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임용고시에 떨어지다 #자존감 회복 #제주도 #우도 검멀레 해변
“선생님, 예뻐요.”
미향이 그동안 들어본 적 없는 말이었다. 성형수술을 한 것도 아니고 예전 얼굴 그대로인데 뭔가 달라졌다. 이전까지 미향의 얼굴에는 어딘지 모를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것이 사라진 건 마음 상처들을 치유하고 자신이 누구인지, 사는 이유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게 된 이후부터였다. 미향은 예전보다 훨씬 잘 웃고 밝은 표정으로 바뀌었다. 본디 활발한 성격으로 자신감이 넘치는 캐릭터여서 사람들을 만나면 명랑한 모습이었지만 혼자 있을 땐 늘 어두침침하고 우울한 표정이라 “선배님 혼자 지나가면 무서워서 인사를 못하겠어요.”라는 말을 대학 후배에게 들을 정도였다. 대학 때 필름 카메라로 사진작가 친구가 찍어준 수많은 사진 중 한 장도 맘에 드는 사진이 없었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으리라.
그런 미향에게 기간제로 근무하게 된 학교에서 만난 학생들이 볼 때마다 “예뻐요.”라고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미향은 처음엔 들어본 적 없던 말이라 어색해 곧이곧대로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학생들이 매일 해주는 그 말이 어려서부터 추하게만 느껴졌던 자신을 왠지 매일 조금씩 더 예쁘게 만드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 또한 마음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격려하고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말들을 속으로 생각만 하지 말고
내 귀에 들리게 소리 내어 말하기
글씨로 써서 잘 보이는 곳에 붙여놓기
거울 보며 자신을 향해 격려와 칭찬하기
같은 방법으로 하루에 세 번씩(증상이 심할 땐 하루 5회) 복용하라는 '자존감 회복약 처방전'을 상처 치유 강사님께 받았다. 미향은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잠들기 전까지 처방전대로 날마다 하루 세 번씩 거울 앞에서 자존감 회복약을 소리 내어 외치며 복용했다.
“넌 괜찮은 사람이야.”
“넌 아침에 막 일어나도 이쁘구나.”
“넌 잘 해낼 거야.”
“넌 사랑스러워.”
"너를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 말은 듣지 마."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실 거야."
집에서 거울을 보며 자신을 향해 격려와 칭찬의 말을 하기 시작할 때와 비슷한 시기에 다른 사람들도 미향을 만날 때마다 그런 말을 해주기 시작했다.
“미향아, 너 얼굴이 환해졌다.”
“미향아, 왠지 분위기가 달라졌네. 무슨 좋은 일 있어?”
“너 연애하지? 기집애, 얼굴 이뻐진 거 봐.”
“선생님, 하나도 안 무서워요. 항상 웃으시니까.”
"선생님, 진짜 예뻐요. 좋아해요."
6개월간의 훈련 과정을 마치고 자존감을 회복한 미향은 시골마을 기간제 선생님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9월에도 발령이 나지 않아 다시 일자리를 구해야 했는데 마침 미향이 살고 있는 도시에서 가까운 작은 시골 학교에 기간제 교사 자리가 생겼다. 그 학교는 전체 학생수가 45명, 학년에 한 반뿐이고 학생수는 학급당 5~10명이었다. 미향은 4학년을 맡았는데 학생은 8명이 전부였다. 학생수가 너무 적기 때문에 운동장 한편에 있는 급식실에서 직접 조리하지 않고 근처의 큰 학교에서 급식을 가져와 교직원과 학생들이 먹었다. 도시와 가깝지만 바로 앞까지 가는 교통편이 없어서 처음엔 시외버스를 타고 정류장에 내려 30분 넘게 걸어 다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도시에서 출퇴근하시는 병설유치원 선생님 차를 얻어 타고 다녔지만 출퇴근길이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미향은 하루하루 즐거웠다.
학교에서 근무는 처음이라 업무는 서툴고 속도는 느려서 허둥댈 때가 많았지만 학생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늘 즐겁고 에너지가 넘쳤다. 하루 종일 이리저리 열심히 뛰어다녀도 피곤한 줄 몰랐다. 사는 게 재미있었다. 여덟 명의 학생들 역시 늘 밝게 웃으며 재미있게 수업하는 장미향 선생님을 좋아했다. 쉬는 시간에도 선생님 주위에서 떠나지 않고 이것저것 재잘거리며 수다를 떨었다. 미향은 학생 한 명 한 명이 자신처럼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 놓치지 않고 관심을 기울였다. 그리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말해주었다.
"넌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사람이야. 공부를 못해도, 어떻게 생겼어도, 잘하는 게 하나도 없어도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넌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아이야. 그리고 네가 소중한 것처럼 네 옆에 있는 친구도 똑같이 소중한 사람이란다."
미향은 집에서 경제적인 독립할 수 있고, 늘 새롭고 긍정적인 일이라는 단순한 조건 때문에 교대에 갔었다. '선생님'이라는 직업에 어떠한 사명감이나 원대한 꿈은 없었다. 하지만 이제 미향에게 선생님은 그저 안정적인 직업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는 엄청나게 중요한 사람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학교에서 앞으로 만나게 될 사람들, 학생, 학부모, 동료 교사 이외의 수많은 이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야 하는지, 그들을 위해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미향은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이전의 우울한 미향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드디어 다음해 3월 정식 발령을 받았다. 그녀는 마침내 '장미향 나는 213번째 선생님'이 되었다!
지금까지 '장미향 나는 213번째 선생님'의 '1부. 임용고시에 떨어지다'를 봐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전개될 신규교사 장미향 선생님의 학교에서 살아남기 위한 고군분투기 '2부. 공무원, 교사 그리고 선생님'도 많이 기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