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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WATNEUNGA Aug 15. 2022

11화. 용서와 치유

1부. 임용고시에 떨어지다 #새 술은 새 부대에 #제주도 비자림

  "나는 너를 용서해!"

  "나는 이제 치유되었어!"


  이렇게 말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이 말을 하기 위해서는 몸에 난 상처를 치료하듯이 마음에 난 상처가 기억나지 않을 때까지, 다친 곳이 다 아물어 다치기 전처럼 더 이상 아프지 않을 때까지 치유해야 한다. 다 나은 몸의 상처에도 흉터는 남는다. 마음의 상처도 흉터가 생긴다. 비슷한 상황,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마음속 상처가 다시 욱신거리고 아프다면 완치되지 않았다는 증거다. 더 이상 신경 쓰이지 않고 상처받은 기억을 떠올려도 아프지 않을 때 비로소 '완치'라는 단어를 쓸 수 있다.

  몸에 난 상처는 눈으로 볼 수 있지만 마음에 난 상처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마음에 난 상처를 치유하기가 더 어렵다. 설령 치유된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다시 아파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람들은 흔히 '시간이 약이다'라고 말하지만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아물지 않는 마음의 상처들이 더 많다. 부모님, 선생님, 형제자매, 친구, 직장 동료, 심지어 모르는 사람에게도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 어릴 때 받은 상처 때문에 어른이 돼서도 아프다. 시간이 해결해주는 건 극히 가벼운 상처다. 깊은 상처는 고스란히 인생의 걸림돌이 되어 더욱 자신을 아프게 한다. 마음의 상처가 생기지 않는 게 가장 좋다. 하지만 그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여리고 약한 어린아이는 상처를 주면 받을 수밖에 없다. 깨지기 쉽고 한 번 깨지면 붙이기 어려운 유리공 같다. 어른이 되어도 깨진 자리가 욱신거린다.

  우리가 마음의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다면 치료제를 알아야 한다. 그 치료제는 바로 용서다. 상처가 덧나지 않으려면 상처가 생기자마자 즉시 상처를 준 사람이 바로 진심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 그 진심이 전해져 상처 입은 사람이 용서해주면 마음의 상처는 흉터 없이 바로 아문다. 하지만 상처 준 사람이 용서를 구하지 않거나, 그럴 맘이 없거나 , 상처를 준 사실조차 모르거나, 시간이 많이 지나 기억도 못하고 만날 수도 없을 땐 상처 입은 자리엔 세월이 흘러도 아물지 않는 흉터가 남는다.

   '나는 누구인가?', '사는 이유는 무엇인가?'의 답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 상처 입은 마음을 치유해야 했다. 몸과 마찬가지로 마음도 상처가 있으면 정상 생활을 할 수 없다. 상처 입은 마음을 치유해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사실 미향은 이전까지 자신이 마음의 상처가 있는 줄도 몰랐었다. 선교단체의 제자훈련학교에서 '상처 치유'프로그램에 참여해서야 자신이 상처투성인걸 깨달았다.


  "조용히 눈을 감고 어린 시절, 가장 슬프고 아팠던 기억을 떠올려 보십시오."


   '상처 치유'에 관한 저서도 많고 유명하신 외국인 목사님께서 말씀하시면 한국인 목사님께서 통역해주셨다. 거기 모인 사람들은 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피아노 선율을 들으며 눈을 감고 한동안 조용히 앉아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한 사람의 흐느낌을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울음소리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처음엔 작은 흐느낌이었다가 점차 절규에 가까운 울부짖음으로 바뀌었다.

  미향이 떠올린 장면은 아무도 없는 깜깜한 방구석에 움츠리고 앉아 울고 있는 어린 미향의 모습이었다. 그곳은 4학년 때 부모님과 셋이서 이사했던 산속에 덩그러니 한 채만 있는 집의 작은 방이었다. 일하느라 바쁘신 부모님은 늘 새벽 일찍 나가서 어둑 컴컴한 저녁이 돼서야 돌아오셨다. 어린 미향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저녁때까지 항상 혼자였다. 일하고 돌아오시는 부모님을 위해 밥도 해놓고 간단한 청소나 빨래를 하고 나면 혼자서 캄캄한 방구석에 앉아있을 때가 많았다. 그 집에선 2년만 살고 인근 마을로 이사했는데 왜 그 집이 떠올랐는지 미향은 어리둥절했다. 이윽고 미향은 너무 슬퍼졌다.


  "그곳에서 무얼 하고 있나요?"

  "그냥 웅크리고 울고 있어요."

  "그 순간 어떤 마음인가요?"

  "너무 무섭고 외롭고 슬퍼요."

  "왜 무섭고 외롭고 슬픈가요?"

  "부모님이 돌아오지 않으셨어요. 산속이라 혼자 있기 너무 무서워요. 이대로 나 혼자 남으면 어쩌나 무섭고 외로워서 울고 있어요."


  그 말을 한 뒤 미향은 주체할 수 없는 슬픔으로 흐느끼기 시작했다.


  "부모님께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나요? 제가 자매님 부모님이라 생각하고 저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모두 쏟아내 보세요."

  "엄마 아빠, 전 아직 아이예요. 혼자 있는 게 무서워요. 씩씩한 척했지만 사실 너무 겁이 나고 힘들어요. 응석도 부리고 투정도 하고 아무 생각 없이 철없는 제 나이 어린애처럼 살고 싶었어요."


  미향의 울음은 통곡에 가까워졌다.


  "미안하다, 아가야. 엄마 아빠가 너를 혼자 내버려 두었구나. 넌 아직 어린데 우리가 널 돌보지 못했구나. 미안하다, 아가야. 엄마 아빠를 용서해다오. 사랑하는 미향아. 내 딸아."


  목사님은 미향에게 부모님 대신 용서를 빌었다. 어떤 상황이든지 부모는 자녀를 돌봐야  한다. 하나님께서 부모를 주신 이유는 보이지 않는 신의 사랑을 보이는 부모를 통해 자녀에게 전해주기 위함이다. 비 맞은 아기새처럼 웅크리고 앉아 두려움과 외로움에 떨며 울고 있는 미향을 진행 스텝 중 한 분이 울음을 그칠 때까지 꼭 안아 주었다. 그렇게 울부짖던 울음소리가 잦아질 때쯤 미향은 가슴속에 나무뿌리처럼 깊이 박혀있던 무언가가 뽑혀 나간 것처럼 마음이 뻥 뚫려 후련해졌다. 그리고 이어서 떠오른 다른 장면이 미향의 마음을 더욱 따뜻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캄캄한 방구석에 울고 있는 어린 미향을 꼭 안고 계시는, 미향이 여섯 살 때부터 믿어온 하나님의 모습이었다. 늘 혼자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신은 미향을 세상에 혼자 두지 않으셨다! 항상 곁에서 지켜주고 계셨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미향을 짓누르던 외로움과 슬픔과 두려움이 다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이제 부모님을 용서할 차례입니다. 자매님, 부모님을 용서해주시겠습니까?"

  "비록 가난 때문에 어린 나를 돌보지 못하고 혼자 내버려 두셨지만 부모님은 늘 나를 걱정하시고 사랑하셨습니다. 부모님을 용서합니다. 그분들의 삶도 많이 고달파서 어린 딸이 혼자서 잘 커주길 바라셨을 테니까요."

  그 후로도 수많은 마음의 상처들을 꺼내어 용서하고 치유하기를 6개월의 훈련 기간 내내 반복했다. 태어나서 그렇게 많이 울어본 적이 있었을까.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은 무척 어렵고 힘든 일이었지만 가능한 일이었다. 상처 치유를 하면서 어린 시절 가장 가까이 있는 가족과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는지 알고 나서 무척이나 놀랐다. 어른이 되면 어느 정도 상처받지 않게 무시하거나 상황을 피할 수도 있지만 어린아이는 그럴 힘이 없다. 상처를 주면 주는 대로 그대로 상처 입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다. 어린 미향의 상처 중 가장 많은 상처는 부모님에게 받은 것이었다. 부모님보다는 적지만 선생님한테 받은 상처도 많았다. 이 사실은 다른 아이들도 별반 다를 바 없다. 마음의 상처는 치유하기가 매우 어렵다. 미향은 앞으로 자신이 부모와 선생이 되면 처음부터 상처 주지 않도록 세심하게 관심을 기울여야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상처 치유가 끝나고 미향은 가치 없는, 사랑받지 못하는, 파충류 괴물보다 더 추악한 존재라고 생각했던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씩씩하게 살아왔지만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여전히 방구석에 앉아 울고 있는 어린아이였음을 깨달았다. 상처 치유 프로그램은 마음에 가득했던 쓴 뿌리와 가시를 뽑아내고 상처난 자리를 아물게 해주었다. 그리고 미향이 그토록 해답을 찾고 싶어 했던 질문의 답도 주었다.

  "넌 우연히 태어난 존재가 아니야. 신의 계획하에 이 세상에 오게 된 사랑받고 축복받은 존재야. 넌 숨쉬는 것만으로도 가치있고 아름다운 사람이야."


  신을 믿든지 안믿든지 모든 사람은 구한 존재다. 먼저 경험한 사람으로서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해 특히 미향이 앞으로 만나게  아이들과 부모님들을 도우며 살아가겠다는 삶의 목표도 생겼다.


  이제 미향은 교단에 설 준비가 끝났다!

천 년된 비자나무
연리지 나무

다음 편에 계속

12화. 시골마을 기간제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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