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교사와 학생 사이 #제주 서귀포 #외돌개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발령받은 신규교사 장미향입니다."
1999년 3월 1일 자로 신규 발령을 받은 미향은 2월 말, 일주일의 신규교사 연수를 마치고 근무하게 될 학교에 찾아갔다. 교문에 들어서면서부터 가슴이 뛰었다. 졸업 후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얼마나 이 순간을 기다려왔던가. 아니 교대에 입학하면서부터 이 순간만을 꿈꾸며 쉼 없이 달려왔던 미향이었다. 동기들보다 2년이나 늦은 발령이었지만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학교로 출발하기 전, 부모님께서 발령 축하선물로 사주신 바지 정장을 단정하게 입고 미향은 거울 앞에 섰다.
"장미향, 이제 넌 정식 선생님이야. 축하해! 넌 잘 해낼 거야!"
발령 난 학교로 가는 버스 안에서 창문 밖을 내다보고 있자니 2월 회색빛 하늘도 왠지 화창한 푸른 하늘처럼 근사해 보였다. '이제 매일 가야 하는 길이니 잘 봐 둬야지.'생각하며 내려야 할 정류장을 지나치지 않도록 버스 노선도를 뚫어지게 바라보다 벨을 힘차게 눌렀다.
"저는 사진만 보고 이번에는 남자 신규교사가 오는구나 싶었는데."
인사를 마친 교장선생님의 말이 어쩐지 남자 교사가 아니라서 실망한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이내 밝은 표정으로 맞아주셨다. 초등학교 현장에서 남녀 교사 성비 불균형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다. 남학생들이 교대를 많이 지원하지 않는 이유도 있겠지만 여학생들 입학 성적이 워낙 좋아서 지원한 남학생들도 합격하기 매우 힘들었다. 예전에는 입학정원에 아예 처음부터 남녀 학생 비율을 정해 신입생을 뽑았지만 그것도 여교사 쏠림현상을 해소하기에는 대안이 되지 못했다. 교육대학교 교육과정이며 임용고시에서 상대적으로 수적으로나 성적으로나 여학생들이 우세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신규교사 임용도 여교사가 월등히 많았다. 특히 대도시에는 성적이 우수한 여학생들이 대부분 지원했다. 그리고 이번에 이 학교에 함께 발령 난 다섯 명 신규교사 모두 여자였다. 교장 선생님의 아쉬운 표정에서 학교 현장에서는 남교사를 선호한다는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신규교사 자체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부푼 가슴으로 맞이한 첫 대면부터 환영받지 못한 존재라니! 미향은 꽃길만 걸을 줄 알았던 '선생님'이라는 단어엔 가시밭길도 많다는 것을 첫날부터 직감했다.
"학년 및 업무 분장 희망서에 어떤 업무를 하실 수 있는지 교육대학교 전공학과와 남은 업무 중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순서대로 기록해주세요. 학년은 이미 정해져 있으니 적지 않으셔도 됩니다."
신규교사에게는 선택권이 거의 없었다. 그나마 여러 명이 같이 발령이 나서 그 수만큼 비어있는 업무와 학년에서 선택권이 있을 뿐. 학교에는 철저한 서열이 존재했다. 그것이 교장 선생님이나 교감 선생님이 독단적으로 정하는 서열이든, 대표교사들의 조직인 학교인사위원회에서 학교 근무년수, 학년 점수, 업무 점수 등에 차등을 두어 획득한 점수 서열이든 그 서열대로 다음 한 해동안 자신이 맡게 될 학년과 업무를 결정했다. 비단 신규교사만 학교에 새로 들어온 사람들은 아니었다. 기존 선생님도 공무원이기 때문에 정부가 정한 기한이 되면 인사이동을 해야 했다. 한 학교에 4년 또는 5년 이상 근무할 수 없었고 반드시 다른 학교로 옮겨야 했다. 혁신학교나 그 밖의 예외 사유로 '근무 유예'를 신청하여 몇 년 더 근무할 수도 있지만 그마저도 학교 전체 교사 정원에 몇 퍼센트로 제한되어 있고 그 기간도 길지 않았다. 그래서 선생님들은 4년 내지 5년마다 새로운 학교에서 다시 시작해야 했다.
한 번 옮긴 새내기 교사든 열 번 이상 옮긴 원로교사든 학교를 옮길 때마다 적응하고 다시 시작해야 하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뒤로 하고라도 학교를 옮기면 서열 점수가 가장 낮아서 자신이 원하는 학년이나 업무를 고를 수가 없었다. 학교에 먼저 근무하고 있는 선생님들이 그 학교 기득권층이었다. 학교 근무년수가 같으면 교사 경력으로 서열이 정해졌다. 서열 점수가 높은 기존 선생님들은 이미 힘든 학년이나 업무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선호도가 높은 학년과 쉬운 업무를 선택했다. 그 후 남아있는 기피 학년과 업무는 새로 들어온 선생님들 몫이었다. 그런데 새로 학교를 옮긴 선생님보다 더 서열이 낮은 계층은 신규교사였다. 이제 막 학교현장에 투입되어 학교 시스템도 낯설고 학생관리나 학부모 상담도 힘든 신규교사임에도 그런 건 상관하지 않았다. 한 해 삶의 질을 결정하는 학년과 업무 선택은 차열한 생존싸움이었다. 결과적으로 신규교사에게는 가장 비선호하는 학년을 맡기고 업무난이도가 높고 업무량이 많은 기피 업무가 배정되었다.
그런데 미향은 의아하게도 비교적 선호 학년인 3학년에 배정되었다. 미향만 그런 게 아니었다. 다섯 명 중 세 명이 같은 학년이었다. 일반적으로 업무에 서툰 신규교사나 그 비율이 적은 남교사는 학년 고루 배정하는 게 당시 관례였다. 또한 학교에서 가장 선호하는 학년은 2, 3, 4학년이고 막 학교에 입학하여 가르칠게 많은 1학년이나 사춘기가 시작되어 학교폭력사건이 자주 발생하는 5, 6학년이 비선호 학년이라는 것은 미향은 차차 근무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예외적으로 어떤 학년에 엄청나게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이 있거나 민원제기가 빈번한 힘든 학부모가 있으면 2, 3, 4학년이라고 해도 선생님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데 신규교사에게 서열 점수가 높아야만 배정받을 수 있는 3학년이라니? 일 년이 지난 후 미향은 알게 되었다. 세 명의 신규교사가 한 학년에 그것도 최고 선호 학년에 배정되었던 이유를!
선생님들이 학년을 정할 때 고려하는 게 한 가지 더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누가 그 학년에서 같이 근무하게 될 것인지였다. 선생님이라고 다 성인군자나 테레사 수녀님 같지는 않은 법, 선생님 중에서도 함께 근무하면 날마다 뼈와 살이 마르고 잠도 못 잔다는 악명 높은 선생님이 선택한 학년은 어느 누구도 지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1학기가 한참 지나서였다. 처음 인사하고 학년 배정받은 날, 교무실에서 3학년에 배정된 신교교사들을 측은하게 바라보던 다른 선생님들의 눈빛이 미향은 어쩐지 신경이 쓰였었다. 하지만 신규교사에 대한 선배로서 온정 어린 눈빛이거니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미향은 몇 분 후 자신이 만나게 될 사람이 자신의 교직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줄지 그 순간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누구나 선호하던 3학년이 세 자리나 비었던 이유도 바로 이 사람 때문이었다.
본관 2층에 있는 3학년 교재 연구실로 올라갔다. 문을 여는 순간, 드디어 마주 한 3학년 부장 '안하무'. 세 명의 신규교사를 보며 웃는 것 같기도 화난 것 같기도 한 애매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서 와, 학교는 처음이지?"
다음화에 계속
14화. 인사를 잘했을뿐인데
[장미향 나는 213번째 선생님]
'2부. 나쁜 학교, 나쁜 선생님'
연재를 시작합니다^^
앞으로 펼쳐질 신규교사 장미향 선생님의 학교에서 살아 남기 위한 고군분투기를 기대해주세요!
연재소설에서 설정한 다양한 상황과 인물들은 허구이니 실제 인물, 장소, 직업과는 관련이 없음으니 허구로 재미있게 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