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도 출신 친구들의 기구한 인생 이야기
영도
어느 때처럼 함지골 앞바다의 파도는 쉴 새 없이 긴 숨을 내쉬면서 그 허연 전설의 포말을 토해내고 있었다. 갯미역은 너울에 쓸려 갈 방향을 못 잡고 이리저리 흔들리며 갯바위에 손을 잡기도 놓기도 하며 긴 머리칼을 흩뜨려 그 심정을 알 수가 없었다. 그 옛날의 확 트인 수평선은 이리저리 정박해 있는 외항선들로 막혀있었다. 영도는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매일 시시각각 파도가 변하듯이 변하고 있지만 알아차리지 못한다. 갯가에 흩어진 조개껍질들은 생명과 죽음의 표상이기도 추억의 소재이기도 하다. 허파처럼 허연 포말을 토해내는 파도는 생명의 탄생과 소멸을 이야기해 주고 있다.
봉래산은 우뚝 서있지만 시시각각 그 높이를 깎여나가고 언젠가는 바다와 키높이와 같아질 것이다. 그 연안과 기슭에는 슬픈 기억들이 누군가가 불러주면 튀어나올 듯하다. 만남이란 언젠가는 헤어져야 하는 또 다른 말이고 탄생은 언젠 가는 스러져야 할 또 다른 언어이기도 하다. 수많은 꽃들이 계절 따라 피고 지듯이 수많은 이름들도 세월 따라 지워져가고 있는 것이다.
영태는 그날따라 그곳을 한번 다녀가고 싶었다. 영도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세상의 파도에 떠밀려 뭍으로 상륙하여 그 지긋지긋한 고통과 아픔의 기억을 지워나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함지골로 나아가서 그 옛날 어머니의 자취를 찾아보았지만 해녀막은 사라지고 그 연안에는 우렁찬 아파트가 위용을 소리 지르고 있었다.
그곳은 어린 시절의 놀이터였고 저 멀리 수평선을 그리며 꿈을 키워온 사색의 공간이었다. 긴 여름날이면 저 멀리서 실려오는 해조음과 배냇물 냄새를 맡으며 놀던 곳이 아니던가. 이미 그 친구들은 이곳을 떠났고 그 역시 영도다리를 넘어버렸다. 나가려던 사람은 나갔고 나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던 사람도 떠났고 어쩔 수 없이 시절의 파도에 밀려 떠내려간 사람도 있었다.
영태는 봉래동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명진이도 마찬가지였다. 그 두 명은 같은 초등학교에 다녔고 또 매일 소꿉놀이를 하던 친구들이었다. 그들에게 영도는 세상에서 제일 큰 배와 같았고 그들만이 경영하는 장원과도 같았다. 외부의 퇴폐한 문물을 엄격히 검색하며 들여보내는 영도다리가 엄중하게 지키고 있었기에 그들은 타락하지 않고 잘 자랐다. 하루 아침 저녁으로 두 번씩 들어 올렸다가 내리는 영도다리는 생명을 잇기도 끊기도 하였다.
영태는 아버지가 있으나 빈둥빈둥 놀고 있고 오직 어머니만이 허벅을 끌어안고 죽자 사자 바다에서 살았다. 그렇다고 아버지를 원망할 수도 생활전선에 나가라고 종용할 수도 없는 현실은 그야말로 가문의 불문율이었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말이 빈둥빈둥이지 어찌 보면 보이지 않는 위엄으로 가정의 분위기를 다잡고 가문의 전통을 착실히 이어가는 위대한 가장이기도 하였다
처음에 본 것처럼 그의 아버지는 여전히 제주도 방향을 쳐다보며 무엇을 간절히 그리고 있는 듯하였다. 같이 오지 못하고 제주에 묻힌 모친을 그리는지, 어린 시절 추억이 어린 고향 갯바위와 오름을 보고 싶어 하는지, 말 못 할 또 다른 사연이 있는지, 아니면 그냥 심심해서 바다를 쳐다보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영태를 영도에서 만났고 또 그의 친구들도 함께 알게 되었다. 그 친구들 중 유독 명진이만 말을 터놓지를 못했다. 왜냐하면 고등학교에서는 선후배가 되기 때문이었다. 명진이는 자기 아버지가 영도에서 어망을 만드는 공장을 차려서 기반을 잡았기에 부잣집 아들에 속했다. 부산에서 그물공장에서 일하던 그의 아버지는 해방이 되자 삼팔선이 가로막혀 고향인 함흥으로 올라가지 못했다. 일본인들이 물러가자 그물 만드는 기술을 가진 그의 아버지는 영도에 터를 잡고 어망공장을 빠르게 키웠다. 영도는 출향민과 실향민이 함께 어우러져 그들만의 살길을 만들어 나갔다.
명진이는 어망공장이 동삼동에 있지만 집은 역시 봉래동에 두고 살았다. 그의 아버지가 절대로 영도를 떠나서는 안된다고 하였고 어망공장을 천직으로 생각하고 가업을 계승하라고 엄격하게 가르쳤다. 그의 아버지는 실향민 특유의 가업에 대한 집착이 강했던 반면에 명진이는 자기가 꿈꾸는 길을 가고 싶어 했다. 한 번은 아버지 앞에서 그런 뜻을 이야기하다고 혼이 크게 났던 적이 있었다.
“이 녀석아, 내가 어떻게 일군 기업인지 알기나 하나. 송충이는 솔잎만 먹어야 하는 법이여.”
“아버지, 앞으로 어망은 사양산업이니 차라리 공장을 팔아서 빌딩이나 몇 개 사서 편하게 노후를 보내시지예.”
“이놈아, 내가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공장을 지키려고 하는지 아나. 그 공장은 나의 혼이 들어가고 창업공신들과 함께 만든 것이야.”
“저는 제 갈길로 가고 싶으니 정 그러시면 동생한테 물려주시던가 하시지예.”하면서 명진이와 그의 아버지가 티격태격 싸우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었다.
그 두 명의 친구 외에도 영희라는 여자 친구가 있는데 영태하고는 담 하나 사이를 두고 살았다. 그의 집은 아버지가 안 계시고 홀어머니와 남동생 두 명이 쓰러져가는 쓰레이트집에서 가난하게 살았다. 영희는 중학교만 나와서 삼화고무라는 신발공장에 나갔고 그가 소녀가장으로서 두동생을 공부시키고 있었다. 영희는 성장할수록 키도 크고 얼굴도 예쁘 졌지만 인생행로는 차선을 점점 벗어나가고 있었다. 가난은 그녀를 어두운 곳으로 끌고 들어가게 하고 미모는 바람둥이들의 표적이 되었다. 어쩌면 가난과 미모가 직장에 오래 가두어 두지 못했고 일탈의 유혹이 수시로 끌어당겼다.
영도는 어찌 보면 고구마 줄기처럼 영도다리를 통해 영양분을 공급받기도 하고, 다 자란 고구마를 세상밖으로 흘러 보내는 어머니와 같은 동네이다. 모국으로 귀항하는 외항선이 제일 먼저 바라보는 곳이 봉래산이며 떠날 때 마지막으로 손을 흔들어 주는 곳이기도 하다. 외항에 정박해 있는 배들은 얼마간을 잠들고 있다가 처음이자 마지막 방문의 추억을 남기기도, 또 힘이 다 떨어져서 움직이지 못하고 영원히 정박하기도 한다. 그들이 숙박하고 있는 남쪽바다는 파도가 고요하지만 태종대쪽은 동해의 급한 물길이 외로운 생명을 쓸어 담아 옮겨가는 곳이기도 하다.
그들이 살고 있는 동네는 피난민들과 출향민들이 어우러져 살고 있는 산복도로 위에 있고 살기는 어럽지만 밤이 되면 어둠이 집을 가려주니 밤이 빨리 오기를 기다렸다. 영도다리 건너에는 네온사인이 빛나고 지나가는 여객선이 고동을 울려주니 낭만이 숨 쉬는 동네가 맞았다. 거기에다가 등에 기대고 있는 산은 신선들이 산다는 전설 속의 산인 봉래산이 있고, 그 산아래에는 이름에 걸맞게 신선동이니 청학동이니 하는 동이름이 붙어있었다. 이름으로만 따진다면 세상 어디에도 어디 영도의 동이름을 따라올 수가 있겠는가. 이 모두가 다 출향민들의 꿈을 키워주고 물질보다는 정신을 귀하게 여기도록 하는 깊은 뜻이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명진이 소식을 들었나. 요새 통 연락도 없고 그렇네. 소문에 어렵다고 하네.”
“왜 그럴꼬. 그물 만드는 공장을 하니 먹고살기는 괜찮을 텐데. 무슨 일이 있을꼬.”
“요새 중국산 그물 때문에 어렵다고 하던가. 이제 그물은 한물간 게 아닌가.”
“주변에서 그 공장 땅을 팔아 아파트를 지어라고 하는데 그러면 오히려 큰돈을 벌건데 그럴 마음이 없는 모양이더라.”하고 나와 영태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와 명진이는 친구의 친구지간이지만 그는 선배로서 나를 대했다. 내가 근무하는 직장이 기업에게 자금을 지원해 주는 곳이라 거래처로서 간간이 만날 수가 있었다. 그가 운영하는 어망공장은 이제 사양산업이 되어 더 이상 성장할 수 있는 여지는 없었고 오직 종업원들을 해고하지 않고 함께 갈려고 하니 자금이 어려워지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에게 자금 압박에 시달리지 말고 공장을 팔던지 아니면 다른 업종으로 바꾸면 어떻겠느냐고 슬쩍 제안을 해보았다.
“유사장, 이런 말을 하기가 좀 그렇네. 친하지 않으면 말할 수 없는 건데 어떻게 하나.”
“예, 선배님. 송충이도 솔잎을 먹고살아야 한다는 말 때문에 결단을 못 내리겠네요.”
“그렇지, 나도 유사장의 마음을 다 알지만 앞으로 다가올 일이 걱정이 되어서 한말이니까 한번 깊이 생각해 보게나.”하고 명진이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명진이의 사업은 갈수록 어려워졌고 자금난을 벗어나려면 직원을 줄이고 공장 일부를 팔아야 하는 지경이었다. 그의 아버지 동의가 없는 한 한 뼘도 팔 수가 없었고 그럴 가능성도 없을 정도로 부친은 그 땅에 집착했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대학을 졸업할 때쯤 그럴듯한 간판이 달린 공장을 이루었다. 그 간판은 두고 온 고향의 이름이었고 그 고향을 추억하는 징표이기도 하였다.
그는 불효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인지 새로운 길이 두려워서인지 그의 얼굴에는 주름이, 통장에는 은행 빚만 늘어났다. 나는 갈수록 어려워진다는 것을 알지만 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는 생각했다. 어떤 극한 상황이 오더라도 공장부지의 시세만 해도 빚을 다 갚고도 충분히 남았기에 그의 판단에 맞기는 수밖에 없었다.
영태 집안은 그런대로 어머니의 헌신적인 허벅을 껴안고 하는 물질과 누나의 도움으로 형제들이 무난히 사회에 진출할 수 있었다. 영태 집안은 조그만 스레트집에서 많은 식구들이 효율적으로 거주하고 있었다. 큰방은 병풍을 쳐서 할아버지가 상석에 여동생들이, 건너 별채에는 부모님이, 다락방에는 영태와 남동생이 잠을 자고 밥은 큰방에서 함께 먹었다. 영태의 할아버지는 장수하고 있었고 부모님의 지극 정성으로 마음을 편하게 가지려는 듯 보이지만 한 번씩 과거를 회상하며 눈시울을 적시기도 하였다.
그날은 날씨가 흐렸고 파도는 서서히 검푸렇게 변해가고 한라산 오름의 풀잎들은 거센 바람에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날따라 집안의 감나무 위에 까마귀 한 마리가 까악 까악 울어 됐고 외양간의 암소는 여물을 씹다가 말고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이 시간이면 물질을 나간 할머니가 돌아올 시간인데 아직 소식이 없었다. 방안에 있는 할아버지는 헛기침을 하면서 한 번씩 스르륵 방문을 열어 보이고 대청마루에는 아들이 하늘을 바라보며 다소 걱정스런 표정을 짓는다.
영태의 아버지는 시신을 거두어서 오름 옆에 있는 돌담장 안의 밭에다가 묻었다. 매년 한두 명씩 바다가 여인들을 무슨 제물처럼 훔쳐갔지만 갑작스럽게 자신의 어머니를 데려갔으니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아렸다. 방 안에서 연신 담배만 피우던 영태의 할아버지는 울음도 없는 헛기침만 토해내고 있었다. 좀처럼 감정 표현을 안 하는 할아버지인 데다 영태 아버지도 그의 아버지를 닮았지만 자꾸 눈물만 흘리면 아버지의 마음을 더 상할 것 같아 목구멍에서 올라오는 울음을 힘을 주어 삼켰다.
영태의 할아버지는 뭍으로 나가겠다는 큰 결단을 내렸다. 역대로 얼마나 많은 자신의 조모들이 바다에서 물귀신이 되었던가를 생각하니 자꾸만 조모들의 혼령이 여인들을 물속으로 끌여들이는 것 같아 후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이윽고 영태의 할아버지는 죽어도 뭍으로 안 나가겠다고 뿌리치는 작은 아들을 남겨놓고 또 새로운 운명의 땅인 영도로 들어섰다. 해방이 된 후 몇 년이 지나서 또 슬픈 소식이 전해왔으니 그의 작은 아들이 윗새오름 근처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는 것이었다. 군인과 경찰 토벌대로부터 안전하게 벗어나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그날이 아마 한라산 능선에 철쭉이 만발하던 4월이었을 것이다.
영희는 이제 삼화고무에서 잔뼈가 굵었고 월급을 한 푼도 아껴가면서 집에 보탰고 그 흔한 로션도 제대로 바르지 않았다. 본래 예쁘다고 동네에서 소문이 났으니 화장을 한 얼굴이나 민얼굴이나 똑같았다. 영희의 동생들은 누나의 헌신에 보답하여 진학을 하여 열심히 공부해 나갔다. 영희에게도 사랑이라는 운명이 들이닥쳤고 같은 작업반에서 일하는 선배와 연애를 하였고 혼례는 안 올렸지만 살을 섞고 말았다. 자신을 죽음 때까지 사랑하며 살겠다는 삼류 소설의 대사에 녹아들고 말았다. 사랑이란 이름에 굶주린 여인을 형편없는 소설가가 낚아채어 욕정의 보따리로 보쌈하였다.
영희는 계절 따라 불어오는 바닷바람의 내음에 민감하였고 특히 춘삼월 봄바람이 불 때에는 몸과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는 바람의 속삭임에 낭만을 느꼈고 서서히 그의 속살을 드러내어 온몸을 더듬게 내버려 두었다. 역시 운명은 그를 순탄하게 내버려 두지 않았고 결국 그 바람둥이는 바람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그는 순결을 잃었기에 부산에서 살아갈 수가 없었다. 남의 이목을 피해서 서울로 올라가 다방에서 주점에서 나중에는 몸을 파는 사창가를 떠돌았다. 그 길은 침몰하는 여인들의 예정된 수순이었고 어쩌면 운명이기도 하였다. 순결을 빼앗긴 여인들은 그 분노를 자신을 철저히 망가뜨림으로써 운명에 보복하는 자학을 하였다. 그가 태어나고 살았던 그 동네는 몸을 파는 색시들이 모여있던 사창가도 있었기에 그 자신을 운명이 끌어들이는 것 같았다. 그 동네에는 유난히 돌하루방이 많았고 또 어느 골목에는 관세음보살 석상이 여기저기 세워져 있었다. 영희는 전국을 떠돌았고 집으로 오는 전신환의 발신지가 그가 있는 곳이었다.
영희는 자신을 어두우면서도 화려한 밤무대로 끌어들이는 것이 빛이라고 생각해보았다. 그 빛은
어둠이 있어야 드러나는 욕망을 담고 있고 그 빛이 없으면 실명할 것 같은 운명의 호출도 있었다. 자신을 어둠 속에 담그면 누군가는 빛을 보고 걸을 수 있다고 자학을 멈추곤 하였다.
영태는 이제 결혼도 하였고 중학교 선생으로서 부산의 이곳저곳으로 발령받아 다녀서 영도에 더 이상 머무럴수가 없었다. 그의 아내도 영도에 오래 살면 물귀신이 되어 뭍으로 나오지를 못한다는 미신을 믿고 있었다. 또 그의 어머니가 때가 되면 영도를 떠나서 더 큰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는 뜻도 있었고, 그 자신도 영도의 아름다운 추억보다는 그 빈민촌의 서글픔이 더 컸기에 말없는 아버지 대신 어머니의 말을 따르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가 사는 곳은 언제나 영도가 바라다 보이는 동네이었고 시간이 나면 그의 아버지가 그랬듯이 물끄러미 영도 바다를 쳐다보곤 하였다.
내가 영태의 집에 가는 날이면 그의 아버지는 별로 말이 없었고 남들의 눈을 피해서 옥상이라고 할 수 없는 물탱크 받침대가 있는 곳에서 올라 저 멀리 제주도 쪽 바다를 그리는 듯이 보였다. 그 부자간에도 보이지 않는 바다에 대한 그리움이 유전자로서 연결되어 있는 것인지 영태의 모습은 틀림없는 그 아버지를 빼닮았다. 말을 하는 것을 두려워하는지 아끼는 것인지 그냥 듣기만 하고 말없이 웃음으로 답하는 모습도 특이하였다. 이미 말은 무서운 것이고 또 실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인지 침묵을 사랑하며 살아갔다.
어느 날 영태는 영도 본가로 가는 길에 영희의 큰 동생과 마주쳤다. 그보다는 세 살 아래이었지만 이제는 버젓한 시청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영희의 동생은 머뭇거리면서 먼저 인사를 해왔고 영태에게 무슨 하소연할 일이 있는 듯이 절실한 표정이었다. 그래도 먼저 영태가 말을 건네어 보았다.
“오랜만이네 동생. 지금 아마 시청에 나간다고 하더구먼 잘 다니고 있지. 혹시 누나 소식은 들려오나.”
“예, 형님. 공무원 생활이야 그렇고 그렇지요.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계신다면서요. 저의 누나는 소식이 가물가물합니다. 못 본지가 부산을 떠나던 30년 전이었지요.”
“하이구, 그래 오랫동안 안 나타난다는 말인가.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나.”
“일체 편지 안에 내용은 없고 오직 전신환만 넣어 어머니에게 보내오고 있네요. 최근에 온 전신환 발신지가 목포이었던 것 같습니다.”하고 영태와 영희의 동생이 길거리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영희는 아마 전국을 떠돌아다니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 동네에 머물면서 돌하루방에게 빌던 짙은 화장을 한 여인들처럼 갯미역처럼 이리저리 세상의 파도에 휩쓸려 다니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녀의 동선은 서울에서 광주로 해서 이제 목포까지 내려간 모양이었고 자신은 정체를 드러내놓지 않는다고 하였지만 전신환 발신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영희의 예쁜 얼굴을 야비한 세상은 놓치지를 않고 집요하게 어두운 곳으로 끌고 들어가고 있었다.
그녀가 영도 봉래동에 살 적에도 골목 안에서 한 번씩 마주치는 색시들의 운명이 무엇인지 궁금하였고 그 길이 어떤 길인지 알고 싶었던 것이던가. 영희는 때 묻은 거울에 비친 자기의 얼굴을 보려고 입김을 호호 불어보았다. 움푹 파인 눈, 축 처진 목젖, 서리 내린 머릿가락, 칼자국 같은 주름살, 분노에 떨면서도 조소하는 눈빛은 틀림없는 예전에 보았던 봉래동의 늙은 색시의 모습 그대로 이었다. 그는 다시 웃으면서 삼십 년간 간직해 온 손거울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그 거울의 손잡이에는 해수관음보살이 미소를 머금고, 테두리에는 비천선녀가 하얀 옷을 걸치고 승천하는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나는 오랜만에 영태를 만나러 대연동 못골시장으로 갔다. 그곳은 영태가 자주 드나드는 막걸리집으로 녹두 빈대떡이 맛이 있어 소문난 곳이었다.
“요새 어찌 지내는가. 애들 가르치는 게 쉽지는 않겠지. 자네 꼬치 친구들은 잘 지내고 있는가.”
“학교생활이 본래 고리타분한 게 아니던가. 그런 분위기가 좋아서 갔으니 잘 버티고 있네. 요새 명진이 소식이 뜸하네.”
“안 그래도 명진이 이야기하려던 참이었네. 요새 은행에 연체도 한 번씩 하던데 자금사정이 어려운 모양인가 봐.”
“안 그래도 그 친구가 고집이 세더라구. 아마 자가 아버지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가업을 기필코 지켜야 한다고 말일세.”
“그 친구가 언젠가 자기 공장을 한번 방문해 달라고 하데. 무슨 또 다른 부탁이 있는 것 같기도 한 인상을 받았지.”하고 영태하고 나눈 이야기였다.
명진이는 영도를 떠나기가 싫은 건지 효도를 하려는 것인지 영도사람들을 먹여 살리려는 포부를 갖고 있는지 동삼동에 있는 그물공장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렇다고 제삼자의 입장에서 함부로 정리하라고 할 수가 없는 것이 돈보다도 더 중요한 가치를 버리라고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고집과 예의 때문에 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날을 잡아 근무시간에 출장을 달고 명진이네 공장을 찾아갔다. 사무실 분위기는 잠잠하였고 무거운 침묵이 나를 맞았다. 대표이사실은 불을 꺼놓고 어두컴컴한 상태였다. 점심시간도 아닌데 낮잠을 자고 있는지 알 수는 없었다. 사장실을 노크하니 잠시 후에 문이 열렸고 명진이가 나왔다. 얼굴은 푸석푸석했고 웃음은 쓸쓸하게 보였다.
“선배님 낮에 시간을 내어 찾아주셨네예. 어제 체납된 임금을 다 정리하였습니다.”
“그렀구먼, 매출은 줄고 있고 인건비라던가 경비가 그대로이니 자금이 어려울 수밖에 더 있겠나.”
“내가 좀 미련한 것 같습니다. 그간 정들었던 영도출신 종업원들을 자를 수가 없더군요.”
“어찌 보면 유사장이 애국자이고 영도를 사랑하는 사람이겠지. 세상은 성공을 보이는 것으로만 보니 안타깝기만 하네.”
“선배님 오늘 저하고 술이나 한잔 하면 어떨까예. 자금지원을 해달라는 이야기는 안 할 테니 걱정은 마시고요.”
“유사장은 몸이 그래서 술을 마시면 안 되는데 술을 마시고 싶은 모양이지.”
“그냥 저의 이야기만 들어주시면 되고 저는 사이다를 술처럼 마실께예.”
“아이구 어쩌나 오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후에 간부회의가 정해져 있는데 내가 다음번에 퇴근 후에 들럴께.”하고 명진이와 나눈 대화였다.
나는 그날 마음이 무거웠고 명진이가 술이나 한잔 하자고 하는데 거절 아닌 거절을 하였으니 말이다. 술을 마실 수 없는 상태인데도 술 한잔하고 싶다는 그의 말에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넘겨버렸다. 나는 명진이가 분명히 깊은 고뇌와 좌절감에 빠져있다는 인상을 사무실 분위기에서 직감했다. 사무실 직원은 모두 다 영도 후배들이었고 현장 종업원들은 아버지대에서부터 오랫동안 공장을 일구어온 창업공신들이거나 공신들의 자제들이었다.
명진이는 스스로를 어디에다 갖다 놓아야 하는지 모를 정도로 방황하고 있었다. 자기 방의 불을 꺼놓고 어둠 속에서 또 다른 빛을 찾고 있었는지 부쩍 어둠을 가까이하였다.
중풍이 온 것은 사업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이었지만 지금은 그 약속이라는 단어가 주는 강박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약속만 버리면 살 수가 있었고 망각을 통하여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그는 그 약속들을 저버릴 수가 없었다.
나는 퇴근한 후에 중앙동 술집으로 영태를 불러내었다. 그 집은 영도가 바라다 보이고 영도의 갯내음이 풍겨오고 외항선의 뱃고동이 한 번씩 울려 퍼져 오는 용두산 자락에 있다. 그곳에 앉으면 영태에게서 좀처럼 보기 힘든 미소를 찾아볼 수가 있다.
“며칠 전에 명진이를 만났는데 표정이 많이 어둡데. 사업이 자꾸 뒷걸음치는 모양이야.”
“그래도 집안에 모아둔 돈이 있어 망하기야 하겠나. 혹시 우울증에 빠질 수는 있겠지.”
“아! 그래. 그러면 큰일인데. 사람은 실패보다는 우울증이 겁나다고 하던데.”
“한번 저녁에 찾아가 보면 어떨까. 그날 저녁 자리를 못한 게 심히 마음에 걸리네.”
“별 큰일이야 있겠나. 모르지 우울증이 무슨 장난을 칠지도 모르겠지만......”하고 영태와 나눈 이야기였다.
명진이는 정신적인 병을 얻었고 뇌출혈까지 덮쳤으니 신체적 장애가 정신을 또 피폐하게 한 촉매가 되었다. 지금은 오히려 연락하기가 두려워졌고 무슨 불길한 소식이 당도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영태가 말한 것처럼 그 큰일이라는 것은 죽음이었고 자꾸 죽음이 떠올랐다. 이미 나의 예감 속에는 그의 앞길이 어렴풋이 보이는 듯하였다. 한 번씩 봉래산 정상에 세워진 송신탑의 깜박이던 불빛이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는 날이 있었다. 영도를 지나가는 연락선의 뱃고동이 유난히도 처량하게 들리는 날도 있었다. 높은 파도가 함지골 절벽을 할퀴듯이 울부짖던 날도 있었다.
어느 날 석간신문에 그 사람의 부음이 실려있었다. 바로 명진이었고 사인은 적혀있지 않았다. 나는 경리과장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의 말에서 크나큰 충격을 받았다. 명진이는 공장의 고압변전실안에서 감전사 한 채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변전실 열쇠를 담당직원에게 안전점검을 한다고 하면서 달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그 시간 후에 변전실에는 불꽃이 튀었고 고기 타는 냄새가 진동하였다고 한다. 또 사망하기 전날 퇴근 때 사무실 직원들에게 하나하나 손을 잡아주었다는 것이다. 몇 달간 대표이사실에는 불이 꺼져있었고 안으로 문을 잠그고 노크를 해야 열어주었다고 하였다.
나는 명진이가 떠나던 날에 영도가 바라보이는 자갈치 포장마차에 혼자 앉았다. 봉래산 꼭대기의 통신탑 점멸등은 어둠 속에서 꺼졌다가 켜졌다가 깜박거리고 있었다. 혼자서 마시면서 나는 자살방조자라고 자책하였다. 또 공감을 못하는 장애인이라고, 눈치도 볼 줄 모르는 장님이고 구원의 목소리를 외면한 방관자라고 말이다. 그날은 나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죄책감을 안겨주었고 혹독한 우울증이 전염된 날이었다.
어느 날 흑산도에 저녁해가 저물고 어둠이 깔린 초저녁이었다. 구명사라는 절이 있는 해변가에 커다란 불기둥이 일어났고 얼마 후 금빛재를 흩날리며 차츰 사그라들었다. 몇 시간 후에는 한 척의 배가 등불을 밝히면서 무엇을 흩뿌리듯이 요리조리 움직였다. 그 금빛재들은 서풍에 밀려 동쪽으로 실려가고 있었다.
“아참 김보살이 불쌍하네. 이곳까지 밀려와서 더 갈 데가 없어서 빠져 죽었나 보네. 시방.”
“얼마 전에 자기가 아끼던 은으로 만든 수제거울을 나한테 가져라고 주던데 그때 알아챘어야 하는데.....”
“아마 뭍으로 돌아갈 힘이 없었고 기다리는 사람도 없었는지 말이제. 시방.”
“여기가 여자들의 종착점이 아니던가 흐흐.....”하고 같이 구명사에 나가던 보살들끼리 나눈 이야기였다.
명진이는 떠나서 하늘공원에 묻혔고 그의 혼은 하늘이 아닌 영도를 감돌고 있었다. 죽기 보다도 영도를 떠나기가 어려웠던 이유가 무엇이던가. 그것은 어머니 자궁 속의 배냇물 냄새 같은 갯내음을 결코 잊을 수가 없었기 때문일까. 이제 영도를 지키는 사람은 없었고 모두 다 다른 동네로 가거나 먼 곳으로 가거나 아니면 낙도로 간 사람만 있을 것이다. 영태는 이제 명진이가 떠나고 난 뒤에 영희가 걱정되었다. 그는 영희의 남동생에게 전화를 걸어서 물어보았다.
“누나 소식이 없나. 자꾸 걱정이 되네. 편지는 지금도 오고 있나.”
“여전히 편지 내용은 없고 전신환만 부쳐 옵니다. 흑산도 우체국 소인이 찍혀있던데요.”
“전번에는 목포이더만 몇 년 사이에 흑산도로 갔다는 말이네. 이제 나이도 환갑이 되었을 텐데.”
“왜 자꾸 바다로 섬으로 가는지 알 수가 없네요. 영도에서 멀어지고 싶는가 모르겠네요.”하고 영희 동생과 나눈 대화였다.
영태는 마냥 영희를 그대로 둘 수가 없었다. 아마 목포에서 흑산도로 갔다면 짐작이 가는 것이 있었다. 그는 여름방학 기간을 틈타 흑산도로 들어가기로 했다. 목포에서 여객선을 타고 검푸른 물결을 가르고 물보라가 날리는 뱃머리에 앉아서 조용히 생각에 잠긴다.
중학교 3학년 시절에 수학을 좀 가르쳐 달라고 그의 집으로 와서 가까이 머리를 대고 앉아서 야릇한 기분을 느껴 슬쩍 그의 허벅지를 만져보기도 하였고, 한여름 함지골 몽돌밭 해변에서 물놀이하는 영희를 가운데로 끌고 들어가 허벅을 껴안듯이 보듬어 보았고, 그 물컹하게 다가오는 감촉에 짜릿한 감을 느끼기도 하였었다. 대학시절 가을비가 내리는 부산데파트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영희를 만나 우산을 함께 쓰고 영도다리를 건너 집까지 같이 걸어오지 않았던가. 가을비에 젖은 머리칼에서 나는 야릇한 내음을 서로 주고받으며 긴 시간을 걸어오지 않았던가. 어릴 때 영희가 그의 첫사랑이었고 그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봉래동 골목을 들어서서 색씨들 집 앞을 지나갈 때 그는 조금 당황하였고 그 모퉁이에 있는 돌부처상을 보고 영희가 말을 걸어왔다.
“영태야, 이 골목에 왜 돌부처가 군데군데 있을꼬. 누가 세웠는지 어릴 때부터 있었는데......”
“아마 색씨들이 돈을 많이 벌어서 이곳을 떠나게 해달라고 빌기 위해 그런 게 아닐까.”
“이곳에 오는 사내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바람둥이가 대부분이겠지.”
“하하, 다 그런 건 아니고 외로운 사람들이 더 많을 거야.”
“그러면 색씨들은 좋은 일도 하네. 안 그렇나.”하고 영희와 나눈 이야기가 떠올랐다.
영태는 흑산면 사무소에서 영희의 소재를 물었는데 가명을 쓰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날 저녁에 여관을 잡아놓고 유흥가로 나갔다. 혹시 영희의 소식을 탐문할 수 있을는지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선창가 주막에 자리 잡았다.
“사장님, 혹시 이 마을에 부산 사투리를 쓰는 60대 초 아주머니가 있는가요. 얼굴은 동그랗고 예쁘지요.”
“아이구, 손님도, 흑산도 바닥이 울매나 넓은데 서울에서 김서방을 찾는 것 같은 것이라고 라.”
“한 십 년 전에 목포에서 흑산도로 들어간 것으로 보이는데 잘 생각해 보이소.”
“가만있자, 그러면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김보살인가 하는 여자가 맞는지 모르겠네요. 그런데 그 사람은 얼마 전에 죽었당게요.”하고 주막집 주인하고 나눈 대화였다.
영태는 영희가 흑산도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고 그 영가를 구명사에 모시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소식이 아니고 직감이었고 확실한 물증은 꿈이었다.
영태는 흑산도 구명사 주지스님에게 부탁하여 위패를 하나 만들어서 영도로 들어왔다. 태종대 자살바위 옆에 있는 구명사라는 절은 자살을 하러 온 사람의 발길을 돌리도록 아니면 영혼을 달래주기도 하는 절이다. 매년 몇 명의 여인들이 마음의 자유를 구하기 위하여 몸을 꾸준히 던지고 있는 곳이다. 그들은 해류를 따라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영태는 태종대 구명사에 영희의 위패를 모셨다. 어둠이 깔리자 절벽아래 갯바위에 파도가 부서지고 영희가 싣고 온 파편은 별빛에 아롱져서 금빛재로 빛나고 있었다. 이미 흑산도에서 흘러온 해류는 절벽에 부딪치면서 머무르기만 하고 떠나려 하지 않았다.
이제 남은 친구는 없었고 영도를 지키는 사람도 없었다. 명진이가 죽어서도 떠나기 싫어하던 영도, 영희가 저 멀리 흑산도에서 해류를 따라 돌아오고 싶어 했던 영도, 영태가 매일같이 그의 아버지처럼 바라보던 영도는 언제나처럼 허연 포말을 드러내며 숨 쉬고 있었다.
영태는 명진이와 영희를 떠나보내고 나서 영도가 자기를 부르는 목소리를 자주 들었다. 그는 영도가 바라보이는 신선대 쪽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부쩍 영도를 쳐다보는 시간이 늘었고 그 눈길도 간절했다. 예전에 그의 어머니는 영도 밖으로 나가서 돌아오지 말라고 하였고 아버지는 말이 없었었다. 그 어머니의 말은 뭍으로 나가서 큰 꿈을 키우고 험난한 바다를 버리라는 뜻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어머니보다는 아버지의 기질을 닮았고 습관도 닮았다. 시간만 나면 영도가 마주 보이는 신선대에 올라가서 바다 건너 태종대를 바라보았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자꾸만 그를 영도로 불러들이고 영희와의 감미로운 추억들을 재생하였다. 그의 아버지가 항상 제주도를 그렸듯이 그 역시 그랬다.
어느 날 영태의 아들이 자기 어머니와 나눈 대화가 있다.
“어머니, 요새 아버지가 부쩍 베란다에 나가 영도를 자주 쳐다보고 있네요.”
“그래, 너그 아버지가 이제 마음이 바뀌었나 보네.”
“예전에 할아버지도 옥상에 올라 저 멀리 제주도를 하루 종일 그리워하지 않았나요. 어머니 영도로 들어가 입시다. 부탁입니다.”
“오냐, 너가 아버지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구나. 부전자전이 맞는 것 같다.”
영태는 가족들의 자발적인 동의에 의해 영도로 돌아왔다. 뱃사람 대신 선생이 되었지만 배고픈 아이들에게 꿈을 꾸게 하였고 또 그들만의 아름다운 세계를 만들어 주는 설계자가 되기도 하였다. 선생은 그의 천직이었고 수많은 제자들이 방류되어 성어가 되어 그들만의 터전을 지켜나가도록 하였다. 비록 모은 재산은 별로 없었지만 영도로 돌아올 수 있는 용기라는 귀한 재산이 있었다. 또 가격으로 따질 수 없는 가족의 화합이 있었고, 연어처럼 모천회귀를 하는 본성이 살아있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결실이었다. 그가 본가를 떠난 지 30년 만의 귀향이니 영도도 많이 늙어 보였지만 여전히 파도소리와 갯내음은 그 시절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었다.
영태가 영도로 돌아온 날 그는 봉래동 시장통으로 막걸리도 한잔 할 겸 나갔다. 시장은 예전보다 얼굴은 바뀌었지만 마음은 훈훈하게 그를 맞아주었다. 그 술집 주인은 어머니에서 딸로 바뀌었고 간판도 그대로 달고 있었다. 그 딸도 얼굴에는 실파처럼 가는 주름살이 보름달처럼 생긴 쟁반 위의 파전처럼 옛날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영태도 모습은 변했지만 마음은 예전 그대로였다. 오직 영도가 변한 건 새로운 다리가 생겼고 하루 두 번씩 끄떡끄떡 하며 들어 올리고 내리던 그 늙은이 다리는 힘을 다하였는지 움직임을 멈추었다는 것이다. 영태의 모습도 영도의 모습도 변하였지만 파도는 여전히 허연 포말 속에 추억을 뱉어내며 숨 쉬고 있었다. 어차피 떠나야 할 사람들은 떠났고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은 그 자리에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