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 32
익산역에서 버스로 약 40분가량 가면 미륵산 아래 미륵사지 석탑 2개가 나란히 놓여 있다. 늘 느끼지만, 석탑은 실물 파다. 현존하는 최고, 최대의 석탑이라는 두 개의 타이틀을 거머쥔 서탑이야 이미 익숙하지만, 오랜 복원 후 말끔해진 모습을 보니 새삼 위풍당당하다.
백제 무왕 시절 3개의 탑 - 3개의 금당이라는 독특한 구조로 지어져 미륵신앙을 구현한 위엄 있는 사찰이 지금은 푸른 여름 카펫 위에 2개의 석탑과 2개의 당간지주만이 삐죽 솟은 채로 남았다. 그나마 동탑은 원래의 모습을 확인하기 어려운 터라 온전한 복원이 아니다. 동탑의 각 기단 끝에 매달린 은은한 종소리는 639년 그 시절과 어쩌면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나 경전을 모시는 성스러운 공간인 탑이 화강암의 단단함을 무기로 길고 긴 세월을 저 홀로 견디고 지금의 우리에게 시간을 증언하는 일은 참으로 대견하고 애틋한 일이다. 감은사지 삼층석탑처럼 미륵사지 석탑도 빈 평원 위로 옛 사찰과 그 사이를 거니는 사람과 기도하는 마음을 상상하게 한다. 모든 정보가 실시간으로 기록되어 유실될 일 없는 현재를 생각하면 미래의 우리에겐 이러한 상상의 여지는 없는 셈이다. 때로는 오래된 흔적을 따라 추측하고 상상하는 모습이 더 진실되거나 아름다울 수 있음을 믿는 입장에선 이 땅에 산재한 상상의 폭과 그런 장소들이 더없이 소중하다. 폐허를 사랑하는 이유기도 하다.
두 개의 탑을 연못 뒤 벤치에 앉아 바라보면, 삼국유사에서 언급한 미륵삼존이 나타났다는 연못 위로 브로콜리처럼 고슬고슬한 나무와 하얀 탑의 그림자가 고요히 자리 잡은 것을 볼 수 있다. 싱그러운 신록이 물 위를 부드럽게 흐른다. 그대로 반으로 접을 수 있을 것 같은 풍경을 보는 마음이 못 위에 비친 미륵을 보는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1400년 가까운 시간의 거리에도 비슷할 마음 같은 것을 상상해 보는데 노란 친구들이 줄지어 한 무더기씩 지나간다. 반별로 선생님을 따라 종종거리며 미륵사지를 혀 짧게 발음하고 기념사진을 찍는다. 영락없이 엄마를 쫓는 새끼 오리들 같다. 이제 찰랑이는 종소리 대신 기분 좋아지는 아이들 웃음소리가 폐허 위를 가볍게 떠다닌다.
미륵사지에서 약 6km 떨어진 곳에는 왕궁리유적이 있다. 무왕이 백제의 마지막 부흥을 꿈꾸었던 옛 왕궁터는 이제 수수께끼를 던지는 들판으로 남았고 그 위에 시간의 더께가 묻은 오층 석탑만이 홀로 서 있다. 국보 289호의 이 백제계 석탑은 통일신라-고려 전기 제작으로 추측되는데 넓은 지붕돌의 사면 귀퉁이가 살짝 위로 치켜 떠오른 모양이 백제 석탑 특유의 안정감과 우아함을 보여준다. 저 얇은 지붕돌을 빼내면 믿기지 않게도 둥실 날아다닐 수 있을 것처럼 생겼다.
당시 인들은 몰랐을 한 시대의 작별을 고하는 왕궁터이자 이후 그 위에 지어진 절터에는 발굴하는 연구원들과 조용한 관람객만이 이야기를 더하고 있다. 부드러운 구릉 위로 초여름 오후의 희붐한 빛은 시간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오랜 풍화 끝에 남은 금마, 제석 같은 이곳의 옛 지명들과 벼락 맞은 바윗돌, 깨진 기와, 가지런한 성벽이 지금의 나와 함께 있는 일을 편안하게 느끼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