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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WATNEUNGA Apr 18. 2022

엄마 그리고 꽃

 [책이야기 09]#파친코 #양진 #선자 #엄마 #신안 임자도 튤립

얼굴에는 여기저기 수두자국에

왼손과 왼발목은 날 때부터 구부러져 있고,

전쟁통에 국민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해

이름 석 자 겨우 쓰셨고,

부모님 모두 일찍 여윈 고아에,

중매로 결혼한 시집은 지지리도 가난했던

제 어머니는

꽃을 좋아하셨습니다.


성치 않으신 몸으로 어려운 살림 일궈내며 사남매를 남부럽지 않게 잘 키우시느라 잠시도 편히 쉴 틈 없이 일하셨습니다. 그래도 마당에는 여기저기 꽃을 심으셨고 가을이면 못쓰게 된 반찬통, 밥솥에는 탐스러운 국화를 피게 하셨습니다.


"난 엄마가 젤 이뻐."

"얼굴도 얼근 곰보 엄마가 뭣이 이뻐야?"

"그래도 난 세상에서 엄마가 젤 이뻐."


늘 그렇게 말씀하시면서도 쑥스러운 미소를 지으시며 좋아하시던 엄마가 하루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화면을 보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화면에는 풍차 주변으로 여러 가지 다양한 색깔의 튤립들이 만개한 네덜란드의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습니다.


"저 봐라 저~, 오메~ 꽃이 사방 지천에 핀 저기 한 번 가보믄 좋것다야."


하지만 그렇게 가보고 싶으시다던 네덜란드는 가보시지도 못하고 막내딸까지 시집보내 걱정 없이 이제 좀 쉬면서 여행도 다니면서 살 수 있겠다 싶을 때 엄마는 저희 곁을 떠나셨습니다. 엄마 나이 예순, 환갑잔치도 하시기 전이었습니다.


"얼라하고 남편을 위해 아늑한 가정을 꾸려야 한데이. 그기 니 할 일인기다. 남편하고 자식이 고통받게 해서는 안된데이."


<파친코>에 나오는 양진이, 딸 선자가 시집가서 집을 떠날 때에 마지막으로 했던 말처럼 엄마도 늙은 시어머니 모시고 아빠와 저희 사남매에게 단 한 번도 소홀하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국민학교 졸업장도 없고 성경을 더듬더듬 읽을 수 읽게끔 나중에 글을 조금 배운 것 외엔 배운 적이 없으셨지만 여느 대학 나온 지성인 못지않게 교양 있는 여인이셨고, 보통 시골 아낙네들의 거친 욕도 한 번도 입에 담으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들판에서 하루종일 허리 한 번 못 펴고 일하시느라 피곤하지만 쉬지 않고 식구들 저녁 준비와 집안일로 집에서도 늘 바쁘셨습니다. 그런 엄마 뒷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며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쉴 새 없이 재잘거리는 막내딸을 귀찮다고 시끄럽다고 한 번도 내치지 않으시고 늘 고개를 끄덕여 주시면서 들어주시던 엄마였습니다. 늘 잘하고 있다고 넌 뭐든지 해낼 거라고 저를 격려해주시던 엄마의 따뜻한 목소리가, 모두 잠든 새벽에도 일찍 일어나셔서 방 한 구석에 무릎 꿇고 앉아 식구들을 위해 기도하시던 그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들리는 듯합니다.


얼마 전 엄마가 그토록 보고 싶어 하셨던 네덜란드는 아니지만 튤립축제가 열리는 신안 임자도에 처음 다녀왔습니다. 코로나19로 축제는 취소되었지만 수백만 송이 튤립은 넓은 해변 공원, 커다란 풍차 아래 가득 피어 있었습니다. 엄마랑 함께 보았으면 좋았을 걸 이제야 보게 되니 엄마 생각에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엄마의 사진엔 꽃이 많다는 김진호의 노래처럼 엄마는 꽃이 되어 꽃이 필 때마다 저에게 찾아오시는 것 같습니다.


"오메, 이쁘다 이뻐. 참말로 이뻐."

"그래도 꽃보다 엄마가 더 이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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