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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WATNEUNGA Aug 08. 2022

10화. 장미향 찾기 프로젝트

1부. 임용고시에 떨어지다 #임용대기 1년 #존재 이유 #우도 서빈백사

   태어나서 지금까지 부모님과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살아왔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자식들에게는 가난을 물려주지 않으리라'는 굳은 결심으로 뒷바라지하시는 부모님을 생각하면 미향은 그 흔한 '사춘기의 반항' 한번 하지 못했다. 부모님께는 그저 감사하고 죄송할 따름이었기에 친구들이 다 신는 나이키 운동화를 부러워할 처지가 아니었다. 엄마가 시골장에서 사주신 천 원짜리 운동화도 나이키 운동화 못지않게 감사히 받았고, 오빠들 옷도 함께 입었다. 어느 날은 담배를 피우는 큰오빠 셔츠를 입고 학교에 갔다가 교무실에 끌려가기도 했다. 미향에게는 사춘기 소녀의 청초함과 싱그러움은 사치였다.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가기에도 버거웠다. 그러다 인생의 첫 번째 큰 산인 대학입시를 끝내니 무언가 잡고 있던 끈을 놓친 것처럼, 다잡은 마음의 고삐가 풀린 듯 중고등학교 때도 겪지 않았던 사춘기를 심하게 앓으며 우울한 대학 4년을 보냈던 미향이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평생을 토론했던 문제들은 비단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향은 여자인지 남자인지 자신의 성 정체성뿐만 아니라 왜 세상에 태어났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지 명확한 해답을 찾고 싶었다. 자신의 뿌리와 줄기와 앞으로 맺을 열매가 궁금했다. 그것을 명확히 알지 못하는 지금은 그저 나뭇가지에서 떨어져 나와 흐르는 냇물에 떠다니는 나뭇잎처럼 느껴졌다. 자신의 의지가 아닌 주변 어른들이나 상황에 따라 남들과 같은 길을 그저 뒤따라 가는 것만 같았다. 마치 공항의 에스컬레이터에 탑승한 사람들처럼. 대학생이 되었지만 이런 근원적 질문의 답을 찾는다는 건 여전히 미향에겐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바로 코 앞에 올라야 할 인생의 두 번째 산인 임용고시 떡하니 버티고 있었으니까.

  이제 미향은 임용고시라는 산의 정상에 우뚝 섰다. 숨 가쁘게 올라왔던 것과 달리 이제는 산 정상 바위에 걸터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저 발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주변의 풍경을 내려다보듯 마음속 깊이 묻어두었던 오래된 고민들을 마음껏 풀어헤쳐 볼만한 때가 되었다. 숨고를 사간이 생기자 가슴 저 깊은 곳에 꾹꾹 눌러 놓았던 무언가가 터져 나왔다. 그것들은 미향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대로 사회로 나가면 제대로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미향은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할지 모르니 다른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맺을 수도 희망찬 미래를 꿈꿀 수도 없었다. 아이들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칠 선생님이 될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면 안 될 일이었다.


  213번째로 임용고시에 합격하는 바람에 임용되기까지 미향에겐 1년이라는 시간이 생겼다.


  미향에게 선물처럼 주어진 일 년이라는 시간 안에 반드시 이 근본적이고 중요한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사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떻게 이 고민들을 해결해야 하나?'

   이 물음의 힌트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세기 1장 1절)"에서부터 찾기로 했다. 이 세상과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은 뭔가 계획이 있으셨을 테니 그 해답도 알 수 있지 않을까? 미향은 여섯 살 때부터 교회에 다녔고 대학 때 방황하며 잠시 소원하기는 했으나 여전히 사고체계와 가치관 대부분은 기독교 교리를 바탕에 두었다. 그래서 대학 때 알게 된 선교단체의  '직장인들을 위한 제자훈련학교' 과정에 등록하기로 했다. 6개월간 저녁과 주말 시간을 이용해서 말씀을 묵상하고 여러 강의를 듣고 토론하고 적용하는 커리큘럼이었다. 물론 숙식이 제공되는 6개월 제자훈련학교 과정도 있었다. 미향이 진짜 등록하고 싶은 과정은 전일제 훈련학교였다. 그 과정은 오롯이 미향의 고민들에 집중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과정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모든 배움에 공짜는 없다! 그 훈련학교도 매달 훈련비를 내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를 아는 데에도 비용이 발생한다! 그리고 전일제 과정은 훨씬 훈련비가 비쌌다. 아버지는 이제 더 이상 경제적 지원을 해주지 않으셨고 임용될 때까지 시골집에 내려와 있으라고만 하셔서 미향은 방을 구해달라는 말도 제대로 꺼내지 못했다. 대신 친척오빠 집에서 신세 지기로 했다. 잠은 조카들과 함께 자면서 용돈과 훈련비는 아르바이트로 충당해야 했다.

  미향은 낮에는 초등학교 보조교사, 저녁엔 선교단체 제자훈련학교에 다니며 '김종욱 찾기'가 아닌 '장미향 찾기'를 시작했다.

다음 편에 계속

11화. 용서와 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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