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우스터리츠 - W. G. 제발트
시간과 공간은 씨실과 날실처럼 얽어져 하나의 피륙이 되어야 의미 있다.
시간은 현재적이고 시간의 근원, 끝, 지금이라는 것조차 인위적인 것이므로 그것이 배치될 적절한 장소를 필요로 한다. 도서관 서가에 꽂힌 무수한 책처럼 제자리에 놓여야 한다.
공간은 내가 있음으로써 구획되고 사람보다 긴 수명으로 사진처럼 존재를 증언하겠지만, 시간이 없는 공간은 초점 잃은 눈으로 바라보듯 어지럽게 떠다니고 결국 폐허가 될 것임을 아는 요새처럼 부서질 것이다.
동물원에 갇혀 정형행동을 보이는 동물들이 잃은 것은 무엇일까. 대륙을 가로지르는 반경, 여전히 과학적으로 미지인 항해 기술, 멀고 험난한 귀환의 시간, 꿰뚫어 보는 철학자의 눈빛. 그 모든 것을 잃었을 것이다.
시간과 공간을 어떻게 배열할 것인가는 의지라기보다는 본능 같은 것이고, 그것이 침략당해 파괴되었을 때 존재는 그 무엇도 될 수 없고 유령처럼 떠돌 뿐이다. 처음 보는 낯선 언어로 가득한 시끄러운 역사에 부지불식간에 착륙한 이방인처럼 두리번거릴 것이다. 저 밖의 어스름이 밤인지 아침인지, 딛고 선 땅 밑이 허공인지 단단한 암석인지 혹은 관련 없는 인종의 무덤인지 모를 것이다. 기차를 타고 떠나야 하지만 도착지를 알 수 없고 무엇이 내게 호의적인지 나를 파괴할 것인지의 감각을 상실한 채로. 그럼에도 떠나야만 할 것이다.
왜 시간은 한 곳에서는 영원히 정지하거나 점차적으로 사라지고, 다른 장소에서는 곤두박질을 치나요? 우리는 시간이 수백 년 혹은 수천 년 동안 일치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을까요,라고 아우스터리츠는 말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지구상의 많은 곳은 시간보다는 기후 상황에 의해 지배받고, 그와 더불어 수량화할 수 없는, 직선적인 균등을 알지 못하고 항상 진전하는 것이 아니라 소용돌이 속에서 움직이고 정체와 돌연한 흐름에 의해 결정되며, 지속적으로 변하는 형태로 되돌아와서 어디로 향하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는 크기에 의해 발전되는 것은 아닐까요? 시간 밖에 존재한다는 것, 다시 말해 얼마 전까지 자기 나라에서 남겨지고 잊혀진 지역이나 발견되지 않은 해외의 대륙에 적용된 것이 예나 지금이나 런던 같은 시간의 수도에서조차 적용되는 것이지요. 죽은 사람들이나 죽어 가는 사람들, 자기 집이나 병원에 누워 있는 많은 환자들은 그러니까 시간 밖에 있는 것이고, 단지 그 사람들만이 아니라 우리를 모든 과거와 모든 미래로부터 단절시키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불행으로도 충분하지요.
- W. G. 제발트 <아우스터리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