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NE WATNEUNGA Jul 10. 2022

7화. 자력갱생(自力更生)

1부. 임용고시에 떨어지다 #제주도 서귀포 #새연교

  "괜한  쓰지 말고 시골로 내려와 있어.”


  임용고시에 떨어진 미향에게  이상 경제적 지원이 없을 거라는 의미가 담긴 아버지의 한마디였다. 이런 처지가  거라고 충분히 예상했었다. 임용고시 첫해부터 지원하려고 했던 도시의 임용인원은 매년 20명에서 40 사이였고  지역 교대 졸업생이 매년 300  내외인 것을 감안해보면 대부분의 졸업생이 겪는 예정된 결과였고 미향도 예외는 아니었다.

  임용고시에 떨어지고 나니  길이 막막했다. '자식에 대한 경제적 지원은 대학 졸업할 때까지만!'이라는 아버지의 가이드라인에 예외는 없었다! 그래서 대학 졸업  생활비와 자취방 월세 지원은  이상 없었다. 그래서 어쩔  없이 교수님께서 추천해주신 교육 관련 회사에 취직을 했다.

  아버지의 가이드라인을 원망하기엔 너무나도 집안 형편을  알고 있었고, 언니를 생각하면 지금까지 도시 유학생활을   있었던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었다. 그래도 미향과 오빠들은 대학교까지 부모님의 경제적 지원을 받을  있었지만 그마저도 가난한 집안 장녀인 언니는 중학교가 마지막이었다. 중학교 졸업  바로 경기도에 있는 공장에 취직해서 오히려 집에 정기적으로 돈을 보태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언니는 대학에 떨어진 큰오빠의 재수 뒷바라지까지 기꺼이 감당했다. 하루 14시간씩 방직공장에서 미싱을 돌리고 받는 월급은 겨우 14만원이었고 거기에서 10만원 큰오빠 재수 학원비와 용돈으로 주고 남은 돈으로 겨우 버티며 가난한 집안 장녀의 무게를 짊어져야 했다.

  그렇다고 딸들만 고생하고 오빠들은 호의호식하며 편히 산건 아니었다. 큰오빠는 고등학교 때부터 둘째 오빠는 중학교 때부터 도시로 유학을 와서 일찍이 자취생활을 시작했다. 큰오빠가 재수하러 서울로 올라간 사이 공부도 잘하고 교회 다니며 착실한 작은오빠를 눈여겨본 담임 선생님의 추천으로 집은 부자인데 공부엔 관심도 없고 주먹질을 해대며 문제만 일으키는 같은  친구 집에서 숙식을 제공받으며  친구의 공부를 돕도록 하는 일종의 동갑내기 과외선생으로 들어가 지내기도 하였다. 오빠는 어떤 때는 용돈이 없어서 500원으로  달을 버틴 적도 있다고 했다. 아무리  친구 집에서 진수성찬에 좋은 방에서 지내도 남의 집살이의 눈치와 설움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있으리라.

  큰오빠와 작은오빠가   군대에 갔던 고등학교 2학년  부모님의 부담을 덜어 드리려고 미향도 작은오빠와 같은 처지가  적이 있었다. 할머니와 둘이 사는 같은   집에 방이 남았다고 담임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셔서 월세를 아끼려   집에 들어가 살게 되었다. 그렇게  사는 집도 아니었고 서민 아파트여서 허름하고 구석진 방이었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집에 보탬이   있다는 생각에 기꺼이  애랑 동거를 시작했었다.


  " 말이야. 우리 집에서 얹혀사는 애야."

  " 집도 없대?"

  "시골에서 돈도  보내주나 ."

  "우리  식량 축내는 식충이라니까."


  교실 뒤에서  애랑 다른 애들이 모여 수군거리는 소리, 따가운 시선,   주인집 인양 미향을 얹혀사는 불쌍한 애처럼 대하던  애의 집요하고 끈질긴 괴롭힘은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계속되었다. 아무리 밝고 명랑하고 언제나 씩씩했던 미향이었지만 겨우 열일곱 소녀였다. 친구 집에 들어가서 함께 살겠노라고 우겨서 살게  것이라 누구를 원망하거나 하소연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런 상황을 부모님이나 친구들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려고 서러울 때마다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눈물을 훔쳤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동거를 기획하고 추진했던 2 담임선생님은  집에 들어간  " 지내고 있냐?"라고 물어본 적이 없으셨다.   번도!(지금은  애와 담임 선생님 이름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큰오빠가 군대에서 제대를 했다. 날마다 서러운 더부살이를 하는 모습을 보게  큰오빠는 복학 대신  등록금으로 둘이  월세방을 얻자고 했다.  말을 하기 위해 큰오빠와 함께 부모님이 계신 시골집에 내려갔다. 오랜만에 엄마가 해준 맛있는 반찬과 김이 나는 따끈한 밥을 보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입에 넣은 밥알을 도저히 삼킬 수가 없었다. 조용히 눈물만 나오다 꺼이꺼이 울음소리까지 나서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


  태어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버지에게 뺨을 맞았다. 언니랑 오빠들은 어릴 적에 아버지한테 맞아  적이 여러  있어서 아버지를 무서워하고 어려워했지만 막내로  이쁨만 받고 자라서  번도 맞아본 적이 없었다.


"밥상머리에서 울긴 왜 울어!"


  아버지는 화가 나셔서 뺨을 때리시고 밖으로 나가버리셨다.


  "막내야, 괜찮으냐? 니가  살고 있는 줄만 알았는디 안그런당게 느그 아부지도 화가 나서 그러신 것일텐디 시방 밖에 나가서 느그 아부지 겁나게 후회하고 있을 것인 게 눈물 그치고 어여 밥 묵어라.  새끼."


  달래주시는 엄마의 말에 더욱 목놓아 울고   울었다. 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아버지는 함께 올라오셔서 바로 월세방을 구해주셨다. 무려   개짜리로! 그전엔 작은 오빠가 혼자 살던 주인집에 딸린  칸짜리 방이어서  좁디좁은 다락에서 자던지 주인집 아이들과  침대를 쓰며 살았었다. 여하튼  이후부터 대학 졸업할 때까지  걱정은  했었는데 이젠  방도 알아서 구해야 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미향은 지도교수님께서 추천해주신 과학 교육 관련 회사에 취직했다. 임용고시 준비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취업의 길로 들어섰다.

구름 낀 한라산

다음 편에 계속

8화. 고객 만족 서비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