편인 전씨 할배가 떠났으니 더 이상 딸들에게 부모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딸들은 소식이 없이 살아갔지만 유독 막내딸인 산옥이는 문희마을과 가까이에 있어서 자주 왕래하였기에 언젠가는 어머니 산소를 찾아가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지금은 남편도 떠나보내었으니 자식새끼를 먹여 살리기 위해 자기 어머니가 했던 것처럼 억척스럽게 살아가야만 한다. 자신이 하고 있는 숙박집은 이미 그의 이름을 붙여서 그런지 전산옥이라고 떼꾼들에 게 알려지고 집도 전산옥이요 이름도 전산옥이었다. 본래 그의 할아버지가 산에서 나는 귀한 옥이 되라고 해서 붙여준 이름이 아니던가. 그의 이름대로 옥처럼 사는 게 어떤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어느 날 아우라지에서 출발한 뗏목이 만지나루에 도착하였다. 그 떼에 타고 있던 떼꾼 네 명이 줄을 지어 들어와서 대청마루에 걸터 앉는다. 얼굴에는 아직 긴장이 안 떨어져 나간 것인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잔뜩 굳어있었다. 아마 내려오다가 죽을 고비를 넘긴 것이 분명하다. 먼저 수염을 길게 기른 앞구잽이 같은 떼꾼이 말을 건다.
“주모, 오늘 이곳에서 하루 숙박을 해야 하니 잠자리를 정해주소. 그리고 먼저 탁배기나 먼저 주고 안주는 천천히 주도 돼요. 아이구 아직도 온몸이 떨리네. 지금까지 그런 겁나는 여울물길은 처음이네.”하고 앞구잽이인 김생원이 말을 한다.
“보아하니 안면이 있는 선부님들 같은데 오늘 낭패를 당할 뻔 하셨나 보지요. 며칠 전 큰비가 내려 이곳 만지나루도 물이 불어나 우리 집 삽작까지 물이 출렁이니 말 다했지요. 어서 대청마루에 앉아 발을 뻗고 좀 쉬시지요. 먼저 탁배기에다 김치부터 먼저 드릴께요.”
“아이구, 빨리 술이나 먼저 주소. 심장이 떨려 숨을 제대로 못 쉬겠소. 이넘의 뗏목을 안 타려고 했는데 어디 가난이 가만 놔두지를 않네. 죽으나 사나 밥 먹고 살려면 이길 밖에 없으니 답답할 따름이요. 나도 조그만 주막집이나 차려서 살아볼까도 생각해 보았소.”하고 겁이 좀 많은 양춘봉이 말을 한다.
“아이구, 선부어른 주막을 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고나 하십니까. 남자들의 막장이 떼꾼이라면 여자들의 막장은 주막이라는 걸 왜 모르세요. 남편들은 자존심이 많이 깍이고 여자들은 고생도 고생이거니와 취한 사람들 주정을 받아주어야 하고 희롱도 당하니 할 짓이 아닙니다.”
“허허, 그래도 눈 딱 감고 일하면 목숨을 부지하고 새끼들 굶기지는 않는 게 아니요. 서방이 눈을 반쯤 감으면야 그 넘의 희롱도 넘길 수 있지가 않겠소. 하기사 성질머리가 급한 우리 떼꾼들은 그런 거 보고 넘어가지는 못하지만서도요.”하고 잠잠히 있던 강선달이 한마디 거든다.
“지도 먹고 살길이 없어서 남편하고 주막을 열었지만 웃지 못할 사연들이 많이 있지요. 뭐 술 취한 떼꾼이 닷자 곳자 잠자리 한번 하자는 둥, 술상을 차리려고 오면 궁둥이를 툭 치기도 하고, 음담패설은 그냥 양반이지요. 그러니 서방 있는 여자는 주점을 못한다고 보면 됩니다.”
“아따, 돈 벌어 묵고 살기가 그냥 되는지 아시요. 그러니까 떼꾼들에게는 외상이 아닌 현찰로 받고 바가지도 좀 씌우는 게 아니요. 죽다 살아난 사람이 제일 먼저 찾는 게 술과 여자라고 안 하던가요. 보아하니 서방님도 안 계시는 것 같은데 문을 활짝 열어봐 주소. 주막에 대문이 없는 게 다 그래라고 한 게 아니요.”하고 좀 응큼한 박수돌이 술이 좀 오르는지 실언을 한다.
“야, 이봐라 수돌아. 니가 아무리 주막이지만 그런 방정맞은 소리를 하지 말라고 당부를 안 하더나. 뗏목이 한양에 도착할 때까지 마음을 깨끗이 하라고 말이제. 그냥 술이 한잔 들어가면 무슨 음흉한 소리를 하는지 제버릇 남주기 힘들다더만 딱 그대로이네.”하고 앞구잽이인 김생원이 호통을 치면서 입을 틀어막는다.
“아이구, 선부님들이 그런 말을 하면 어때서요. 저는 하나도 기분이 안 나쁘고 그 심정을 이해하니 개의치 마십시요. 자, 이제 매운탕하고 산채안주가 들어오니 거나하게 자시고 푹 주무시세요. 내일 아침에 다시 출발하여야 하니 과음은 하지 마시고요.”하고 전산옥 주모가 푸근한 말을 해준다.
떼꾼들과 전산옥 주모의 이야기는 계속되고 자신들의 처지도 대충 말하면서 밤은 깊어간다. 전산옥은 자기 형부들 두 명이 황새여울과 둥글바위에서 죽었다고 말하고, 서방 역시 만지소 된꼬까리에 빨려 들어가 목숨을 잃었다는 것을 말하니 모두들 서로를 위로한다.
“아이구, 그러고 보니 여량에 살던 김모씨가 둘째 형부되신다는 말씀이시네요. 저희들 보다는 몇년 아래이지만 먹고 살라고 열심히 살았는데 오래전 황새여울에서 못 빠져 나왔지요. 그때 초상칠 적에 우리들이 가서 많이 도와주었지요. 아마 자기 처갓집이 문희마을이라고 하던데 맞는가 모르겠소.”
“또 둥글바위에서 죽었다는 아우라지에 사는 분은 또 큰형부가 된다고 하니 정말 기구한 운명이요. 그분은 우리 마을에 같이 살았는데 제법 뗏목을 잘 모는 앞구잽이로 이름이 나있었지요. 지금 아마 부인이 주막을 하고 있을게요. 서로 간에 연락을 잘 안 하는 모양인데 여기 만지나루에 숙박할 때면 그 언니들의 소식을 전해주리라.”
“아이구, 선부님들께서 저를 많이 위로해주시네요. 이제부터는 저가 선부님들을 즐겁게 해 드려야겠네요. 저가 들어 드릴 수 없는 것 빼고 다 들어줄 테니 말씀만 하이소. 인생은 어차피 봄꽃이 되었다가 시드는 것이 아니던가요.”
“허허, 주모께서 술도 한잔 안 하셨는데 흥이 오르시는 모양이오. 이왕 혼자인 자유의 몸인 주인 없는 빈배와 같으니 누구를 태운들 무슨 흠이 되겠소. 고요한 밤 나루에 묶여 있는 주인 없는 빈배가 물결 따라 출렁거리니 그냥 흔들리는 것보다는 삿대저어 물놀이를 하고 싶겠네.”하고 능청스런 양춘봉이 농을 건다.
“이봐라, 춘봉아. 내가 그렇게 입방정 찧지 마라고 당부했건만 그놈의 주둥이는 어쩔 도리가 없구나. 수돌이도 춘봉이도 제버릇 개도 못준다는 게 딱 그 말일세. 전산옥 주모 내 얼굴을 봐서라도 못 들은 척하시게.”하고 뗏목의 책임자이기도 한 김생원이 양해를 구한다.
이렇게 분위기는 익어가고 네 명의 떼꾼들은 긴장도 풀리고 기분도 좋아진다. 이런 낙이 없다면 어떻게 죽음의 길이기도 한 떼를 타겠는가. 그날 저녁을 잘 먹고 마시면서 잠자리에 들었고, 다음날 아침에 어김없이 출발을 위한 준비를 하였다. 이제는 큰 고비인 황새여울을 벗어났지만 다음 고비인 된꼬까리와 둥글바위가 남아있지 않던가. 일행은 다시 떼를 몰고 출발하였고 전산옥 주모는 그들을 배웅하였다. 또 세월이 흐르고 떼꾼들도 바뀌었는지 안 보이는 사람들이 제법 된다. 떼돈을 벌어서 그 위험한 직업을 그만둔 것인지, 물길에 쓸려가서 이 세상을 이별해서 그런지 알 수는 없다. 그런데 아직도 변하지 않은 것은 전번에 들러서 한바탕 잘 놀고 진한 농담도 하고 간 짓궂은 김생원 일행이었다. 그들은 한여름 강물이 그득할 때 다시 전산옥을 찾아왔다. 이제 주모의 이름이 숙박지의 대명사가 돼버린 셈이다. 山玉을 山屋이라고 부르니 山屋의 주인이 山玉이니 둘 다 맞는 셈이다. 이제 전산옥은 떼꾼들이 가슴을 파묻고 자는 여인의 포근한 품이며 잠자리이기도 하였다.
다시 김생원 일행이 전산옥을 찾았다.
“주모 그간 잘 계셨는가요. 꼭 일 년에 두세 번을 보니 오래간만인지 간만이지 어느게 맞는 말인지요. 나는 보고 싶어 오래간만인데 주모는 짓궂게 구니 간만이라고 하겠지요. 내가 언니들 소식을 전해드리리다.”하고 김생원이 빙빙 돌리면서 말을 한다.
“아이구, 김생원나으리께서 말씀을 재미있게 하시네요. 나는 항상 보고 싶었기에 하루라도 못 보면 그리웠기에 오래간만이라고 봅니다. 나는 얌전한 샌님 같은 사람들은 별로 재미가 없고, 박수돌님이나 양춘봉님 같은 능글맞고 응큼한 사람들이 재미있습니다. 김생원님께서 무슨 소식을 전하시려고 하십니까.”
“아우라지에 있는 언니는 주막을 잘 하고 있고 우리들이 그곳에 살고 있으니 자나 깨나 그곳에 가므로 장사가 잘된답니다. 외상이 아닌 현금 박치기이고 안주도 비싼 걸로 시키니 벌이가 쏠쏠하고, 우리 전산옥 주모를 봐서라도 특별히 챙기고 있습니다. 또 여량에 사는 둘째 언니는 논을 사서 아들들이 농사를 지어 잘 살아가고 있고요.”
“아이구, 김생원님께서 긴 수염을 달고 다니시더니 인정도 길쭉하고 끈적찌근하네요. 그렇다고 우리 큰언니는 만인의 연인이니 함부로 손을 대시면 안됩니다. 그냥 꽃이다 생각하고 살짝 만져보고 그 자리에 갖다 놓으시면 됩니다. 꽃도 자주 만지면 시드니까 그것은 어쩔 수가 없겠지요.”
“허허, 전산옥 주모가 이제 농담 수준이 우리들을 능가하군요. 그것도 말이 아닌 시조가락처럼 능수버들 늘어지듯이 흥청거리면서 하는 품이 그야말로 황진이를 능가하는 수준입니다.”하고 조용히 듣고 있던 강선달이 어디서 듣던 노랫가락처럼 한마디를 한다.
“여보시게들, 전산옥 주모가 속이 깊어 우리들이 죽다가 살아나서 좀 헛소리를 하는 걸 눈감아주는 걸로 생각하고 속으로는 존대를 해드리세. 나도 말은 안 해서 그렇지 그냥 뗏목을 못 탄다고 화주에게 말하고 이곳에 푹 빠져 버리고 싶은 심정이 왜 없겠는가. 이제부터는 주모의 애달픈 사연을 알았으니 서로 도와가면서 살아가 보세.”하고 김생원이 말한다.
“아이구, 선부님들이 속정도 깊으셔라. 할 말 못 할 말이 뭣이 있겠는가요. 생사를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에게 무슨 청을 못 들어주겠는가요. 우선 내가 어릴 적부터 우리 어머니로부터 들은 정선아라리를 한두 곡 불러드리리다. 그 노래는 애절하기도 가슴이 설레게 하는 애정편에 나오는 노래입니다.”하고 전산옥 주모가 빙긋이 웃으면서 말을 한다.
드디어 전산옥 주모의 정선아리랑 애정편에 나오는 오래가 떼꾼들의 장단에 맞추어 불러진다.
“정선읍내 물레방아가 주야장창 밤낮없이 물살을 안고 도는데, 우리 집에 서방방님은 날 안고 돌 줄을 모르나......”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네주게, 싸리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 쌓이는 올동박은 낙엽에나 쌓이지, 사시장철 님 그리워 나는 못살겠네.....”하고 전산옥 주모가 두어 곡을 부르고 나니 이어서 떼꾼들의 정선아리랑 떼창이 이어진다.
“그믐달 초생달이 뜨도록 놀다 가세요∼ 황새여울, 된꼬까리에 떼를 띄워 놓았네, 만지산에 전산옥이야 술상 차려 놓게나∼”하고 전산옥 주모와 떼꾼들의 노래가 이어지고, 피곤한 떼꾼들은 스르르 잠이 들어 전산옥의 품속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이렇게 하여 떼꾼들은 전산옥 주모와 친한 관계를 맺고 마음으로는 모든 걸 다 주는 사이가 되었다. 김생원이 이끄는 뗏목이 만지나루에 도착할 때면 아우라지에 사는 큰언니는 음식 하는데 쓰라고 곤드레나물이나 취나물 말린 것을 한 보따리씩 보내오고, 여량에 사는 둘째 언니는 자기가 농사지은 쌀과 보리를 한두 말씩 보내주어 전산옥은 언니들의 얼굴을 못 보지만 마음으로 서로 오가고 있었다. 전산옥이 큰 언니에게 직접 전해주는 것은 없지만 떼꾼들이 주점에 자주 들러 외상이 아닌 현금으로 팔아주니 그녀도 언니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셈이다. 둘째 언니는 곡식을 보내주어 손님 밥상을 차리는데 도움을 주고 있으나, 동생은 줄 것이 없지만 가까이에 있는 친정집에 한 번씩 들러 산소도 대신하여 가주고 하니 그것으로도 충분히 받을 자격이 있었다. 부모님 생전에 문희마을이 만지나루에서 가까이 있어서 오지 말라고 하는데도 자주 친정집을 들러 효도를 다한 데 대해서 고마움의 표시이니 받아도 부끄러움이 없는 것이다.
어느 봄날 전산옥은 아직 뗏목이 내려올 시기가 아닌 한가한 틈을 타서 문희마을에 있는 친정집을 찾아보고 부모님 산소에 들러기로 하였다. 이제 춘삼월이라 강변에는 갯버들이 눈망울을 틔우고 뼝대에는 진달래꽃이 아슬아슬하게 피어있다. 그녀는 어라연을 건너서 강변길을 따라 문산마을에서 잠시 앉아 쉬어갔다. 그곳 문산마을도 떼꾼들의 숙박지이기에 음식점을 하는 몇 명의 과부 친구들이 있어 한 번씩 오가기도 한 곳이다. 다시 그녀는 걷기 시작하여 낮은 고개를 감돌아 미탄으로 갔다. 아직은 물이 불어나지 않아 강변길을 발에 물을 안 적시고 걸을 수가 있었다. 미탄을 지나 곧장 걸어가니 왼쪽에는 백운산이 보이고 좀 더 다가가니 드디어 문희마을이 나타난다. 황새여울은 아직은 잠자고 있는 듯 사납지 않게 흘러간다. 다시 종종걸음으로 가니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문희마을에 도착했다. 그는 곧장 남동생집으로 가서 평상에 앉아 잠깐 쉬고 나서 칠족령 가는 길에 있는 부모님 산소로 갔다. 출가외인이라고 오지 말라고 난리를 치던 부모님이지만 어찌 이곳까지 왔는데 성묘를 안 할 수가 있겠는가. 특히 자기를 산에서 나오는 귀한 옥인 산옥이라고 이름을 지어준 할아버지도 계시지 않던가.
전산옥은 동강이 훤히 내려다는 보이는 전망 좋은 터에 자리 잡은 산소에 도착하였다. 먼저 들고 온 청주와 마른안주를 꺼내어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에서부터 부모님 산소에 잔을 다 올렸다. 그래도 동생이 이곳에 살기에 산소는 허물어진 데가 없고 그런대로 봉분에 잔디도 잘 자라고 있었다. 전산옥은 한참을 산소에서 있다가 챙겨서 내려오기 시작한다. 그런데 어릴 적에 놀던 방석바위를 지나면서 잠깐 쉬어가기로 하였다. 그 방석바위는 얼마나 사람이 많이 앉았던지 푹 꺼지고 반질반질하였다. 그녀는 저 아래 흘러가는 동강물을 한스럽게 바라보았다. 남편을 앗아가고 두 명의 형부들을 집어삼킨 그 강물이 미웠지만 떼꾼들로 인하여 그런대로 살아가고 있지를 않은가.
다시 일어서서 내려오다가 보니 방석바위 밑 경사진 곳에 한 포기 할미꽃이 피어있지 않은가. 허리는 구부러지고 목도 숙인 채 꽃대에는 하얀 털이 무성한 할미처럼 생긴 꽃이었다. 그 꽃은 저 아래 흐르는 동강물을 응시하며 한을 안고 피어있는 것 같았다. 전산옥은 자기도 모르게 그 꽃이 애처로워 살며시 꽃 머리를 쓰다듬어 보았다. 그 순간에 눈앞에 돌아가신 어머니 모습이 보이지 않은가. 손을 뻗어 잡으려고 하니 잡히지 않고 숨어버린다. 그 환영은 봄날의 아지랑이로 피어오르다가 바람에 실려 가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