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배일치에서의 해후
단종의 유배길에서 만난 사람들
배일치에서의 해후
어느 날 친구 동생으로부터 카톡으로 연락이 왔다. 그 내용은 자전거를 타고 서울에서 출발하여 영월까지 갔다 왔으며, 배일치에서 쉬는데 그곳에서 알 수 없는 그리움이 일어났다는 것이었다. 그는 나하고 한 번씩 만나면 재미있는 이야기로 꽃을 피우고 지난날의 추억을 반추하곤 한다. 매사에 적극적이면서도 애절한 사연에는 숙연해지는 감성이 풍부한 동생이기도 하다.
“재식아, 네가 어찌 먼 거리를 혼자서 갑자기 자전거를 타고 갔다 왔단 말이고. 산을 잘 탄다는 건 잘 알고 있지만 취미도 많구나. 대단하다.”
“민식이 형님이 지은 역사기행문을 읽고 갑자기 그곳으로 가고 싶었고, 그것도 마음먹은 다음날 바로 출발하였지예. 형님은 보기보다 상당히 문학적이십니다. 술만 자시고 놀기 좋아하는 걸로 보았는데, 다시 보게되네예.”
"하하, 내가 본래 취미가 없다 보니 쓸데없이 혼자서 산 좋고 물 좋은 곳을 찾아 놀기 삼아 다니다 보니 그런 글을 적었나 보다. 뭐 내용이야 뻔한 거고 그냥 느낀 대로 재미 삼아 적어 보았다 아이가.“
“형님, 책 내용 중에 저가 크게 끌리던 부분이 있던데, 무언가 알 수 없는 그리움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아닙니꺼. 그 길을 따라 자전거로 달려 보았는데 가면서도 익숙한 길이구나 하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었지예.”
“그래, 무엇이 너를 끌리게 하더노.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네. 그리고 배일치는 한번 들어보았던 이름이더나.”
“배일치는 처음 알았고, 형님이 군등치에서 출발하여 배일치까지 가는 장면을 연상하니 내가 한번 걸었던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 팍 옵디다.”
“그러면 다음에 한번 만나서 그 느낌을 소상하게 들어보자. 좀 신기하기도 하네. 나도 배일치를 끌어당기는 무엇이 있어 자주 가게 되었긴 하다.”하고 재식이와 오랜만에 나눈 카톡 대화이다.
재식이는 나의 책을 읽어보고 영월편에 나오는 ‘배일치에서의 해후’의 장면에서 옛 기억과 감응한 모양이다. 그는 현생에서는 배일치를 가본 적도 없고 관심의 대상도 아니었는데 분명 숨어있는 전생의 기억이 발동하여 그랬을 것이라고 짐작해 본다. 어떠한 추억이 강렬하게 발동하여 새벽에 서울을 출발하여 단종의 유배길을 따라간 것일까. 그는 자전거로 단종과 정순왕후가 이별한 영도교를 출발하여 광나루, 여주 이포나루, 원주 신림을 거쳐 황둔, 주천을 지나 군등치를 넘어가서 배일치에 당도한 것이다. 엄청나게 먼 길을 혼자서 자전거로 주행한 그의 체력도 체력이거니와 배일치를 가고 싶어 하는 강렬한 끌림에 궁금증이 더해졌다. 나는 그가 분명 단종의 유배길에서 만난 옛사람일 것이라고 상상해 보며 그 장면들이 떠오른다.
단종의 유배행렬이 원주 신림을 거쳐 싸리재를 넘어 주천면에 들어섰다. 가는 길가에는 단종의 얼굴을 보고 배알 하려는 백성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물 한 바가지를 올리려다가 호송군졸에게 밀려 바가지를 깨고 넘어져 우는 할매와 단종임금에게 가까이 다가가 절하려다가 채찍에 맞아 한숨짓는 늙은 선비도 있었다. 그중에서 특이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 이름은 차성복이었다. 한여름 덥고 덜컹거리는 수레 위에서 시장기가 든 단종이 내시 홍득경에게 먹을 것을 좀 달라고 하니 난감해 하자, 호송책임자인 첨지중추부사 어득해는 자꾸 달라고 보채고 성가시게 굴면 걸어서 가게 하라고 냉정한 명령을 내린다. 이런 사연을 듣고 원주에서부터 단종의 행렬을 계속하여 따라온 차성복은 마음이 아팠다.
차성복은 강원도 고을을 오가는 보따리 상인이다. 그는 동해안에서 구해온 황태 등 건어물을 짊어지고 다니면서 오일장에서 전을 열고 팔아왔다. 그날따라 단종이 옛날 신하에게 홀대를 당하는 것을 보고 참을 수 없는 비애를 느꼈다. 그는 날이 저물어 유배행렬이 주천강변의 명라곡 주변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틈을 타서 단종임금을 배알한다. 그리고 은밀히 준비한 어포가 들어간 백설기를 들고 임금 앞에 엎어지면서 땅바닥에 머리를 박고 흐느끼면서 말한다.
“임금님, 아무것도 도와주지 못하는 이 무지랭이의 불충함을 용서하소서. 시장함을 못 견디는 임금님의 청을 들어주지 않는 비정함에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비록 보잘것없는 음식이지만 정성 들여 만든 이 백설기를 품에 넣어 시장할 때마다 꺼내어 드십시요. 아무튼 옥체를 잘 보존하시옵소서.”
“그래, 그대의 충성심에 내 마음도 찡하게 울리오. 임금의 체통을 잃어버리고 먹을 것을 구걸하는 내 처지가 참으로 안타깝소. 그대의 이름이 어떠한지 기억해 두리다.”
“소생은 강원도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건어물을 파는 비천한 장사아치인 차성복이라고 합니다. 저의 이름을 기억하지 마시고 지금 이곳에는 없지만 목숨을 다 바친 만고의 충신들을 기억하소서.”하고 차성복은 단종을 배알하고 눈물을 훔치면서 뒷걸음으로 침소를 빠져나왔다.
그다음 날에도 그는 유배행렬을 따라갔다. 장사도 팽개치고 갈 수 있는데 까지 임금의 얼굴을 보면서 가보자고 무더운 햇볕이 내리쬐는 행길을 수행승처럼 묵묵히 걸어갔다. 명라곡을 지나 가파른 고개를 넘고, 쉼터에서는 멀리 떨어져서 쉬고, 행렬이 움직이면 같이 따라갔다. 긴 유배행렬의 선두에는 군졸이 다음에는 단종을 태운 수레가, 그 뒤에는 중추부사 어득해를 비롯한 호송책임자가 따랐다. 멀리 떨어진 꽁무니에는 이름 없는 선비와 차성복과 같은 민초들이 뒤따랐다. 한참을 걸어가니 또 가파른 고개가 앞을 가로막는다. 배일치이다. 출발한 지 한나절이 지났고 군데군데서 쉬다 보니 해도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갈 태세이다.
단종의 유배행렬이 배일치에 이르렀다. 가파른 고개를 치고 올라왔으니 수레도 지치고, 군졸들도 지쳤기에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수레에 타고 있던 임금은 영월이 가까워지자 불안해하였다. 도착하면 육신은 편안하겠지만 다가올지 모를 불길한 예감이 그를 괴롭힌다. 어득해의 명령에 따라 단종은 수레에서 내려 쉬도록 한다. 그때 단종의 앞에는 영월 쪽으로 저물어 가는 불그스름한 해가 서쪽 하늘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단종은 저무는 해를 향하여 절을 올린다.
“천지신명이시여, 나의 운명을 잘 다스려주소서. 불안하게 흔들리는 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소서. 나의 죄가 무엇인지 알려주소서. 먼저 떠나간 신하들을 보살펴 주소서.”
“하늘에 계신 세종대왕님이시여, 능력이 부족하고 덕이 없는 저가 사직을 지키지 못한 것을 용서해 주소서. 백성들이 울지 않고 평안한 시절을 누리게 하여 주소서.”하고 단종은 삼배를 하며 간절하게 빌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속이 깊은 군졸들은 돌아서서 눈물을 훔치기도 하였다. 이렇게 하여 단종의 7일간에 걸친 호송은 다음날 아침에 끝을 맺고 청령포에 마련된 배소에 안치되었다. 유배행렬을 따라간 차성복도 마지막 떠나는 단종의 수레를 향해 절을 하고 영월에서 헤어졌다.
몇 달이 지나서 나는 재식이로부터 또 다른 연락을 받았다. 배일치를 거쳐 영월을 다녀간 후에 꿈을 꾸었는데, 자기가 차성복이라는 사람이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민식이 형님, 저가 배일치를 다녀 온후 꿈에 단종임금이 한 번씩 나타나서 백설기를 맛있게 먹게 해 줘서 고맙다고 말씀을 하시는 게 아닌가요. 나는 깜짝 놀라 꿈을 깨보니 머리맡에 다시 읽다가 접어 둔 형님의 책이 놓여있지 않던가요. 참 신기하여 형님에게 카톡으로 보내드립니다.”
“오, 그래. 참 신기한 일이네. 단종 임금이 너에게 백설기를 주어서 고맙다고 하니 말이다. 아마 전생에 틀림없이 차성복이었을 것이야. 산이 좋아 오르고 걷기를 좋아하고, 또 자전거를 잘 타니 그 유전인자를 간직하고 있는 모양이야.”
“형님의 책이 잠자고 있던 나의 전생의 기억을 되살렸나 봅니다. 영월 청령포에 갔더니 왕방연의 시비도 보았고, 장릉도 들렀으니 단종임금과 분명히 인연이 닿았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왕방연 시비에 적힌 시를 읽으니 눈물이 한 움큼씩 흐르기에 민식이 형님이 문득 떠오르데예. 아마 형님이 왕방연의 환생이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영월을 자주 가고 단종의 유배길을 걸었던 형님의 글 속에서 무언가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하, 내가 그 유명한 왕방연 선생의 환생이라니 당치도 않은 말이네. 아마 단종을 호송하던 군졸이었으면 모를까 마는......”
“그게 아니고 형님의 책에 적혀있는 시조를 보니 그 애절함과 무언가를 그리는 마음이 분명 왕방연과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더라고예.”하고 재식이와 대화를 나누었다. 재식이는 배일치를 다녀온 후 단종에 대한 사모의 정이 강렬하게 발산되었고, 종종 발자취를 찾아 영월을 오간다고 하였다.
나는 어떻게 하여 영월을 찾게 되었으며 배일치를 넘었던가. 재식이가 배일치를 찾고 강렬한 인상을 받았듯이 나에게도 그러한 계기가 있었다. 바로 청령포와 장릉을 탐방한 것이 그렇다. 30여 년 전 친구 가족과 함께 여름휴가를 활용하여 태백과 영월을 다녀온 게 계기가 되었다. 영월을 자주 오가시던 선친으로부터 영월과 김삿갓에 대해 많은 것을 들었기에, 꼭 한번 들러야 겠다는 마음을 가졌었다. 단종의 유배지인 청령포를 다녀오고, 장릉을 참배하고 난 후 영월에 대한 관심과 단종에 대한 애모의 정이 초여름 죽순처럼 급격하게 자라났다. 직장 발령지인 충주에 근무할 때 자주 영월을 찾게 되었다. 그해 늦가을 시사철에 고향의 시사에 참석할 수 없어서 한반도지형을 닮은 주천강을 탐방하게 되었다. 그곳을 탐방하고 나오는 길에 단종의 유배길이 인근 국도를 따라 이어지닌다는 것을 안내판을 보고 알게 되었다.
나는 영월로 들어가는 길에 시간이 허락하는 데 까지 단종의 유배길을 계속 따라 걷기 시작하였다. 체력이 소진하고 시간이 다한 장소에 다다랐으니, 그곳이 바로 배일치이었다. 나는 그곳에 새워진 단종이 지는 해를 보고 절하는 조각상을 보고 알 수 없는 그리움을 느꼈었다. 그 이후 단종과 충신들의 자취를 찾아가는 기행을 하게 되었고 재식이가 읽어본 바로 그 책을 출간하였었다. 그 책은 한의 자취를 찾아 한강의 흐름을 따라가는 여정이 담긴 역사기행문이다.
나는 재식이로부터 내가 왕방연 선생의 환생이라는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내가 지은 책 속에는 왕방연의 그 유명한 연군가라는 시조가 있고, 그에 대한 감상문을 적어 놓았었다. “천만리 머나먼 길 고운 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강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서 울어 밤길 예놋다.”라는 시조이다. 맞다. 어느 누구를 그리워하면 자신이 그 사람이 되어 버린다는 것을 알았다. 재식이가 내 책을 읽고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주천강을 따라가는 단종의 유배길에서 차성복이라는 사람에 대해 감격을 하다 보니 그 자신이 차성복이 되어버린 것처럼 말이다. 나도 재식이로부터 그 말을 듣고 난 후에 부쩍 꿈속에서 왕방연을 자주 만나게 되었다. 어느 날 꿈속에서 왕방연과 나눈 이야기이다.
“선생은 어이하여 나에 대한 글을 적고 있소. 나는 단종임금을 사사한 대역죄인이 아니오. 지금도 그 죄책감에 얽매어 구천을 떠돌고 있소. 나의 마음속에 들어있는 죄업을 떨쳐내고 싶은데 힘드오.”
“왕방연 선생, 자신은 죄인이라 하시지만 역사는 충신으로 기록하고 있소. 단종임금을 떠나보내고 지은 연군가는 지금도 교과서에 실려 후대들이 애송하고 있는 걸 모르신가요. 그 죄책감을 얼른 내려 놓으시소서.”
“참으로 민망한 말씀이오이다. 그 어리고 연약한 단종임금을 보호해 주지 못하고, 선왕의 유지도 받들지 못한 신하가 바로 죄인이 아니고 무엇이겠소. 지금도 군기감에서 처형된 성삼문 선생 등 사육신을 떠올리면 비통하여 울음이 그치지를 않소이다.”
“그렇지 않습니다, 왕방연 선생. 많은 신하들이 노골적으로 단종을 노산군이라 하고 홀대를 하였다는 걸 모르시오. 그렇다고 그들을 역적이라고 말하지는 않지요. 바로 단종을 호송하면서 시장기가 든 임금에게 음식 제공을 거절한 어득해는 어떤가요. 방관하고 외면한 내시 홍득경은 또 어떠하고요.”
“그들은 마음이 강한 자들 일겁니다. 나는 지나치게 여려서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고 죄책감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겠소. 차라리 돌이나 나무가 되어 무심하게 흘러 보내면 좋을 텐데 안타깝기 그지없소. 앞에 계신 선생도 너무 슬픈 사연에 휘말리지 마시길 바라오. 집착은 그 자체가 괴로움이니까요.”
"잘 알겠습니다, 왕방연 선생. 아마 확실한 것은 진정한 충신은 후세가 알아준다는 것이지요. 충신들 자신은 충신이라고 결코 여기지도 않고 죄인이라고 자책을 하지요. 그러니까 그들이 바로 충신인 게지요.“하고 왕방연 선생과 꿈속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꿈을 깨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재식이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나 자신이 왕방연을 그리니까 바로 꿈에 나타나는 게 아닌가. 보이지는 않지만 무의식 속에서 우리는 과거의 인물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간절히 그리면 자신 앞에 나타난다는 것이며, 자신이 과거 인물의 분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지금 눈앞의 고정된 나가 아닌 수많은 인물의 분신이라는 것을 깨달았으니 그것은 득도인가, 아니면 착각인가. 그래서 친한 선배와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일식이 형님, 내가 요새 이상한 꿈을 계속 꾸고 있는데 허깨비인가요, 아니면 무슨 진리가 들어있는 건가요. 아는 동생이 내 책을 읽어보고 자기는 차성복이고, 나는 왕방연이라고 하는데 좀 황당하기도 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고. 네가 지은 책은 분명히 단종과 충신들에게 빠져서 쓴 것이 맞는데, 왕방연이 나타났더라는게 좀 신기하기도 하다. 네가 시조를 잘 지으니 아마 그분의 영향을 받은 것은 있을 테고, 애절한 시조와 글로 감응한 것일 수도 있을 테지. 불교에서는 분신이니 화신이니 하는 말은 있지. 수많은 부처님의 분신이 시방세계 곳곳에서 나타난다고 말이제.”
“저도 분신이라면 모를까 환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형님이 다양한 종교를 믿었으니까 영감이라는 걸 잘 아실 것 같아 질문을 드리고, 꿈이라는 게 무의식의 발현이지만 어떻게 과거의 인물과 연결될 수 있을까요.”
“허허, 내가 무슨 무속인도 아닌데 그것까지 어찌 알겠나. 나도 영문학을 하여 워즈워드나 밀턴과 같은 분과 꿈속에서 한 번씩 소통한 경험은 있지만 나 자신이 그분들의 분신이라고는 생각을 못해 보았다네. 자네는 요새 명상도 하고 주문도 듣고 한다더니 초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 모양이야.”
“형님,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아마 신경쇠약으로 헛것이 보이는 모양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꿈속에 그분들을 만나니 헛된 것은 아니라고 여겨집니다. 지금 눈뜨고 있는 현실도 또 하나의 꿈이라고 고승들이 말하기도 하여 꿈과 생시를 구분할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래, 너 말이 진리일 수도 있겠지. 금강경 사구게에도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그런데 의미 있는 것은 자네가 지은 책 속의 인물들과 소통하고 있다는 게 큰 선물일지도 모르지 않나. 흐 흐.”하고 일식이 형하고 대화를 나누었다.
이제는 재식이도 그랬고 일식이 형도 그랬듯이 역사의 인물과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한번 실험해 보기 위해 다른 친구에게 물어보기로 하였다. 그 당사자는 처음으로 함께 영월을 같이 간 국문학교수 출신인 호식이었다.
“호식이 친구야, 내가 요즘 꿈속의 이야기에 빠져있는데 너 생각이 어떤지 한번 들어볼래. 재식이가 차성복이고 내가 왕방연이라고 나오는데 꿈같이 황당한 소리제. 너도 내 책을 읽어 보았기에 어떤 점이 크게 와닿더노.”
“나는 책 속에서 유배행렬 중에 나오는 단종이 배 고플 때 간식 제공을 거절한 호송책임자 어득해가 마음에 많이 걸리데. 그 일이 내가 한 것처럼 마음도 아프고 후회가 된다는 말일세. 나도 혹시 전생에 어득해가 아닌지 궁금도 하던 참에 좋은 질문을 해주었네.”
“그래, 참 신기하기도 하다. 내 책이 주변 사람들을 불러들여 그 역사의 주인공 역할을 하는 연극을 펼쳐 보이는 것 같군. 어째서 어득해라고 상상을 하게 되었는가. 자네는 덕망이 있고 인정이 많은 사람이 아니던가.”
“내가 유학을 숭상하다 보니 군신 간의 도리에 대해 많은 생각이 나드라구. 비록 단종이 기댈 데 없는 가련한 신세이지만 국법으로는 노산군으로 강등된 죄인이 아니던가. 악법도 법인지라, 악법이라고 지키지 않는다면 어찌 국가가 존립할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사정은 안타깝지만 어명을 엄격하게 지키는 것도 나라를 위하는 것이라고 보았지.”
“그래서 자네가 어득해를 비호 아닌 비호를 하는 게로 군. 어득해 자신도 겉으로 표시는 안 하지만 속으로는 울고 있을지 모르지. 모두가 단종을 무조건 옹호하면 오히려 위해기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예견한 것인지도 모르지. 그냥 민심이 단종에게 있다고 조정에서 판단하면 어떤 불상사가 있을지도 모르고 말일세.”
“역시 민식이 친구는 깊이가 있어. 그 시절 유명한 책사이자 모사꾼인 한명회나 시기심이 많은 신숙주가 그런 민심의 동태를 보고 방관하지 않고, 없는 죄를 또 만들어서 단종의 운명을 단축시킬 수도 있었을 테니 말이제.”
“오, 호식이 친구는 선경지명이 있구만. 정서적으로야 단종을 옹위하고 싶지만 임금의 안위를 위해서는 그런 마음을 표출하지 않고 추상같이 냉엄하게 대하여야 한다고 말이제.”하고 호식이와의 대화가 진지하게 이루어졌다.
그러니 역사의 인물 중에서는 비정하게 보이지만 깊은 속을 갖고 있는 현인들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세를 살아가면서도 감언이설 보다는 경책으로 올바른 길을 가도록 하는 사람들이 한 번씩 보이기도 하다. 대부분은 그렇지를 않고 자기의 이해관계에 따라 부평초처럼 이리저리 시류 따라 흘러가는 게 대다수일 것이다. 나는 홍득경은 어쩔 수 없는 힘없는 지위이었고, 어득해는 총책임자로서 내면이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차성복이가 침소를 방문하여 백설기를 전한 것에 대해 눈을 감아주었으니 박정한 사람이라고 치부하기는 곤란할 것 같다.
시간이 좀 흐른 후 일식이 형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민식아, 참 이상한 일도 있네. 전번에 내가 차성복이니 왕방연이니 하는 이야길 듣고 그것에 심취하였는데, 꿈에 정사종 선비가 나타나는 게 아닌가. 내가 너의 책을 읽으면서 단종이 사사당한 날 동강에 몸을 던졌다는 것을 보고 크게 감동하였는데, 그것이 단초가 되어 꿈속에서 만났단 말일세.”
“형님, 정사종 선비가 뭐라고 말씀하시던가요. 지금 어디에 계신다고 하던가요. 그분은 엄흥도 호장과 의기가 통하여 단종의 시신을 함께 수습하였다고 하던데 말입니다.”
“바로 그 말이다. 엄흥도 호장이 자신을 너무 흠모하여 군위에다가 사당을 세웠었는데 그곳으로 가서 한 번씩 소통하였다고 하더라. 자신의 옛날 임지까지 내려와서 기리는 사당을 지워주고 제사를 모시는 걸 보고 그의 후손들에게 발복이 있도록 빌고 있다고 하데.”
“아마 천지신명이 있기는 한 모양입니다. 우리 눈에는 안 보이지만 간절히 그리는 사람에게는 어떤 형태로도 나타난다고 말입니다. 형님이나 나나 단종의 충신들과 소통하고 있으니 다행스럽기도 합니다.”
“맞아, 그건 네가 지은 단종의 충신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겠는가. 영감이 담긴 한 권의 책이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는 걸 다시 느꼈었지. 내가 영문학을 하다 보니 간혹 워즈워드나 밀턴, 토마스 하디를 만나는 것처럼 말이야.”하고 일식이 형하고 신비한 이야기를 다시 나누었다.
나는 재식이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에서 출발한 신기한 끌림현상의 의문으로부터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나 자신도 영월을 탐방하고 난 후 그곳에 대한 관심이 집착으로 변했고, 단종애사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무엇이 이토록 그곳으로 끌어들이고 있단 말인가. 나뿐만 아니라, 내가 쓴 책을 읽어 본 사람은 정도의 차이지만 그런 끌림현상을 느꼈다고 하니 신기하기도 하다. 단종은 영적인 힘을 가지고 있어 무속인들이 산신령으로 모시고 있으며, 태백산 단종비각에서부터 고치령 고개의 산령각까지 태백산맥 곳곳에 산신당이 있지 않은가. 단종의 혼령이 민생을 구제하는 역할을 하니, 충신들이나 민초들로부터 받은 은혜를 되돌려 주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왕방연은 2차 단종복위운동이 실패하자 조정으로부터 노산군으로 강등된 단종을 사사하라는 어명을 받고 한양을 출발한다. 광나루에서 배를 타고 여주 이포나루에서 내려 단종의 유배길과 같은 루트로 영월로 가게 된다. 손에는 단종에게 내릴 사약이 들려있기에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무슨 기구한 운명이기에 그런 특명을 받아야 하는지 하늘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원주 싸리재를 넘어 영월이 가까워지자 마음은 안절부절이다. 중간에 큰 비가 내려 영월로 가는 길이 끊기기를 빌어보았고, 사사의 어명을 거두라는 파발마가 달려오기를 기대해보기도 하였다. 그 모든 것은 부질없는 것이 되었고 군등치를 넘어 주천강이 흐르는 명라곡에 다다랐다. 그는 여울에 부서지는 강물을 보고 속으로 흐느꼈고 차라리 강물에 휩쓸려 가버리고 싶은 충동도 느꼈다.
어쩔 수 없는 운명의 시간은 당도하였고 왕방연도 단종임금의 유배지인 관풍헌에 도착하였다.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마당에서 부복하여 기다리니 단종이 바깥으로 나왔다. 고개를 들지 못하고 엎드려 있는 왕방연을 보고 한마디를 한다.
“어이하여 안으로 들지 않고 마당에 엎드려 있는가. 어서 안으로 들게나. 한양에는 별일이 없겠지.”하고 말하나 왕방연은 꿈적도 하지 않고 고개를 조아리고 있다.
“허허, 고개를 들고 무슨 일인지 말해 보게나. 무슨 긴한 전갈이 있는 것 같기도 한데 말일세. 먼 길을 오느라고 고단 할 텐데 어서 안으로 들어오게나.”하고 재차 말을 하나 대답이 없다. 무슨 일인지 단종은 궁금하였지만 아마 임금으로 모시던 자신이 오지인 영월까지 유배 와서 외롭게 지내는 것이 안쓰러워 고개를 못 드는 것인가도 생각했다. 그러나 몇 번을 불러 일으키려 해도 꿈쩍을 않기로 무슨 중요한 일이 있는가에 생각이 닿았다. 오늘 아침에 관풍헌 마당의 정자나무 위에서 까마귀가 우는 소리가 들리기는 하였지만 불길한 마음을 애써 다스리려고 하였다. 단종은 마당으로 친히 내려가서 왕방연을 일으켜 세우려고 하니 그는 가슴을 덜썩 거리면서 울고 있는 게 아닌가. 단종은 자신의 운명을 직감하였고, 하늘을 우러러보다가 다시 고개를 내리며 왕방연에게 말한다.
“금부도사께서는 어서 빨리 어명을 집행하시오. 나는 대역죄인이 아닌가요. 고개도 들고 어서 일어서시오.”
“마마, 이 불충한 신하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천릿길을 오다가 마음을 추스리지 못해 몇 번이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하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그 어명이라는 게 참으로 말하기가 어려운 것이기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허허, 무슨 뜻인지 알겠소. 울음을 그치고 안으로 들어오시오. 모두 다 하늘이 내리는 일인지라 어찌 원망을 할 수 있겠소.”하고 단종은 체념한 듯이 말하고 왕방연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일으켜 세운다. 이렇게 하여 왕방연은 자신에게 녹을 내린 옛 임금을 어명을 내린 새 임금의 뜻에 따라 사사하게 되었다.
이제는 다시 한양 도성으로 돌아가서 어명을 집행하였다는 것을 보고하여야 했지만 그의 발걸음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고 방황한다. 왕방연은 정신을 가다듬고 자신의 본분을 일시적으로 망각하였음을 알아차린다. 개인적인 슬픔은 보이지 않도록 마음의 보자기에 깊숙이 감추고 한양을 향해 나아간다. 올 때와 같은 길이지만 방향은 바뀌었으나 기분은 오히려 바뀌지 않고 더 가라앉았다. 단종을 보호해 주지 못한 자책감이 엄습해 오고 사약을 받고 괴로워하던 그 어린 얼굴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비록 임금이지만 겨우 열여섯이니 자신의 아들과 비슷한 나이였기에 그 애처로움을 지울 수가 없다. 무심한 하늘만 보고 정신없이 가다 보니 주천강가의 명라곡에 다다랐다. 흘러가는 강물소리가 애를 끊는 곡성소리처럼 들리고, 여울에서 부서지는 물결은 자신을 채찍질하는 것 같았다.
그는 강가의 작은 바위에 앉아서 북받쳐오는 서러움을 물길에 흘러 보낸다. 그의 흐느끼며 우는 소리는 물소리에 섞여 들리지가 않는다. “실컷 울어보리라. 울분을 토해 내리라. 의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리라.” 그는 울음 속에 그런 말을 섞어가며 읊조리니 하나의 시조가 되어버렸다. “사모하는 님이시여,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시옵소서. 다시는 피를 토하며 우는 자규가 되지 말고 무심코 흘러가는 푸른 구름이 되시옵소서.” 이렇게 하여 왕방연은 머리로 지은 시가 아닌 마음으로 울어버린 독백이 연군가라는 불후의 명작이 되었다. 후세는 그 시조를 읊조리며 고독한 한 사람의 충신을 기리고 있다. 다시는 이런 애절한 시조가 탄생하지 않기를 바라며, 슬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빌어본다.
내가 단종의 유배길을 따라서 배일치까지 걸어갔다면, 재식이는 자전거를 타고 한양에서 배일치를 넘어 영월까지 갔다. 내가 처음으로 영월을 찾아 청령포와 장릉을 탐방한 인연으로 단종과 충신들에 관한 글을 쓰게 되었고, 재식이는 나의 글을 읽고 단종애사에 감응하여 자전거로 탐방을 한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어느 역사적 장소에 가더라도 풍광만 구경하고 숨겨진 사연을 찾으려 않는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그 장소에 가면 강렬한 끌림현상으로 그곳을 잊지 못하고 사연을 찾아본다. 직접 장소에 가지 못한 사람들은 책 속에 나오는 사연에 공감하여 역사적 장소를 처음으로 찾게 되니 이 모두 다 인연에 의한 끌림현상이라고 보고 싶다. 그 인연이라고 하는 것은 그 사연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어 당사자이거나 관련자이거나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러니 재식이는 단종에게 백설기를 건넨 건어물 장사 차성복이가 될 수 있고, 나는 재식이의 말마따나 금부도사 왕방연일수 있는 것이다.
내가 처음으로 영월로 가서 청령포를 탐방할 때 선착장 입구의 소나무 밑에 세워져 있는 왕방연의 시비를 읽고 가슴이 찡하게 울리는 것을 느꼈었다. 고교시절 교과서에 실린 그 시조로 잠복해 있던 시정을 끌어올렸던 것이리라. 그 후에는 한스런 역사의 현장을 탐방하면서 수십 편의 시조를 지어보았었다. 내가 시조를 적게 영향을 끼친 사람은 분명 왕방연이 맞다. 그 한 편의 시조는 충절과 인간적인 비애를 함축하고, 모든 사람은 슬픈 역사에 감응한다는 것을 기르쳐주었다.
어느 날 재식이로부터 카톡이 왔다. 나의 안부를 묻고 자신이 최근에 자신이 새롭게 경험한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닌가.
“민식이 형님, 내가 요새 단종애사에 푹 파져 형님의 책을 가이드 삼아 단종의 자취가 배인 역사현장을 자전거로 탐방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그냥 체력테스트나 경쟁심리에 의해서 자전거를 몰았지만 배일치를 넘어 영월을 다녀온 후로는 코스가 새롭게 바뀌었습니다.”
“하하, 그래. 참 신기하기도 하네. 어째서 자전거 타는 코스가 새롭게 바뀌었단 말이고. 동생이 이제 무언가 의미 있는 길로 가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드네. 자신이 만나는 장소나 사람들 모두 전생에 인연이 있어서 다시 만나게 된다고 나는 굳게 믿는다네.”
“그리고 또 하나 변한 게 있는데, 저도 예전에 글쓰기를 좋아했는데, 소재가 흥미 위주의 이야기나 신변잡기에서 벗어나 지금은 역사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답니다. 이번에 저가 튀르키예를 다녀와서 또 다른 감흥이 일어나더군요. 내가 언제 다녀간 길 같은 것을 느꼈었지예.”
“오우, 그래. 동생은 지금의 자전거 타고 걷기 좋아하는 취미로 볼 때 전생에 실크로드를 오가던 상인이었다는 생각이 드네. 단종에게 백설기를 건넨 차성복이었던 것처럼 말일세.”
“형님 하고 저 생각이 어찌 그리 들어맞는지 신기합니다. 내가 튀르키예가 가고 싶었던 것은 TV의 실크로드에 관한 세계테마기행을 보고 난 이후였습니다. 꿈에서도 천산산맥을 따라가며 말 등에 짐을 싣고 가던 장면이 나타나서 그 끌림으로 그곳에 가게 되었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되는데. 틀림없이 전생 인연의 부름이라고 여겨지네. 언제 나이가 더 들기 전에 천산산맥을 우회하며 가는 실크로드를 따라 자전거 탐방을 한번 도전해 보면 어떨까 제안하네. 그 옛날 보다 길도 좋아졌으니 옛 추억을 되살리면 한번 다녀올 것을 꼭 권하네.”하고 재식이와 대화는 이어졌다.
나는 재식이와 대화하면서 전생이 현생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궁금하였지만 책에서 보고 들은 대로는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몇 년 전에 이 세상을 떠나 천국에 안착해 있는 김사장에게 물어보기로 하였다. 김사장과는 종종 천국의 소식을 꿈속에서 주고받으며 소통해 왔었다. 어느 날 간절히 김사장을 그리니 그가 꿈속에 나타났기에 내가 먼저 물어보았다.
“김사장님, 천국에서 잘 계시지요. 떠나신 지가 3년이 되었으니 거기에서는 몇 주가 되었겠네요. 그간의 소식을 좀 전해주시지요. 며칠 전 김사장님이 사시던 동네인 충렬사를 다녀왔습니다.”
“조사장님, 오랜만에 천국의 네트워크에 접속하셨군요. 여기가 한국과의 시간차가 50 여배나 차이나 나니 온 지가 3주가 다되어 가네요. 조사장님은 이제 칠순을 넘겨셨겠구만요.”
“맞습니다. 작년에 칠순을 맞았고 이제 막바지로 달려가는 듯합니다. 꼭 천국에서 김사장님을 만나 뵈어야 할 텐데 지은 공덕이 없어 걱정입니다. 같이 간 권사장님도 잘 계시겠지요.”
“하하, 막바지가 어디 있습니까. 한국에서는 나름대로 소풍을 즐기시고, 천천히 오시면 됩니다. 지은 공덕이야 저가 한 번씩 공과부(功過簿)를 들여다보는데 우수한 상태이더군요. 권사장님과는 함께 관세음보살과 천사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습니다.”
“아,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많이 바쁘실 텐데 한 가지 여쭈어 볼 게 있습니다. 내가 아는 동생이 내가 지은 책을 보고 자기는 전생에 차성복이고 나는 왕방연이 아닐까 하는데 알 수가 있을까요.”
“하하, 여기서는 함부로 전생에 대해 명부를 열람할 수 없습니다만, 인연이 깊은 한 두 사람에 대해서는 판관에게 부탁하여 알 수는 있습니다. 아마 조사장님이 계사년 삼월생이 맞지요. 동생에 대해서는 저하고 인연이 없어서 알아보는 게 불가능합니다.”
“아, 그렇군요, 저의 전생에 관한 최근 이력에 대해서만 조회를 해주시지요. 혹시 부담을 드리는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저가 알아보고 다음번 천국의 네트워크에 접속이 되면 알려드리겠습니다. 권사장님에게도 안부를 전해드리겠습니다.”이렇게 하여 김사장과 오랜만에 교신을 하였다.
며칠 후 다시 꿈속에서 김사장과 접속을 하였다.
“조사장님, 부탁하신 걸 저가 알아보았는데 최근 두 번의 전생 기록만 말씀 드릴게요. 첫 번째는 단종시절에 금부도사이던 왕방연으로 나오는 게 맞군요. 평소에 시조를 잘 지으시던데 그분의 유전인자를 받은 모양입니다.”
“아이구, 정말로 신통하게 나의 꿈하고 들어맞네요. 현재의 보잘것없는 내가 왕방연 선생의 환생이라니 믿기지가 않습니다.”
“두 번째, 즉 바로 직전 전생은 조선중기에 이조년 선생의 가문에 태어나 홍문관에서 교리로 근무하셨군요. 마지막 현생은 단종과 인연이 깊은 어계 조여 선생의 가문으로 문장력이 뛰어난 두암공 선생의 후손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전부 다 시조나 시문에 뛰어난 문장가 집안과 인연이 있습니다.”
“아아, 그렇군요. 지금 내가 가진 성씨도 왕씨에서 이씨로, 다시 조씨로 바뀌었군요. 김사장님, 전생을 안다는 게 궁금하지만 더 앞의 전생은 모르고 지내겠습니다. 어려운 청탁을 하여 감사합니다. 혹시 자료 유출로 징계를 받는 것은 아니겠지요.”
“전생의 비밀을 안다는 게 좋은 점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점도 있습니다. 전생을 몰라야 열심히 수행을 하고 공덕을 짓지만, 조사장님은 이미 그런 경지를 넘어섰기에 염려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징계는 없고 알아볼 수 있는 마일리지가 줄어든다는 것은 있지만, 가까우신 조사장님에게 쓰는 것은 아주 잘 사용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이렇게 하여 천국에 있는 김사장과의 대화는 끝났다.
나는 꿈에서 김사장으로부터 들은 내용이 신기하여 영적인 힘에 정통한 일식이 형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식이 형님, 내가 전번에 전생을 물었는데 천국에 계신 김사장으로부터 왕방연이 맞다고 하네요. 그것도 직접 명부를 확인하였다고 말하더군요. 현생에 있는 재식이도 그렇다고 하고 천국에서도 그렇다고 하니 믿어도 될까요.”
“하하, 아주 신비하면서도 재미있는 이야기이네. 내가 불교나 기독교의 영매에 대해 관심이 많은데 그게 황당한 이야기는 아닐거야. 자신이 경험해 보지 않은 것을 틀렸다고 말하는 것도 그렇지. 나는 상당히 가능성이 높은 것이라고 생각해.”
“현대과학으로 증명하지 못하는 너무나 많은 현상이 있지 않던가. 이 우주는 항하사 모래알 보다 많은 별들이 있고, 그 별에서 오는 빛이 지구에 도달하는데 몇 억 광년이 걸린다고 하니 인간의 능력으로 그 신비를 풀 수가 없으니 말이야.”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마음의 힘이라는 게 초능력을 갖고 있어 마음먹은 데로 이루어지고 꿈꾸는 데로 현실로 나타난다고 믿습니다. 텔레파시라고 하는 염력이 빛의 속도의 10억 배가 된다고 하니, 마음이야 말로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참 좋은 말이네. 민식이도 이제 진리에 접근하는 능력이 거의 다 갖추어진 것 같애. 사람이 꿈꾸는 것은 결국은 이루어지고 그렇다고 믿으면 그대로가 사실이 된다는 것이지. 그러니 믿음이 모든 문제를 풀어가는 단초이자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지.”하고 일식이 형하고 대화는 이루어졌다.
어느 날 재식이가 나에게 보내온 카톡에서 시작한 전생탐구가 내가 믿은 데로 이루어 졌으니 앞으로 믿음을 가지고 매사를 대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사람은 수많은 생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진행될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순간마다 좋은 생각을 갖고 그것을 실천해 나가면 꿈꾸는 데로 이루어진다고 믿어야겠다. 한 여름밤 누가 보내온 카톡에서 단서를 잡아 나의 과거를 알고 미래의 모습을 설계할 수 있으니 참으로 나는 큰 선물을 얻은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