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펜하이머 후기(2)

오펜하이머와 스트로스, 셰익스피어적 드라마

by 엘피


(오펜하이머보다 (당연히) 덜 알려진 인물이라 <원자폭탄 만들기> 책과 인터넷 자료(주로 위키피디어)를 바탕으로 조금 더 자세하게 적어본다.)




루이스 스트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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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자를 꿈꾸었던 소년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연기한 스트로스는 영화에서 오피와의 첫 만남에서 자신을 미천한 구두판매원(lowly shoe salesman) 출신이라고 자기비하적으로 소개했다. 그러나 그는 젊은 시절 남다른 경험 속에서 자신을 스스로 일으켜세운 입지전적이고 매력적인 인물이다.


스트로스는 버지니아 주에서 구두 도매업을 하는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오펜하이머 아버지도 의류사업가였다. 과거 유대인들이 의류 사업에 많이 종사했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스트로스는 공부를 잘 하는 뛰어난 학생이었고 물리학을 좋아했다. 고등학교 때 전교 1등을 했고(on track to be valedictorian) 장학금을 받아 버지니아 대학교에 진학해 물리학을 공부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고3때 장티푸스에 걸려 시험을 보지 못해 제때 졸업하지 못했다고 한다. 마침내 그가 조금 늦게 졸업할 무렵에 극심한 경기 침체(1913~14년)로 아버지의 사업이 기울어 그는 대학 진학을 접고 아버지를 도와 전국을 돌아다니며 구두를 판매했다. 그 3년 동안 그는 구두를 팔아 2만불(지금 가치로는 $457000!)을 저축했다고 한다(될성부른 나무 ㄷㄷㄷ).


자수성가한 독학자


1차대전이 발발하자 공직과 자선 사업을 추구하라는 어머니의 권유로 당시 유럽 구호 활동을 펼치던 허버트 후버의 ‘벨기에 구호 위원회’에 자원해 유럽으로 건너가 식량 배급 등 구호와 자선 업무에 헌신한다. 이 때도 두드러지게 일을 잘 해서 나중에 대통령이 되는 허버트 후버의 개인 비서이자 참모와 같은 역할을 맡게 되었다고 한다. 구호활동은 전후에도 이어졌고(American Relief Administration) 스트로스는 후버를 도와 이 일을 수행하면서 귀중한 경력과 인맥을 쌓았다. 후버의 구호활동을 돕는 것과 더불어 유럽의 유대인 피난민들을 돕는 유대인 조직(JDC) 일도 관여했는데 이 조직의 리더인 투자은행가에게 발탁되어 쿤, 로엡 & 컴퍼니(Kuhn, Loeb and Co.)에 입사한다. 쿤-로엡은 당시 J. P. 모건의 경쟁자라고 할 만큼 잘 나가는 최고의 투자은행이었다고 한다(2차대전 이후 사세가 기울어 리만 브라더스에 합병되고 합병된 회사도 나중에 합병된 회사도 어메리칸 익스프레스에 흡수되었다고…) 이 곳에서 승승장구하면서 큰 돈을 벌고 파트너의 딸과 결혼하고 나중에는 그 자신이 파트너가 된다. 이때 쌓은 부와 경력으로 뉴욕의 최상류층의 삶을 살아간다(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컴퍼니의 이사, 미국 은행가 협회, 뉴욕 상공회의소 멤버, 각종 구호 및 자선 단체의 임원과 회원 등등...) 또한 독실한 유대교 신앙을 간직하고 유대인 단체에서도 큰 역할을 했다.


2차대전이 벌어지자 스트로스는 해군에 자원 입대한다. 사고로 한쪽 눈의 시력을 잃어서 전투에 참여하지는 못하고 군수품 보급 업무(Bureau of Ordnance)를 담당한다. 그는 전쟁 중 승진을 거듭해서 전쟁 직후 트루먼 대통령에게 제독으로 임명된다. 영화에서 스트로스를 내내 Admiral Strauss라고 지칭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가 군 경력을 무엇보다 소중하고 자랑스럽게 여겼다는 증거이다.


핵물리학과의 인연


스트로스는 1935년에 어머니를, 37년에 아버지를 암으로 잃는다. 그런데 같은 해에 (1937년) 어니스트 로렌스의 어머니는 자궁암 말기 진단을 받았으나 당시 최첨단 방사선 치료를 받아 완치된다(15년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다가 84세에 돌아가심). 어니스트의 동생 존 로렌스는 의사였는데 형의 연구분야에 영감을 받아 핵의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창시했고 새로 발견된 첨단 의료 기술을 어머니에게 바로 적용했던 것이다(형은 입자가속기의 아버지, 동생은 핵의학의 아버지...로렌스 가족은 노르웨이(!)의 이민자 후손이었다. 부모님은 고등학교 교사(엄마는 수학 교사)였다고....잘 키운 아들들이 엄마의 목숨을 구해내서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가 된 자식들을 보며 행복한 노년을 누릴 수 있게 되다니...모든 엄마들의 워너비이자 동화같은 이야기!). 이 뉴스가 스트로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스트로스는 그의 부모님 이름을 딴 루이스 앤 로사 기금을 조성해서 암환자들을 치료하는 방사선 의학 연구를 지원한다. 그리고 그가 연구를 지원했던 과학자를 통해 헝가리 출신 유대인 물리학자 레오 질라드를 만나게 된다.


레오 질라드는 나에게 있어서 <원자폭탄 만들기> 책 전체에 걸쳐서 가장 흥미로롭고 매력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누구보다 뛰어난 선견지명을 가지고 원자핵 분열의 연쇄 반응이 엄청난 살상 무기로 이어질 것을 예측했고, 독일에 맞서 자유세계(영국과 미국)에서 먼저 만들도록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며 설득한 인물이다. 질라드 관점에서 보자면, 유대인 정체성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자선 사업과 공적 활동을 인생의 우선 순위로 여기는 미국의 억만장자 스트로스를 만나서 그를 구워삶아 자신의 연구에 돈을 대 줄 후원자로 빨대를 꽂은 셈이다. 둘은 오늘날로 말하자면 벤쳐 캐피털리스트와 스타트업 CEO 비슷한 관계였을 것이다. 스트로스는 질라드의 연구를 몇 차례에 걸쳐 후원했고 그를 통해 핵물리학의 최신 지견을 업데이트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원했던 질라드의 연구는 딱히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했고 마지막으로 질라드가 라듐을 사기 위해 후원을 요청했을 때는 이미 많은 돈을 썼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그것으로 핵물리학과의 인연은 일단 그의 인생에서 마무리되는듯 했다. 전쟁 중에 스트로스는 해군 보급 업무에만 헌신했고, 맨해튼 프로젝트에 관련된 정보에서 소외되었다.


원자력 위원회(Atomic Energy Commission)


전쟁이 끝난 후에 미국 정부는 원자력 연구에 대한 통제권을 육군에서 민간으로 이전하면서 원자력 위원회(AEC)를 창설했다. 스트로스는 트루먼 대통령이 지명한 5명의 원자력 위원회 위원 중 한 사람이었다. 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스트로스는 점점 더 강경하고 고집스러운 입장을 취하는 것으로 유명해졌다. 보안이 관련된 문제에 있어서 가장 엄격한 보안을 주장하는 쪽이었고(예컨대 우방 국가들과의 정보 공유와 같은 문제들), 소련이 핵 실험을 하는지 알아내기 위해 정기적으로 방사능 탐지 비행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서 오펜하이머, 에드워드 텔러 등 과학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관철했다( "sniffer" flight, 킁킁 냄새맡는 정찰기. 그런데 실제로 1949 년 8월 소련이 처음으로 원자 폭탄을 실험한 지 며칠 후 실험 증거를 탐지해냈다고 한다).


스트로스는 고집스럽고 괴팍한 성격으로 유명해졌다. 위원회에서 누군가가 그에게 처음 반대하면 그를 바보라고 생각하고 계속해서 반대하면 그를 배신자(반역자? traitor)로 생각했다고 한다.


소련이 원자폭탄 실험을 하자 미국 내에서도 "슈퍼"(에드워드 텔러가 맨해튼 프로젝트 초기부터 개발하자고 주장했던 수소 핵융합 폭탄) 개발을 강경하게 주장했다. 트루먼 대통령을 설득해서 슈퍼 개발을 밀어붙인 대표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그 당시 군부 전반적인 분위기가 수소폭탄 개발 쪽으로 가는 것이 컨센서스여서 스트로스가 없었어도 어차피 개발은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슈퍼 개발 결정이 발표되는 날, 스트로스는 자신의 역할을 다 했다고 생각하고 AEC 위원에서 사퇴한다.


스트로스는 아이젠하워 대통령 선거를 지원했고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된 후 원자력 고문과 AEC 의장으로 지명된다. 그는 핵의 평화적 이용에 대한 적극적 지지자였다. 원자력 발전으로 "전기가 계량할 필요도 없을 만큼 저렴해질 것(too cheap to meter)"이라고 한 말은 유명하다. 열핵폭탄(수소폭탄) 개발에도 적극적이어서 방사능 낙진의 위험성을 최소화하며 핵실험을 지지했다.


증폭되는 미움, 오펜하이머와의 관계


영화에서 오피와 스트로스가 처음 만난 곳이 아인슈타인이 걸어다니는 프린스턴 교정이었다. 실제로 스트로스는 프린스턴 고등 연구소의 trustee(재단 관리인? 이사?)로서 오펜하이머에게 연구소 소장 직을 수여했다. 그 당시 스트로스 자신도 소장 후보 중 한 사람이었다고 한다(후보 중 이사진들의 투표에서 오피가 1위 스트로스는 5위를 차지했다고...). 고졸 학력이었지만 스스로 공부해서 지식을 쌓은 지적인 인물이자 아마추어 물리학자였던 스트로스에게 만일 미국 최고의 순수과학 연구소 소장 직이 임명되었다면 독학자로서의 그의 지적 성취를 세상이 인정해주는 정점이 되었을 것이다.


영화에서 오피가 아인슈타인과 대화를 나눈 후에 스트로스를 외면하며 지나가서, 스트로스는 오피가 뭔가 자기에 대해 험담을 했을 것이라고 오해하게 된다. 이건 놀란 감독이 집어넣은 허구와 상상력의 영역인데.....훌륭한 영화적 장치라고 생각한다. 돈과 명예, 권력 등 갖고 싶은 걸 거의 다 가진 남자였던 스트로스, 하지만 가방끈이 짧다는 사실은 때로는 그를 돋보이게 하는 무기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남모를 컴플렉스였을 것이다. 더구나 어린 시절 물리학자를 꿈꾸었던 사람이니 만큼 더욱 더.... 은행가로 잘 나갈 때나 정치가로 경력을 추구할 때에도 내내 과학(물리학)의 언저리를 맴돌며 과학자들과 상호작용했던 그는 더더욱 탁월한 물리학자들에게 동경과 부러움을 가졌을 것이라 상상할 수 있다. 부러움의 감정은 임계점을 넘으면 질투와 미움으로 폭발할 수 있다. 이것이 오피에 대한 그의 감정이었을 것이다.


정치적으로도 오피는 주변이 공산주의자들로 둘러싸인 진보 좌파였고, 스트로스는 확고한 보수 우파였다.


정책에 있어서도 오피는 열핵폭탄(수소폭탄)의 개발에 반대하고 원자폭탄과 대륙 방어(continental defense, 이게 정확히 뭘 의미하는지는 더 공부해봐야할듯. 대륙간 미사일 방어체제 같은 건가? 참고로 이 글의 정보는 대부분 영문판 위키피디어에서 발췌한 것이다)를 국방 원칙으로 주장했고, 스트로스는 열핵폭탄과 억지 원리(doctrine of deterrence, 더 파괴적인 무기를 가지고 있어서 상대방이 공격하지 못하게 하는...)를 주장했다.


오피는 미국이 지니고 있는 핵무기의 개수와 성능을 공개할 것을 제안했고, 스트로스는 그러한 일방적 솔직함이 소련 군부 외에는 누구에게도 도움이되지 않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이런 식으로 공적이고 공식적인 의견과 주장의 영역에서도 둘은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결정적으로 영화에서 나왔듯 오피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스트로스를 망신 준 일이 있다. 일반 자문 위원회(General Advisory Committee, GAC)는 AEC 소속 과학자들의 자문단이었는데 오피가 의장을 맡고 있었다. 이 회의에서 의료 목적의 방사성 동위 원소 수출이 미국 안보에 위험인지 여부를 놓고 논쟁을 벌였다. 의료용 동위원소가 핵무기 개발에 정말로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오피는 특유의 날카로운 화법으로 "폭탄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기야 술도 도움이 되고 뭣도 도움이 되겠죠" 류의 조롱하는 듯한 대답을 했다. 이 장면은 영화적 허구가 아니라 실제 있었던 일이다.


그리고 오피와 스트로스는 둘 다 유대인이었지만 오피는 유대인 전통과 정체성을 거의 떠났고 스트로스는 당시 미국의 반유대적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독실한 유대교 신앙과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며 주류 사회에서 성공했다는 자부심을 가진 사람이었다.


스트로스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그를 AEC 위원장으로 임명했을 때 오피의 보안 허가를 중지하는 것을 조건으로 걸었다. 그러나 그가 오펜하이머를 공식적으로 원자핵 프로그램에서 밀어낸 것은 단순히 개인적 감정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2차대전 이전의 오피의 공산당원들과의 관계로 미루어 정말로 그가 소련의 첩자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오피는 보안 허가 중지에 반발해서 청문회를 요청했고 그것이 영화 후반부의 주된 내용이다. 마치 검사(로저 로브)가 피의자를 심문하는 듯한 방식으로 진행되는 청문회에서 오피는 완전히 발가벗겨졌다. 그의 사생활은 낱낱이 파헤쳐졌고, 그의 약점, 거짓말도 모두 드러났다. 그는 결국 보안 허가를 뺏기고 자신이 성공시킨 프로젝트에서 공식적으로 추방되었다.


돌아온 화살....인.과.응.보?


스트로스는 오펜하이머 청문회로 대중들에게 악명을 얻었다. 타임지는 그를 "미국에서 가장 능력있는, 그리고 가장 날카로운 공인(one of the nation's ablest and thorniest public figures)"이라고 묘사했다. 대중적 비난과 별개로 그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굳건한 신임을 받았다. 58년 AEC 위원장 임기가 만료되자 대통령은 재임명을 원했으나 상원의 반대에 부딪힐 것이라 예상해서 사양했다. 대통령은 그에게 비서실장, 국무장관 직을 제안했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결국 상무부 장관 직을 수락한다. 그에 따라 상원 청문회가 열렸다.


영화에서는 가장 과거 시점인 폭탄 개발 시절을 컬러로 나타내고 오펜하이머 보안 허가 청문회와 스트로스의 상무부 장관 청문회를 흑백으로 교차해서 보여준다. 두 청문회 장면은 영화 초기에 구분이 안 되어 헷갈리기도 했다. 그런데 사실 두 청문회 사이에도 4년의 세월이 있다. 오펜하이머의 청문회는 1954년, 슈트로스의 청문회는 1958년에 벌어졌다. 결국 스트로스는 과거에 자신이 쏜 화살이 적을 명중했으나, 4년 후 되돌아와 자신을 쓰러뜨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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