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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WATNEUNGA Jul 08. 2022

6화. 임용고시에 떨어지다

1부. 임용고시에 떨어지다 #사춘기 #제주도 성산일출봉

  3년 동안 미용실에 가지 않았다!

  난 남자인가? 여자인가?

  나는 누구인가?


  대학생이 되어서야 사춘기가 찾아오다니! 미향에게 사춘기의 주요 증상인 정체성 혼란과 외모 콤플렉스가 발현되었다. 어려서부터 또래 친구들보다 10cm 이상 큰 키, 뛰어난 운동능력, 짧은 헤어스타일과 터프한 몸짓, 그리고 굵은 목소리와 자신감 넘치는 태도는 당시 이상적인 여성상인 작고 귀엽고 예쁘고 앙증맞고 순종적인 '현모양처'나 보호본능을 자아내게 만드는 가녀린 여인의 이미지를 찾아볼 수 없도록 만들었다. 지금이야 양성평등교육으로 남녀에 대한 경계나 편견이 많이 사라졌지만 예전엔 '남자는 이래야 하고, 여자는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과 편견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던 때였다.


  "넌 여성스럽지 않아."

  "남자야, 여자야?"

  "여자가 왜 그 모양이야?"

  "여자가 재수 없게 나대긴."


  세상이 정해놓은 '여자'의 이미지와는 정반대인 미향이었다. 이런 말들은 점점 '평범하지 않은, 이상한, 특이한' 사람으로 미향의 자의식에 서서히 뿌리를 내렸다. 어느 날 아침, 어엿한 스무 살 아가씨인데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도무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어려서부터 서서히 뿌리내려 미향의 자의식을 차지해버린 '평범하지 않은, 이상한, 특이한'같은 말들이 조금씩 변하여 자신이 추하다고 여기게 만드는 덩어리들이 활화산이 분출하듯 밖으로 터져 나와 버렸다. 어려서부터 공부와 운동은 자신감이 넘쳤지만 외모는 미의 기준인 텔레비전 속의 예쁜 여자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다른 보통의 어떤 여자보다 예쁘지 않고 심지어 파충류 외계인처럼 추악한 껍질이라고 항상 불만이었던 외모 콤플렉스였다.

  어린 시절 텔레비전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외화시리즈들 중 'V(브이)'라는 인기 시리즈가 있었다. 파충류의 일종인 외계인들이 지구로 우주선을 타고 들어온다. 물론 지구인처럼 보이도록 온몸에 지구인의 피부로 감쪽같이 감싸서 사람처럼 똑같이 변장한다. 이들은 처음엔 친구인척 우호적이다가 점차 지구를 정복하려는 속내를 드러내며 지구인들을 괴롭힌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지구인들이 아니다! 외계인의 정체를 의심하며 이에 맞서는 용감한 지구인들이 이 시리즈의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외계인이 지구를 거의 손아귀에 넣어 장악하려고 할 때 외계인들의 아름다운 겉모습에 반해 속아 넘어가는 대부분의 지구인들과는 달리 그들을 의심한다. 그래서 외계인들의 숨겨진 비밀을 찾기 위해 그들의 비행선에 침투한다. 그곳에서 얼굴에 상처가 생겨 피부가 찢어진 외계인을 목격하게 된다. 찢어진 피부 사이로 보이는 초록색의 끈적하고 흉측한 파충류의 모습을 발견한 이들은 마침내 추악한 진짜 모습과 지구를 정복하려는 그들의 야욕을 알아차리게 된다. 'V(브이)'는 주인공들의 활약으로 결국 외계인을 물리친다는 내용의 인기 외화시리즈였다. 외계인의 사령관인 '다이애나'라는 여자 외계인이 살아있는 생쥐를 입으로 통째로 넣고 씹어 먹었던 장면은 모두를 경악케 하는 명장면이었다! 이 시리즈에 너무나 빠져있던 미향은 자신을 투영하여 생각하곤 했다.


  '외계인들은 겉모습이 아름답고 속 모습이 흉측한 파충류이지만 난 반대야! 못생긴 얼굴이 가짜 껍데기이고, 속에 감춰진 진짜 모습은 누구보다 아름다운 여인일거야! 이 못생긴 껍데기가 벗겨지면 누구보다 예쁜 나로 변신할 거야. 이건 진짜 내 모습이 아냐.'

  스무 살이 다되었지만 아직도 미향은 상처받은 애벌레였고, 못생긴 번데기였다. 이젠 이 못생긴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아름다운 나비로 탈바꿈하고 싶었다. 그래서 머리를 길기 시작했다. 앞머리만 조금씩 잘라내고 3년 동안 미용실도 가지 않고 머리를 길었다.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내려왔다. 그리고 화장을 시작했다. 조금씩 달라 보이고 예뻐 보이는 것 같은 느낌에 화장은 점점 더 진해져만 갔다. 잠깐 슈퍼에 갈 때마저도 화장을 하지 않으면 밖에 나갈 수가 없었고 심지어 1분 1초가 아깝다는 시험기간에도 한 시간 넘게 화장을 해야만 학교에 갈 수 있었다. 언젠가 결혼식 사진과 비디오를 찍는 알바를 하는 중학교 때 친구가 교대에 놀러 와 필름 카메라로 미향을 찍어준 적이 있었다. 현상해서 가져온 수많은 사진 중 맘에 드는 사진은 단 한 장도 없었다! 우울한 표정에 축 처진 어깨, 자신감 없는 포즈, 전혀 자신 같지 않은 진한 화장까지 전부 맘에 들지 않았다.

  행복하지 않은 날들은 기억에서 인생에서 사라져 버린다! 대학교 4년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사실 자세히 생각나지 않는다. 특히 행복했던 기억은 거의 없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냥 대학생활 전체가 그저 어둡고 깜깜한 잿빛의 이미지로만 떠오를 뿐이다. 꽉 짜인 강의 시간표대로 학교에 다녔고 실기평가를 했고 교생실습과 임용고시 준비를 했다. 그리고 틈나는대로 많은 아르바이트를 했던 고된 기억들 뿐이다. 대학 4년 중 3년 동안 지도교수님 실험실에서 학생 조교로 일하며 근로장학금을 받았고 교대 근처 아파트에 사는 초등학생 과외도 하면서 생활비를 보탰다. 방학 때면 교원연수기관에서 연수 프로그램 준비 도우미를 하기도 하고, 어느 아파트 부녀회에서 개설한 초등학생 대상 방학특강도 했다. 그곳은 곰팡이 냄새에 햇빛도 들어오지 않는 아파트 관리사무소 지하 공간이었다. 암모니아 실험을 하다 화생방 훈련으로 변했던 것도 어렴풋이 기억난다.

생활 패턴은 조금 달랐지만 고등학교 때와 같은 상황이었다. 하루 하루 살아가는 자체가 힘겨운 싸움이었고 저절로 사는 게 아니라 억지로 살아내야 했다. 그렇게 4년을 또 버텼다. 고등학교 때와 똑같이 힘들었던 상황에도 불구하고 대학 입학시험과 같은 극적인 반전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힘든 고등학교의 끝은 대학 합격이었지만 힘든 대학생활의 끝은 그 반대였다.


미향은 임용고시에 떨어졌다.

다음편에 계속

7화. 고객 만족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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