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스 강의 물방앗간(3)

감상과 비평

by 엘피

*** 결말에 대하여 ***


이 마지막 부분의 결론을 놓고, 또 매기가 천박한 스티븐의 유혹에 흔들리는 것을 놓고 많은 비평가들이 비난을 보냈다고 한다.


그렇다.


플롯을, 꼬고 또 꼬고, 갈등 위에 새로운 갈등을 아슬아슬하게 쌓아놓은 후에 갑자기 불가항력의 힘에 의한 "죽음" 따위로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것은......................다분히 폭력적이고, 허망하고, 어쩌면....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갈등을 신이 내려와 한방에 해결해버리는 그리스 드라마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 기법 이래로....너무나 상투적인 기법인지도 모른다.


상상력 풍부하고 지적이고 야생마처럼 자유로운 영혼을 지니고 감성이 풍부하고 고집센 매기가 이 모든 좌충우돌, 우여곡절을 겪고 그녀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작은아씨들>의 조나, <빨강머리 앤>의 앤이나 <키다리 아저씨>의 주디처럼 따스하고 평범한 결말을 맞았다면, 그런 책들처럼 어린 독자들에게 널리 읽히는 마음 흐뭇한 성장소설로 더 널리 자리잡지 않았을까?


아니면 적어도 <제인에어>처럼...비참함과 고독 끝에나마 해피엔딩의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면............


하지만 이 책은 <폭풍의 언덕>의 비극적 미학과 궤를 같이한다.

<폭풍의 언덕>이 강렬한 캐릭터, 비극적 플롯, 그리고 독특한 전원적 배경(히드가 만발한 바람부는 황무지)으로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듯 이 책도 역시 강렬한 캐릭터, 비극적 플롯, 그리고 역시 작품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 독특한 전원적 배경(플로스 강)으로 깊은 인상을 준다.


작품 내내 강과 물의 이미지....홍수에 대한 어렴풋한 암시가 줄곧 되풀이된다. 세인트오그스라는 마을 자체가 절박한 모자(실은 성모마리아)를 위험을 무릅쓰고 배로 건네주어 성인의 반열에 오른 뱃사공 오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플로스강은 이 마을의 젓줄이자........털리버 일가, 매기와 톰 남매에게는 몸속을 흐르는 피 만큼이나 진하고 친밀하고 소중하고........또 운명적이고 치명적인 존재였다. 책의 말미 작품 분석에서 언급되었지만 물가에서 위험하게 뛰어노는 매기에게 "저 애는 언젠가 물에 빠져 죽을거야"라고 말하던 엄마의 불안, 마녀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물에 빠뜨려서 헤엄쳐 나오면 마녀이고 빠져죽으면 결백한 것으로 인정했다는 이야기에 "죽은 다음에 마녀가 아닌걸로 밝혀지면 무슨 소용이야?"라고 항변하던 매기..........


그 마녀 이야기는 너무나 슬픈 복선이다. 당시의 인습과 전통이 채 감당할 수 없는 성품을 지닌 매기. 매기는 그녀가 속한 가정과 사회에서 마녀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자신의 선의와 결백을 증명하고 자신을 이해하고 보듬어주지 못한 가정과 사회(오빠인 톰!!!)과 화해하는 길은 결국 "죽음".......마녀처럼 물에 빠져 죽는 길밖에 없었던 것이다!


*** 매기 그리고 조지 엘리엇***


이 책은 조지 엘리엇의 자전적 소설로 불린다. 매기의 성격과 어린시절 성장과정, 에피소드는 조지 엘리엇(메리 앤 에반스) 자신의 이야기에서 따온 것으로 여겨진다.


조지 엘리엇은 그 시대 인습의 굴레에서 벗어나 스스로 엄청난 수준의 학식을 쌓고, 글을 쓰고, 돈을 벌고, 자유연애를 하고 유부남과 일생의 반려관계를 맺고 늙어서는 20년 연하의 남성과 다시 결혼하는.....오늘날 시각으로 볼때 유쾌+통쾌+상쾌하기 그지없는 파격적인 삶을 산 멋~~~~진 여성이다.


그런 그녀가 자전적 소설의 주인공인 매기를 그토록 허무하게 죽인 것에 대해, 더구나 매기에게 어울리지 않는 무가치한 남자(스티븐) 때문에 고통에 빠지고, 더더욱 매기를 이해하지 못하고 제대로 사랑조차 주지 않은 친오빠 톰을 구하다가 톰에게 용서받으며 삶을 마감한 것에 대해, 페미니스트를 비롯 많은 비평가들이 불만을 표시한다고 한다. (오늘 서점에서 이 책의 원서를 들춰보다 Jane Smiley라는 작가가 쓴 Afterword에서 알게된 내용이다.)


그런데 나는 엘리엇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녀가 별볼일 없는 가정환경, 갑갑하기 이를데 없는 여성의 사회적 역할 따위를 던져버리고 스스로 솟구쳐 올라가 당대 최고의 문인(찰스 디킨즈에 비견되는) 자리에 오르고, 사랑 역시 성취했다고 하지만 그녀가 던져버린 것, 거부한 것, 배신한 것, 또는 그녀를 저버리고 그녀에게 등을 돌린 것들에 대해 아리고 아픈 회한과 그리움이 없었을까? (실제로 엘리엇의 친오빠는 그녀가 유부남인 루이스와 동거에 들어가자 의절을 하고 몇십년 동안 말도 하지 않고 지냈다고 한다.)


그녀가 매기를 죽인 것, 오빠인 톰과 부둥켜안은채 어린시절 친숙하게 뛰어놀던 강물에 빠져서 죽도록 한 것.........


그것은 엘리엇 그녀가 인습과 단절한 파격적인 삶을 사는 것이, 알을 깨고 나오는 것만큼, 하나의 존재가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과정이었음을 항변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녀 자신의 본성과 내면의 충동과 그것이 가족(사회)과 일으키는 갈등이 오직 죽음으로만 봉합할 수 있을만큼 크고도 강했음을 보여준 것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어쩌면 마음 한 구석에는 죽음을 대가로 치루고라도 단절된 그 세계-가족-와 화해하고 싶은 소망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가족, 몰락, 그리고 남매***


이 세 단어를 테마로 하는, 나의 기억에 깊고 깊은 인상을 남긴 다른 두 작품이 있다.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 <유리동물원>


자크 반 도마엘 감독의 영화 <토토의 천국(Toto le Heros)>


이 책과 위의 두 작품은 모두 몰락한 가족, 가난의 비참함, helpless한 부모, 함께 손을 잡고 고통의 터널을 지나는 남매의 서로에 대한 깊은 사랑과 연민과 집착을 다룬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그리고 세 작품 모두 내가 기꺼이 완전한 별 다섯을 주고픈, 내 일생에서 만난 최.고.의. 작품들에 속한다는 점에서도 공통적이다. 세 작품의 작가(감독) 모두 독자(관객)의 내밀한 슬픔을 후벼파는데 있어 천재적인 솜씨를 갖고 있다는 점도 역시 공통적이다.


<유리동물원>이나 <영웅 토토> 모두 각 작품에 대해서 얘기를 꺼낼라치면 한 바닥이 넘을 테니 그냥 여기까지만.


*** 플라토닉, 에로스, 아가페 또는 정신 vs. 육체***


뭔가를 유형화 하고 범주화 하는 것은 언제나 불완전함과 왜곡의 위험이 따르지만, 사랑의 종류를 굳이 따져서 범주화한 위의 분류는 많은 경우에 유용하다.


필립에 대한 매기의 사랑은 서로 닮은 정신세계에 반하고 존경하고 함께 나누는 플라토닉한 사랑과 가엾은 것, 사랑받지 못하고 불행한 것에 대한 아가페적 사랑이 섞인 것이었다. 매기 자신이 늘 사랑을 갈구하지만 가족으로부터(엄마와 오빠) 그것을 충분히 받지 못하고 또한 스스로가 사랑받을 가치가 없는 아이라는 인식 속에서 커왔기 때문에 매기는 모든 여자가 외면할 곱사등이 필립을 거리낌없이 사랑한다.


"그녀는 목이 비뚤어진 양들을 좋아했다. 튼튼하고 잘생긴 양들은 귀염을 받는데 그리 문제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자기에게 귀여움 받고 싶어하는 녀석들을 귀여워해주길 특히 좋아했다."


타고난 반골에 외톨이인만큼 인습을 거부하고 타인의 취향에 아랑곳 않는 면도, 또한 어린시절 여러 행동으로 미루어 본능적 감, 즉 직관과 EQ가 무척 떨어지고 대신 책벌레답게 책에 나오는 도덕적 원칙에 충실하게 사람을 대하는 면도 필립과 사귀는데 일조했을 것이다.


그런 필립과의 사랑에서 2% 부족했던 그것(아, 집안 원수의 아들이라는 점은 차치하고)그것을 갖고 있는 자가 바로 스티븐이었다. 정신세계도 인격도 그저그런 그였지만, 그는 아름답고 건장한 외모를 가진 그야말로 '멋진 수컷'이었다.


남녀간의 사랑에 이렇듯 머리와 마음과 몸이 따로 노는 것은 비극의 영원한 테마다. 꼬리를 물고 떠오른 다른 작품들....


앙드레 지드의 <전원교향악>

목사가 고아가 된 장님 소녀를 데려다 돌보며 세상을 가르쳐주다가 서로 사랑하게 되었으나, 수술로 눈을 뜬 소녀는 자신이 상상 속에서 사랑한 대상이 늙은 목사가 아니라 그의 아들(젊음을 갖춘 "멋진 수컷")이었음을 깨닫는다(어린시절 축약본으로 읽은 이 소설에는 거부감과 혐오감 마저 느꼈다. 늙은 목사와 장성한 아들이 소녀를 놓고 질투를 벌이는 것,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의 교감이 눈에 보이는 "외모" 앞에서 무너져내리는 모습 모두 다).


로이드 웨버 또는 매킨토시의 <오페라의 유령>

최고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음미하고 창조해낼 수 있는 지고의 재능, 아름다운 정신세계를 가졌으나 괴물같은 외모의 팬텀. 크리스틴의 재능을 발견한 것도, 그녀에게 기회를 주고 이끌어준 것도, 그녀를 운명처럼 사랑한 것도 모두 팬텀이었으나 추악한 외모때문에 그를 마음마저 비뚤어진 악당일 수밖에 없고 결국 평범한 "멋진 수컷"에 지나지 않는 라울이 크리스틴의 사랑을 차지하게 된다.


우리는 높고 아름답고 남다른 정신세계를 찬양하고 칭송하지만, 이성에 대한 끌림은 일차적으로 인간으로 진화되기 이전의 동물 상태에서 배선된 뇌의 지배를 받지 않던가...


필립의 사랑은 가슴아프다. <오페라의 유령>의 팬텀의 사랑도 역시 가슴아프다. 신이 그들에게 육신의 조화를 빼앗는 대신 정신의 우월을 줄 때 아름다운 여인과의 사랑은 금단의 열매로 정했으리라. 그 금단의 열매를 맛본 죄로 평생 사무치는 슬픔이나 파멸을 치러야 했던 그들....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


이것 역시 소설과 드라마의 영원한 테마이다. 어쩌면,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연적이 될 확률이 높은 것은 당연할 지도 모르겠다. 금기의 벽이 높기에 그나마 감춰지고 수그러들지만, 때로는 금기의 벽 때문에 이성과 도덕의 힘이 약한 자들에게는 더한 매력과 도전정신을 불러일으키기도.


닮은 작품 찾기 놀이를 해보자면.......


얼마전에 읽은 이디스 워튼의 <순수의 시대>


'매기-스티븐-루시'의 삼각관계는 이 작품에 나오는 '엘렌-뉴랜드 아처-메이'의 삼각관계와 완.전.히. 닮았다. 거의 똑같다. 사교계의 사랑을 받는 좋은 집안의 착하고 아름다운 처녀(루시, 메이)가 좋은 조건을 갖춘 멋진 청년의 구애를 받고(약혼관계) 있는 와중에 불행의 후광을 드리운, 어릴때부터 수상쩍은 뒷말을 들어온 위험스럽고 치명적인 매력(Jane Smiley의 표현을 빌자면 'dark voluptuousness')를 가진 사촌이 방문하고, 그 멋쟁이 청년과 불행하고 매력적인 약혼자의 사촌이 눈이 맞는..........


두 작품 모두 남자는 빠져서 허우적대며 정신을 못차리고 dark한 우뤼의 여주인공들은(매기, 엘렌) 그 남자의 사랑에 마음으로 굴복하지만 이성과 양심으로 이겨내고 그를 거부한다.


영화에서는 검은머리, 검은눈의 위노나 라이더가 메이 역을 맡고(얼굴 자체가 너무 순수하게 생겼으므로...ㅡ,.ㅡ) 블론드인 미셸 파이퍼가 엘렌 올레스카 백작부인 역을 맡았지만(얼굴 자체가 너무 요염하게 생겼으므로...ㅡ,.ㅡ) 원작에서는 아마도 메이는 블론드, 엘렌은 검은 머리카락의 브루넷이었던걸로 기억된다. (아닌감? 아님 말고..) "블론드 = 순수하고 착하고 인습에 순종하는 여성 vs 브루넷 = 어두운 매력을 가진 위험스러운 여인"이라는 공식은 아마도 앵글로색슨족의 인식속에 은연중에 들어있는 것이 아닌지? 이 책 <플로스강의 물방앗간>에서 우리의 매기는 "검은 눈에 검은 머리를 가진 여자가 행복해지는 책을 보고싶다"고 말한다. 실제로....같은 백인, Caucasian 중에서도 영국이나 독일이나 북구의 흰 피부, 금발, 푸른 눈의 게르만족(앵글로 색슨 포함)과 이탈리아, 스페인 등 남쪽의 라틴족은 외모뿐만 아니라 사고방식, 감성도 크게 다르지 않던가.........


*** 유년기.......황금의 문 ***


조지 엘리엇의 문장은 탁월하다. 점점 사건이 꼬이고 갈등과 고통이 증폭되어가는 플롯도 훌륭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내가 이 작품을 "가장 사랑하는 소설"의 반열에 올려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일부 비평가들은 특별한 재능을 타고난 매기가 자신을 이해하지도, 받아주지도, 용서하지도 않는 몰인정한 오빠(단순하고 고집세고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답답한 캐릭터)에게 돌아가며 작품이 마무리된 것에 대해 불평을 말하지만, 이 소설이 어릴 적 읽은 후에 마음에 깊이 남았고, 지금 다시 읽고나서도 깊은 감동을 주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가족이란.........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벗어던지고 싶은 굴레이고 속박이지만, 이 세상에 태어나 가장 먼저 사랑하고, 걱정근심 없는 유년기의 황금의 뜨락에서 흠 없는 행복을 함께 나누던 존재.


결국 매기가 가족(톰)에게로 돌아가고 자연(홍수)에 순응하는 결말이 나에게는 아름답게 느껴졌다. 채 피어보지 못하고 죽은 두 남매가 어린 시절의 천국 속에서 고사리 손을 잡고 깔깔 웃으며 뛰어놀기를 마음 속으로 간절히 바래본다.


슬픔은 살아있는 자들의 몫일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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