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이야기는 흥미롭다. 실재하는 괴물이면 더더욱...
"폰지" 사기로 유명한 버나드 메이도프에 관한 다큐멘터리이다.
버니 메이도프....
'역사상 최대 규모의 폰지 사기'라든지, '월스트릿의 거물 금융인의 추악한 두 얼굴'과 같은 헤드라인과 그가 체포되고 재판받는 모습을 오래전 매체에서 스치듯 본 기억이 있지만 메이도프 사건은 나의 마음에 별 인상을 남기지 않고 지나간 뉴스였다. 2008년 금융 위기의 '결과물'이었을 뿐...나의 삶에 직접 영향을 주지 않았던 사건이었고, 늙고 노회 한 사기꾼은 딱히 흥미나 매력을 불러일으킬만한 주인공도 아니었으니.
그래서 큰 기대 없이 이리저리 넷플을 헤매다가 보기 시작했는데 엄청 재미있었다. 최근 본 어떤 영화나 드라마보다 훨씬 흥미롭고 몰입되었다.
(실존 인물의 잘 알려진 사건이니 딱히 스포일 할 것도 없겠지만, 내용을 모르고 시청하고 싶으신 분은 읽기를 멈춰주세요^^ 줄거리와 내용을 개인적으로 기록해두고자 합니다.)
버니 메이도프는 뉴욕 퀸즈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퀸즈 출신이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맨해튼이 아닌 만큼 좀 변두리 이미지인 거 같고, 아버지도 이런저런 투기적 사업을 하다가 실패해서 살짝 불우하고 가난한 유년기를 보냈다고 한다. 딱히 공부를 잘하지도 않았고 좋은 대학을 간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야심 많은 젊은이였다. 그의 야심에 불을 지른 것은 학창 시절 만난(이른바 highschool sweetheart) 미래의 아내 루스였다. 루스의 아버지는 꽤 탄탄한 회계법인을 운영하는 회계사였다. 그는 딸이 데려온 남자가 여러모로 조건이 빠진다고 생각해 못마땅해했다. 그러나 어찌어찌 결혼에 성공하고 버니는 월스트리트에서 투자업에 투신한다.
그는 장외 주식 거래로 커리어를 시작한다. 비상장 주식을 매집해서 비싸게 파는 수완을 보였는데 이 시장이 나중에 나스닥으로 성장했다고 한다. 그는 나스닥 형성에 크게 기여했고 나중에 나스닥 이사회의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버니 자신의 이름을 딴 그의 증권사는 시장조성자(market maker, 주식을 거래하는 사람들 사이에 도매자 역할을 하는 brokerage firm) 역할과 자기 계정 거래(prop trading)와 같은 정상적인 사업을 수행했다. 그의 회사는 증권사 가운데 컴퓨터 시스템을 가장 먼저 도입하는 등 선도적인 면모를 보였고 뉴욕의 랜드마크 빌딩 중 하나인 립스틱 빌딩의 19층에 입주한 잘 나가는 회사로 성장했다.
그런데 버니는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고객의 돈을 받아 운용하는 투자자문업(investment advisory)을 병행해 나갔다. 이것은 허가받지 않고, 같은 건물의 다른 층(17층)에서 비밀스럽에 운영되는 비즈니스였다.
버니는 장인의 회계법인의 고객들, 플로리다 팜 비치의 유대인 클럽 멤버 등 인맥을 동원해서 고객을 끌어모았고 그들에게 연 17% 정도의 꾸준한 수익을 돌려주었다. 주식시장이 출렁거려도 거의 손실을 보지 않고 일정한 수익을 돌려주는 버니의 펀드는 입소문으로 점점 불어났다. 다들 돈을 싸들고 와서 맡기려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버니가 고객의 돈을 어디에도 투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어떤 주식도 채권도 사지 않았고, 새로 유입된 고객이 맡긴 돈으로 기존 고객에게 수익금을 지불하는 전형적인 폰지 사기를 쳤다. 고객들에게는 사후에 꾸며진 거래 내역서를 보내주었다. 특정 종목이 오르기 전에 사서 내리기 전에 파는, 답안지를 보고 문제를 푸는, 미래에서 온 거래 내역서였다. 이런 사기에서 그의 손발이 되어준 몇몇 직원들이 있었는데 대표적 인물이 프랭크 디카스팔리였다. 그는 버니의 오른팔이자 행동대장이었다. 이들은 립스틱 빌딩 17층에 음습한 분위기의 비밀 사무실을 차려놓고 가짜 장부, 가짜 서류들을 만들어내고 사기행각에 필요한 온갖 일을 처리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대학을 나오지 않은 흙수저 출신으로 버니는 이런 사람들을 귀신같이 알아보고 자신의 거대한 사기 머신에 끌어들인 것이다.
버니는 family man이었다. 첫사랑인 아내 루스와 호화로운 삶을 즐겼고, 잘 자란 두 아들은 좋은 교육을 받고 아버지의 회사에 입사했다. 그들은 19층의 정상적인 증권회사에서 정상적인 업무를 수행했다. 영상에서 버니의 19층 사무실의 비서였던 분을 종종 인터뷰했는데, 그녀는 버니의 두 아들에 대해 나무랄 데 없는, 착하고 예의 바르고 밝고 겸손한, 호감 가는 젊은이로 묘사했다. 나중에 그녀는 아들들에게 일어난 비극적 결말을 이야기하며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들은 아버지의 사기 행각에서 철저히 배제되었고 마지막 순간까지 전혀 알지 못했다고 한다.
버니의 비밀 펀드는 점점 규모가 커졌다. 개인 고객뿐만 아니라 페어필드그리니치와 같은 헤지펀드에서 고객의 돈을 뭉터기로 가져와 맡겼다. 빌루셰(?)나 조냐 콘과 같은, 유럽의 왕족, 귀족, 부자들의 자금을 관리하는 펀드매니저들을 통해서 유럽에서도 어마어마한 돈이 흘러들어왔다.
중간중간 위기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기관투자가가 종이로 인쇄된 거래 내역만으로 믿지 못하자, 17층 어둠의 직원들은 19층의 정상적 증권회사의 resource를 이용해서 가짜 계정 화면을 만들어내서 투자자를 안심시켰다. 두 차례나 SEC의 조사를 받았지만 모두 구렁이 담 넘듯 넘어갔다.
그러나 그의 진짜 모습을 진작에 알아본 사람들도 있었다. 양지에서는 월스트릿의 거물이고 음지에서는 수십억 달러 규모의 폰지 사기를 벌이는 괴물인 이 거악에 대항하는 작은 영웅이라는 내러티브가 이 다큐멘터리를 진정 흥미진진한 드라마로 만든다. 골리앗과 같은 거대한 빌런에게 다윗의 돌팔매질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그저....계란으로 바위 치기였다.
이 이야기는 어떤 의미에서 애덤 맥케이 감독의 <빅쇼트>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2008년 금융 위기와 월스트릿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 거짓과 악을 키워온 무능하고 탐욕적이고 위선적인 시스템, 진실을 알아보고 목소리를 냈던(또는 포지션을 잡았던) 소수의 인물들, 그들이 오랜 시간 동안 고생하고 지는 싸움을 벌이다가 마침내 진실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거짓으로 쌓아 올린 공중누각이 무너진다는 플롯.....
빅쇼트에 마이클 버리가 있다면, 이 작품에서 그의 counterpart는 해리 마코폴루스라는 인물이다.
다큐멘터리에서는 수학자라고 소개되었는데 위키피디어에 따르면 경영학을 전공하고, 금융(finance)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램퍼트(Rampart)라는 증권회사에서 옵션 상품을 설계하는 사람이었다. 램퍼트의 세일즈 담당 임원이(이 분도 계속해서 인터뷰에 등장한다) 자금을 유치하기 위해 유럽계 펀드매니저 빌루셰를 만났는데 빌루셰를 통해 메이도프의 펀드를 듣게 된다. 그는 메이도프 펀드 투자 내역을 회사에 가져와서 해리 마코폴루스에게 이런 수익률을 내는 투자 상품을 설계하라고 주문한다.
마코폴루스는 메이도프의 투자 내역을 분석해 본 후 이것이 수학적으로 불가능한 투자 기법임을, 즉 사기임을 알아차린다. 2000년대 초부터 마코폴루스는 SEC에 메이도프 펀드를 조사해 달라고 신고한다. red flag 1, red flag 2, red flag3....이런 식으로 조목조목 30개 정도의 의심 정황을 정리한 보고서를 작성해서 규제 기관에 보냈다. 그러나 SEC는 풋내기 조사관을 보냈다가 증거가 없다고 결론 내리고 계속해서 마코폴루스의 고발을 무시한다.
마코폴루스 말고도 저널리스트들도 경고음을 냈다. 인터뷰에서 계속 등장했던 배런지의 애런 아버들런드(Erin Arvedlund) 기자도 2000년대 초에 일찌감치 메이도프의 펀드가 의심스럽다는 기사를 썼다. 그러나 이런 목소리들은 멀리 퍼져나가지 못했다.
결국 메이도프와 그가 거짓으로 쌓아 올린 성을 무너뜨린 것은 2008년 금융위기였다. 모든 자산이 폭락하고 투자자들이 너도나도 시장에서 자신의 투자금을 회수하려고 몰려들자 버니의 폰지 사기는 더는 유지될 수 없었다. 버니가 자금 위기에 빠질 때마다 돈을 투자해주었던(대가로 어마어마한 이익을 챙겨갔던) 이른바 '쩐주' 4인방이 있었으나 그들도 역부족이었다.
결국 버니는 그동안 자신이 640억 달러 규모의 펀드는 폰지 사기였다는 사실을 가족에게 고백한다. 버니는 자신이 잡혀가기 전에 어떻게든 남은 돈을 가족과 친지들에게 빼돌릴 생각이었으나, 아들들은 바로 변호사와 상의하고 아버지를 FBI에 고발한다. (640억 달러는 거짓 수익으로 부풀려진 숫자이고 실제 고객에게 위탁받은 자금은 190억 정도라고 한다. 우리 돈으로 23조 원 정도이다.)
버니 메이도프는 재판에서 150년형을 받고 수감되었다가 2021년에 사망했다. 그의 큰 아들 마크 메이도프는 아버지가 체포된 지 딱 2년 되는 날 목을 매 자살했다. 둘째 아들인 앤드류 메이도프는 2000년대 초에 걸렸던 암이 재발해서 2014년에 사망했다. 온실의 화초와 같이 자라서 꽃길만 걸어왔던 그들이 아버지의 진짜 모습을 마주하고, 모든 것을 잃고, 대중의 비난과 손가락질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을 것이다. 루스 메이도프만이 아직까지 살아있다. 그녀의 삶은 지옥 그 자체가 아닐까...
자신의 고객들의 돈을 메이도프에게 맡겼던 프랑스 펀드매니저 빌루셰는 메이도프의 사기행각이 벌어진 직후 자신의 사무실에서 손목을 그어 자살했다. 그는 청소하는 분에게 수고를 덜 끼치기 위해 조심스럽게 쓰레기통에 피가 흐르도록 자세를 취한 채로 죽었다고 한다(ㅠㅠ). 빌루셰 뿐만 아니라 메이도프 일로 자살을 한 사람들은 여럿이다. 마코폴루스는 말한다. "블루칼라 범죄는 시신이 발각되고 수사가 시작됩니다. 화이트칼라 범죄는 수사가 시작된 후에 시신이 나옵니다(body drops)."
메이도프에게 투자금을 맡겼던 셀 수도 없는 사람들의 삶 역시 크든 작든 부서졌다. 투자자 가운데에는 할리우드의 거물이나 모 구단주와 같은 부자들도 많았지만, 더 많은 경우는 중산층 사람들이 전재산을 맡긴 형태였다. 은퇴한 노인이나 미망인이었던 투자자들은 일평생 모은 돈을 믿을만한 관리인에게 맡겨놓고 은행이자보다 훨씬 큰 수익을 얻어서 그걸로 노후 생활자금을 쓰고자 했던 것이다. Too-good-to-be-true thing을 믿었다는 것이 죄라면 죄이지만 대부분 선량하고 성실하고 열심히 살아온 분들이다.
메이도프 사건 이후에 신탁관리인이 지정되어 그의 자금을 정리했는데, 이때 폰지 사기로 이익을 본 사람들은 다시 토해내도록 규정이 정해졌다. 초기에 돈을 맡기고 오랜 기간 수익금을 타서 원금 이상으로 돈을 받아갔던 사람들은 그만큼을 다시 내놓으라는 의미이다(이해할 수 없는 규정이지만, 한편 메이도프에게 수 빌리언씩 박아놓고 막대한 이익을 취했던 쩐주들의 돈을 회수하려면 불가피한 조치였을 것이다). 노인들은 살던 집을 뺏기고 극빈자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일정 비율을 수수료로 받아간 신탁관리인만이 엄청난 돈을 벌었다(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10억 달러 정도라고 들은 거 같다...하....).
돈을 맡겼다가 피해를 본 분들의 인터뷰는 정말 많이 가슴 아팠다. 그들이 삶을 뒤흔들고 나락으로 빠뜨렸던 사기 행각을 당한 이후에도 자신의 삶과 화해하고 균형을 잡고 용서하고 자신의 삶을 관조하며 살아가는 선량하고 바른 사람들이라 더더욱....
한 여성 노인분이 아버지가 남긴 자산을 모두 잃고 집도 잃고 임대아파트에서 살면서 이제 돈 없이 사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고 했다. 비록 재산을 다 잃었지만 그 삶에 적응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며 낙을 찾기도 한다고 말한다. 요즘 셰익스피어의 희곡들을 하나씩 공부해나가고 있는데, 메이도프의 삶이야말로 셰익스피어적이라고 말했다. 셰익스피어가 즐겨 썼던 플롯 그대로라는 것이다.
악당이 등장하고
그에게는 아이들이 있고
그러나 그는 권력을 탐하고
결국 비극으로 끝나는.....
그에 이어서 메이도프에 관한 책을 저술한 작가분이 이렇게 말한다.
이 이야기를 고찰해 볼수록 이것은 "신뢰의 배신"에 대한 우화입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의 '옷장 속의 괴물'이고 '침대 밑의 공포'입니다.
우리는 이것이 우리에게 갑자기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모두 압니다. 우리를 가장 완벽하게 속일 수 있는 사람은 우리가 완전하게 믿는 사람들입니다.
(The only people who can deceive you completely are people you trust complete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