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에 대한 고찰
플릭스의 버니 메이도프 다큐멘터리를 보고 큰 인상과 감동을 받아 글을 남긴다. 줄거리 요약은 (1)편에...
필름 말미에 인터뷰한 작가분이 버니에 관한 정신과 의사의 의견을 전한다. 의사는 "그는 가족을 진정 사랑했다기보다, 가족들로부터 사랑받기를 강렬하게 원했을 것입니다." 라는 식으로 말한다.
버니는 소시오패스이자 나르시시스트이다.
소시오패스는 공감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사람이다. 공감 능력이 없는 사람은 "사랑"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색맹인 사람이 색을 보지 못하듯, 다른 사람의 감정과 완벽하게 차단된 소시오패스는, 사랑을 글로 배우고 남을 따라할 뿐, 진정 내면에서 우러난 사랑을 할 줄 모를 것이다. 사랑의 본질은 상대방을 진심으로 care하고 상대방을 위해 나의 존재의 일부를 내어주는 것이다. 수많은 선량한 사람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일으킨 것은 차치하고, 그가 가족들을 진심으로 사랑했다면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을(못했을) 것이다. 잠재적으로 가족들을, 세상 누구보다 고통스럽게 만들고, 지옥으로 끌어내릴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을 테니.... 그저 아내와 아들들도, 비유하자면 자기가 침몰하면 함께 순장될 부속품으로 여겼기에, 그런 짓을 저지를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인간관계에서 상대를 속이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상대를 존중하지 않고, 배려하지 않고, 나의 자아의 희생양으로 삼는 행동이다. 그는 평생 가족을 속였다.
나르시시스트는 자기애가 강하기 때문에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희생을 기꺼이 감수한다. 자신의 욕망, 자신의 기분, 자신의 자존심과 자부심, 자신의 에고가 세상의 규칙보다 중요하다. 자기가 장기판의 킹이고 타인은 졸이다. 뿐만아니라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한다. 누가 보지만 않는 다면, 기꺼이 규칙을 어기고 남에게 피해를 줄 용의가 충만한 사람들도 상당히 있겠지만, 이걸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사람은 적다. 그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걸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르시시스트들은 자신이 세상을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버니의 경우 인생 초반부터 그 믿음이 positive feedback을 받으며 강화되어 점점 걷잡을 수 없는 망상으로 부풀어올랐을 것이다. 2008년 금융 위기로 전세계의 자산이 melt-down되지 않았다면, 그의 망상은 그가 죽을 때까지 유지되고, 그는 마지막 숨을 쉴 때까지 왕처럼 살다가 exit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남은 가족과 친지들이 겪을 고통은 "내 알빠노?" 소시오패스라 "아이 돈 케어" 였던게 아닐까?
악에 대한 고찰.....
악인에 대해서 이보다 더 훌륭한 인사이트를 보여준 사람을 나는 본 적이 없다. 바로 존 스타인벡이다. 그는 소시오패스니 사이코패스와 같은 개념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20세기 초중반에 이 소설, <에덴의 동쪽>을 썼다. 악의 정수(quintessence)인 캐시 에임즈라는 인물을 통해 악인들이 왜 악한 행동을 하는지, 깊은 연구와 고찰을 펴나간다. 어린 시절 이 소설을 읽었을 때는 매혹적인 스토리지만 캐시와 같은 사람들은 허구와 과장으로 버무린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 수많은 사건, 사고를 접하고, 주변에서도 악인까지는 아니더라도 평범한 사람들보다 양심이나 공감능력이 결여되어있고 세상을 다른 렌즈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존 스타인벡이 수십, 수백명의 심리학자를 합쳐놓은 천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서 우리는 위대한 문학작품을 읽어야.....
세상에는 인간에게서 태어난 괴물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 가운데는 외모가 기형적이고 무섭게 생겨서 유난히 큰 머리에 비해 체구는 작거나, 팔다리가 없거나, 팔이 세 개나 달려 있 거나, 꼬리가 달려 있거나, 입이 엉뚱한 곳에 붙어 있는 사람도 있다. 이런 일들은 우연히 발생하는 것으로, 그 누구의 책임도 아니다. 옛날만 해도 이런 기형아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죄에 대해 천벌을 받은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 같은 외형적인 괴물이 있듯이 정신적 혹은 심리적인 괴 물도 있는 건 아닐까? 얼굴과 몸은 멀쩡한데 뒤틀린 정자나 일그러진 난자가 육체적인 괴물을 만들 수 있다면 그런 것들이 기형적인 영혼도 만들 수 있을 것 아닌가.
괴물은 크거나 작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정상에서 벗어난 변종이다. 팔 없는 아기가 태어나듯이 인정머리 없거나 양심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아기도 태어날 수 있다. 사고로 두 팔을 잃은 사람은 온갖 노력을 다해 생활에 적응하려고 애쓰 지만 원래부터 두 팔이 없이 태어난 사람은 자신을 이상한 눈 으로 바라보는 사람들 때문에 괴로워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팔 이 없었으므로 없는 팔을 아쉬워하지 않는다. 우리는 어린 시절에 날개가 있다면 좋겠다는 상상을 하지만 그건 새가 자기 날개에 대해 갖는 느낌과는 다르다. 괴물에게는 자신이 정상적 으로 보이기 때문에 정상적인 것이 오히려 이상하게 보인다. 정신적인 괴물은 정상적인 사람과 비교할 만한 것이 눈에 띄지 않으므로 이런 현상들이 훨씬 더 불분명하다. 하지만 그렇더라 도 처음부터 양심이 없이 태어난 사람은 죄를 짓고 번뇌에 시달리는 사람을 우습게 볼 것이며, 범죄자는 정직한 사람을 어리석다고 생각할 것이다. 어쨌든 괴물은 변종이라서 정상적인 것을 기형으로 본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에덴의 동쪽> 존 스타인벡, 민음사
실제로 악인들은 자신만의 논리 체계와 믿음 체계를 가지고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듯하다. 옥중의 버니 메이도프를 인터뷰한 대목에서 그는 "월스트리트는 탐욕 그 자체"라고 고발한다. 그의 기준에서는 월스트릿의 금융맨들의 탐욕이 너무 크기 때문에 그들은 법이나 양심을 벗어던진 게임을 하고 있고, 자신은 단지 그 일부로서 남들보다 좀 더 성공적으로 게임을 했을 뿐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세상을 보는 렌즈 자체가 다른 것이다.
나는 집에 틀어박혀 책을 번역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살았다. 남들보다 빈약한 사회 경험을 갖고 있고, 접한 인간 관계라고 해야 아이들 키우면서 만난 학부모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그 학부모들 가운데에서도 좀 이상한 사람들이 있었다. 거짓말로 자신의 아이의 성적이나 자신의 상황을 살짝 살짝 부풀려 말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릇된 방법으로 아이의 생기부를 꾸미고 그것으로 입시를 치룬 엄마는 다른 모든 우수한 아이들도 그렇게 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물론 그들이 대단한 악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들의 생각과 행동에서 악인들이 악한 행동을 하는 배경이 되는 사고체계를 엿볼 수는 있었다. 사람을 잘 믿는 어수룩한 사람들은 다른 이들도 다 자기처럼 선의를 가지고 정직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남을 속이고 피해를 입히는 사람들은 다른 이들도 다 그렇게 살고 그게 게임의 룰이라고 믿기 때문에 자신이 선빵을 날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 평범한 사람과 악인을 무 자르듯 딱 잘라 구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존 스타인벡이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의 정신적 측면, 양심이나 공감능력과 같은 마음의 요소를 팔, 다리와 같은 눈에 보이는 신체 요소에 비유했다. 이 비유를 조금 더 확장해보자. 가령 인간의 특성 중 키와 같이 측정 가능한 요소들을 들자면, 세상에는 키가 큰 사람과 작은 사람, 이렇게 흑백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키는 평균값을 중심으로 정규분포를 보일 것이다.
사람의 인성, 이른바 선한지 악한지를 결정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요소들.....공감능력, 양심, 이타심, 배려심, 준법정신.....등등 이런 요소들도, 사람의 키처럼 명확하게 카테고리화하고 객관적으로 측정할 방법은 없겠지만, 만일 가능하다면 대략 이런 정규분포 곡선에 따라 분포하지 않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종 모양의 그래프의 불룩한 영역에 속할 것이고, 드물게 양쪽 극단에 천사나 부처와 같은 사람들과 괴물, 악마같은 범죄인, 사이코패스들이 자리잡을 것이다. 그 중간에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때론 공감능력, 양심, 이타심과 같은 사람을 나약하고 무르게 하는 속성들을 평균보다 덜 갖고 있는 사람들은(거꾸로 말해 나르시시즘과 소시오패시 경향을 살짝, 선을 넘지 않을 정도로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 점을 유리하게 사용해서 인생에서 승승장구하기도 한다. 강한 멘탈과 목적지향적인 성격으로 탁월한 기업가, 정치가, 군인, 서젼 등등 사회 각 분야에서 활약하며 사회에 평균 이상으로 기여하는 사람들도 넘치듯 볼 수 있다. 이런 속성들도 진화과정에서 생존 가치가 있었기 때문에 일정 비율 보존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버니 메이도프의 사기행각을, 소시오패시나 나르시시즘과 같은 인격장애로 간단하게 치부한다면, 이 스토리는 그냥 피상적이고 1차원적인 괴물 이야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다큐에서 버니를 인터뷰하면서 범죄 동기를 물었을때 내가 기억하는 것으로는 두 가지 정도 대답했는데, 위에서 언급한 대로 "월스트릿은 원래 탐욕스럽다"라는 변명이 하나였다. 그 다음 멀쩡한 증권사를 잘 경영하면서 굳이 무리해서 비인가 투자자문업을 하면서 사람들의 돈을 수탁받은(그리고 폰지 사기를 친) 이유에 대해 "나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을 좋아한다"라고 말했다. 어쩌면.........피상적인 괴물 이야기를 "셰익스피어적 비극"으로 업그레이드하는 비밀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
공감능력이 떨어지고 인간적 감성이 결여된 사람들도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 받고, 존경 받고, 인정 받고, 추앙 받는 것을 좋아한다. <에덴의 동쪽>은 두 가족을 축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카인과 아벨의 우화라고 할 수 있는 애덤 트래스크 가족이 한 축이고, 스타인벡 자신의 외가 이야기인 해밀턴 가족이 다른 한 축이다. 해밀턴 가족은 불운한 천재이자 예술가적 심미안을 갖고 있고, 공감능력도 표준정규분포에서 천사 쪽 0.0n%에 속할만한 인물인 새뮤얼 해밀튼과, 그를 닮은 자식들로 가득한 가족이다. 요즘 유행하는 MBTI 에서 N과 F 쪽 극단에 있을 만한 사람들.... 그런데 그의 자식 중 유일하게 S와 T쪽으로 치우친 아들이 하나 있다. 그 아들은 다른 형제들과 달리 이재에 밝고, 현실적이고, 약싹빠른 인물이어서 장사와 투자로 돈을 많이 번다. 다른 형제 자매들이 가진 감수성, 심미안, 이상주의, 지적 호기심, 몽상적 기질, 유머감각 따위는 완전히 결여된 인물이다. 그러나 현실감각 없는 형제 자매들이 재정적으로 곤경에 빠지면 구해주고, 가족의 크고 작은 일에 지갑을 여는 것은 그였다. 소설의 후반에 애덤의 아들 칼 트래스크가 그를 찾아와서 도움을 청할 때, "아버지의 사랑을 돈으로 사려는 거냐?"라고 물었더니 "네"라고 대답하는 칼에게, 밀려오는 애정을 느끼며 울컥하는 장면은 이 소설의 인상적인 대목 중 하나이다. 그는 칼에게서 자기 자신을 보았다. 칼이야말로 자신이 낳았어야 하는 아들, 어쩌면 자신을 낳았어야 하는 아버지였다고 생각했다. 자신과 너무 다른 가족들 속에서 소외감을 느끼며, 한편으로 그들의 사랑을 갈구하며 평생 살아온 그로서는 자신과 너무나 닮은 칼에게 깊은 동질감과 애정을 느꼈던 것이다.
버니 메이도프도............사람들의 존경과 추앙을, 가족의 사랑을........돈으로 사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단지 그 욕망이 지나치게, 어마무시하게 강했던 것일 수도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한편으로 그에게 연민과 동정 마저 느껴진다.
또 하나....
그가 언젠가는 무너질 거짓말의 풍선에 계속 바람을 불어넣었던 것은, 아마도 그가 나르시시즘 인격장애자이기 때문에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해서 죽을때까지 들키지 않을 거라 자만했던 것도 있을 테고, 자신이 죽고난 후에 남겨진 가족들이 받을 충격과 고초는 신경쓰지 않는 소시오패스 인격장애이기 때문이라는게 정설이겠지만...
그냥 "어리석은 어린애"라는 프레임으로 바라보자면 또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기도 한다. 어린 아이들은 흔히 거짓말을 한다. 전전두엽이 덜 발달되어 양심과 같은 고차원적 정신 능력이 덜 발달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거짓말이 발각되었을 때 감당해야 할 "뒷일"을 논리적으로 추론할 정신의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뒷일이야 "알빠노"이고 눈앞의 유혹에 굴복한다. 그리고 평생 철이 들지 못해 딱 그런 어린아이 수준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어른들도 넘치듯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렇다. 거짓말을 하고 남을 속이는 사람들은 많다. 버니 메이도프는 그 스케일이 어마어마했을 뿐......
그렇게 보자면, 이런 사태가 벌어진 데에는 시스템적 문제, 사회의 책임을 물어야 할 수도 있다. 남이 보지만 않는다면 금지된 마시멜로를 냉큼 입에 집어넣을 사람들이 저 정규분포 곡선에서 적지 않은 조각을 차지할 텐데, 그들을 적절하게 감시하고 조사해서 선량한 사람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는 사회적 시스템이 수십년간 작동하지 못했다. 해리 마코폴루스가 강조한 것도 그 점이었다. 그는 SEC의 관련자들도, 버니에게 고객 돈을 맡겼던 헤지펀드(페어필드그리니치)나 유럽의 펀드매니저 존야 콘, 버니에게 돈을 대주었던 쩐주들(그들은 버니의 사기행각을 알고 있었을 개연성이 크다)이 제대로 처벌받지 않은 것에 분노했다.
이른바 "악의 평범성" 이론....
나쁜 일을 저지른 한 개인을 괴물로 간주하면 벌어진 사태를 쉽게 이해하고 다 같이 마음이 편안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다큐 말미에 작가분이 말한 대로 이것은 모든 사람들의 옷장에 들어있는 괴물, 침대 밑의 공포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