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임용고시에 떨어지다 #제주도 #성산일출봉 #올레길 2코스 #노을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어려서부터 불러오던 애국가가 이리도 반주하기 어려운 곡이었나? 학원이라고는 어릴 적 주산학원 한 달 다닌 게 고작이었던 미향에게 교대 음악실기수업에서 피아노로 애국가 반주하며 노래 부르기는 톰 크루즈의 '미션 임파서블'만큼 고난도 미션이었다!
운이 좋게도 대학 입학시험인 학력고사를 지방의 광역시에 있는 교육대학교에 장학금을 받고 들어갈 만큼 잘 봤다! 합격해서 다행이지 시험 결과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미향의 부모님은 학력고사 시험장에 막내딸을 들여보내 놓고 곧바로 교대 앞에 월세방을 계약하셨다.(대단한 확신이셨다!) 비단 딸을 위해서만이 아니고 오빠들 각자 대학교에서 위치상으로 교대가 가운데 있었기 때문인 이유가 더 컸으리라. 여하튼 부모님의 믿음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한 미향은 이제 대학생이 되었다는 기쁨과 앞으로 펼쳐질 앞으로의 대학 생활에 대한 부푼 꿈으로 가슴이 벅찼다.
"자, 이번엔 신입생 중 남학생 개별 면담을 해볼까? 장만옥, 들어와!"
"교수님, 저 여잔데요."
"엥, 미안. 사진 보고 남학생인 줄 알았네."
덩치도 큰 데다 중학교 때부터 고수해온 쇼트커트 헤어스타일로 불러온 오해는 종종 받아왔던 터라 별로 놀랍지도 않았다. 공중목욕탕 여탕에 가면 아주머니들이 미향을 보자마자 소리 지르셨다. 그래서 최대한 빨리 옷을 벗어야 했고 속옷가게에서 여자 속옷을 고르면 "여자 친구 주려고?"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여고에 다닐 땐 초콜릿과 음료수를 쉬는 시간에 수줍은 듯 건네주고 가는 후배들도 많았다. 그런 까닭에 지도교수님의 오해도 그러려니 했다.
'이젠 머리도 길고 화장도 하고 입시지옥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여유로운 대학생활을 만끽해야지!'
대학 신입생으로 맘껏 놀면서 자유를 누리리라 기대했던 바람은 1학년 1학기 강의 시간표를 받고 나서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교대 합격 후에 중고등학교 반 배치하듯 전공학과를 1순위부터 써서 성적 순서대로 희망 학과에 배치하더니 전공필수는 왜 이리 많고 강의시간표는 월화수목금 쉴 틈 없이 빽빽하게 채워져 있는지, 어이없게도 대학에서 선택할 수 있는 강의는 한 학기에 딱 하나. 이건 뭐 거의 고등학교 시간표와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과목은 또 왜 이리 많은지 초등학교에서 가르치는 모든 과목이 들어있었다. 도덕, 국어, 사회, 수학, 과학, 음악, 미술, 실과, 체육, 영어, 컴퓨터, 교육과정까지 각 학기마다 과목별로 거의 다 들어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대학에서도 책으로만 공부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피아노 치기, 악보 보고 노래하기, 작곡하기 등 음악 실기가 있었다. 또 한국화, 서양화, 조소 등 미술계 전체 분야를 아우르는 미술 실기 수업은 매 학기마다 따라가기가 쉽지 않아 여간 힘에 부쳤다. 남들은 어릴 때 다닌다는 피아노 학원과 미술학원을 대학 생활을 즐길 틈도 없이 다니게 될 줄이야.
"자, 오늘 강의 끝나고 새내기 단합대회가 있으니 한 사람도 빠지지 말고 학교 앞 주점으로 모이세요."
"저는 학원 가야 해서 불참입니다."
"장미향, 또야?"
"술도 안 마시는데 뭐하러 가."
"왜 맨날 모임에 빠지냐? 김새게."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미향이었다. 부모님께서 어렵게 주신 학원비로 다니는 학원을 빠질 수 없었을뿐더러 술 자체가 싫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함께 자취하던 오빠가 술 마시고 몸도 가누지 못해 넘어지고 필름이 끊겨 겨우 친구들이 데려다주는 걸 자꾸 보다 보니 술에 대해 혐오감이 생겼다. 그리고 여섯 살 때부터 할머니, 엄마, 언니를 따라 교회에 다녔기 때문에 더더욱 술은 멀리했었다. 새내기 때 술을 마시지 않으니 사람들과 어울리지도 못하고 부족한 실기를 보충하기 위해 강의 끝나면 학원에 가는 게 일상이 되어 고등학생이나 다름없는 우울한 대학 새내기 같지 않은 일상이었다.
그런 미향이 술에 대한 엄청난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는 일이 생겼다. 그 일생일대의 깨달음은 대학교 3학년 때 제주도 수학여행 때 일어났다. 학원 갈 일도 없으니 숙소에서 맥주 한 박스를 가운데 놓고 친구들이랑 먹기 시작했는데 함께 먹던 친구들은 하나둘씩 취해 몸도 못 가누고 토하고 난리가 아니었다. 아주 멀쩡해서 그 친구들 다 챙겨주고 자리 정리까지 말끔하게 한 사람이 미향이었다.
"장미향, 너 뭐냐? 넌 왜 안 취하는데?"
"이렇게 잘 마시면서 그동안 안 마셨던 거야?"
"나도 내가 이렇게 잘 마시는지 오늘 알았다."
그날 이후 술을 마실 기회가 생길 때마다 누구와 술을 마셔도 먼저 취하는 법이 없었다. 이 주당 유전자는 엄마한테서 물려받았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엄마가 신앙이 깊으셔서 안 드셨을 뿐 술이 엄청나게 센 분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족 중에서 제일 술을 자주 많이 마시는 큰오빠만 엄마의 주당 유전자가 아니었다! 술이 약한데 억지로 먹어서 그렇게 늘 인사불성이었나 보다.
여하튼 피아노 치며 애국가 부르기 실기 평가를 위해 생애 처음 피아노 학원에 등록한 미향은 대여섯 살 꼬마 아이들보다 더 낮은 단계의 피아노 1단계 기초 교본인 '바이엘'을 한 손씩 열심히 연습했다. 피아노 학원에서 연습을 하고 있으면 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꼬마들이 미향을 보면서 자기들끼리 시시덕거리며 수군거렸다.
"저 언니 좀 봐. 우리보다 못 친다"
"어른이 저렇게 못 치는 거 처음 봐."
"피아노 치는 건 너희보다 늦어도 언니는 엄청 빨리 배울 수 있거든!"
그럴 때마다 오히려 고개를 더 꼿꼿이 들고 어깨를 펴고 '나는 모차르트다'라는 표정으로 꼬마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열심히 한 손씩 피아노 건반을 두들기며 하루도 빠짐없이 열심히 연습했다. 드디어 바이엘을 다 익혔을 때 자신감을 가지고 피아노 실기 평가를 보았다. 다행히 피아노 말고 다른 음악 실기 강의는 고등학교 때 교회에서 주일마다 성가대를 하면서 쌓은 실력으로 따라갈만해서 다행이었다.
음악보다 더 큰 문제는 미술이었다. 미향이 미술을 못하게 된 건 분명 초등학교 1학년 담임 선생님 때문일 것이다! 1학년 여름방학 숙제로 그림을 그려가야 했다. 무엇을 그릴까 고민하다 수박밭을 그리기로 했다. 막상 수박을 그리려다 보니 커다란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다. 그것은 '보이는 대로 그릴 것인가? 쓰인 대로 그릴 것인가?'의 문제였다. 보이는 대로 그리자면 수박을 초록색에 검은 줄로 그려야겠지만 여덟 살 아이의 눈에는 '푸른 수박, 파란 수박'이라고 책에 쓰인 말이 영 거슬렸다. 어떻게 그릴까 며칠을 고민하다가 수박을 파랗게 그리기로 마음먹었고 파란 수박이 많이 열린 수박밭 그림을 개학날 가져갔다.
"수박을 왜 파랗게 그렸어?"
"책에 '푸른 수박'이라고 쓰여 있어서 저는 수박을 파랗게 그렸습니다!"
라고 선생님께서 물어보시면 똑똑하게 대답하려고 마음에 준비를 단단히 한 후 선생님께 '파란 수박'그림을 내밀었다. 그런데 데 그림을 보신 선생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내가 예상하고 준비한 질문이 아니더라도 '잘 그렸다, 못 그렸다, 이상한 그림이다.'라는 말씀이라도 하시길 기다렸는데 아무 말씀도 없이 가져가셨다. 며칠을 고민해서 그린 나의 '파란 수박'은 결국 교실 벽에 걸리지도 못하고 선생님 캐비닛에서 영영 나오지도 못했다. '아마 시간이 지나서 쓰레기통에 버려졌겠지.' 이렇게 생각하니 그림을 그리려고 며칠이나 고민했던 어린 미향은 왠지 맥이 풀리고 허망해졌다. 그 이후로는 그림에 대한 흥미를 잃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수행평가 때도 손을 연필로만 그리는 데생을 했는데 미술 선생님께서 보자마자 "앤 흑인이냐?" 하셔서 '역시 난 그림엔 소질이 없구나.'라고 미술을 포기했었다.
'선생님의 한 마디가 이렇게 중요하구나!'
'난 그림을 잘 그리지는 못하지만 미술을 싫어하게 만드는 선생님은 되지 말아야지!'
모든 과목이 힘든 건 아니었다. 힘들이지 않고 4년 내내 A+학점을 보장받는 실기 강의도 있었다! 바로 체육과 실과 실기!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 테니스, 농구, 육상부였던 미향에게 학기마다 수강하는 운동 종목별 체육 강의는 식은 죽 먹기였다. 테니스 실기에서는 서브와 리시브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점수를 냈다. 농구 실기의 레이업슛은 코트를 두 바퀴 돌면서 네 번의 레이업슛을 쏘는 평가였다. 농구 좀 한다는 남학생들을 제치고 네 번 다 슛을 성공시킨 사람은 같은 과에서 미향이 혼자 밖에 없었다. 건축설계, 바느질, 뜨개질, 농작물 기르기 등 실생활에 직접적으로 필요한 기능과 이론을 익히는 실과 실기는 어려서부터 부모님을 도와 농사일을 거들고 집안일을 하던 미향에겐 생활 그 자체였다.
어려서부터 아빠를 도와 논에서 모내기부터 추수까지 모든 과정과 경운기, 오토바이 운전은 물론 농기계 다루기까지 중학교 때 이미 마스터했다. 4학년 때부턴 들에 나가 일하시고 저녁에 오시는 엄마 대신 항상 밥을 짓기 시작했다. 엄마를 도와 반찬을 만드는 걸 좋아해서 늘 옆에서 함께 요리를 했고, 이불 꿰매기, 구멍 난 양말과 옷 꿰매기 등 바느질도 엄마에게 배우며 초등학교 때 집안일은 다 할 줄 알게 되었다. 이렇게 생활력이 강해진 데에는 엄마가 자식을 키우시면서 늘 강조하시던 말씀 때문이었다.
"뭐든지 해봐야 혀, 이 일을 다시 하지 않더라도 할 줄은 알아야 헌다. 그래야 무슨 일이든 닥쳤을 때 겁 안 내고 덤벼볼 수 있는 것이여."
어린 딸이 전혀 도움도 안 되고 오히려 엄마가 치울 일이 더 많아지시지만 아주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하시는 일은 뭐든지 해보라고 시키셨다. 그중엔 요리처럼 하고 싶어서 하는 일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일은 하기 싫었고 논일, 밭일을 할 때면 허리도 아프고, 팔다리도 쑤시다고 늘 투덜댔다.
"엄마, 이 많은 걸 언제 다해?"
"눈은 게으르고 손은 부지런한 법이여. 일단 부지런히 허다 보믄 금방 헌다."
이것은 학생일 때도 직장인일 때도 공부든 업무든 시작할 엄두조차 나지 않을 때 미향에게 두고두고 시작할 용기를 주셨던 말씀이다. 그렇게 다람쥐 쳇바퀴 돌듯 대학 4년을 보낼 것 같았는데 일생일대의 엄청난 사건이 미향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 편에 계속
5화. 민들레의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