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어의 영혼 - 사이 몽고메리
우리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우리만이 이 세상을 인식하고 판단하며 규정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 명백히 틀렸음을 말하는 글을 읽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인간은 자연을 두려워하면서도 늘 그것을 정복자로서 바라보고 대상화해 왔다. 진화의 나무는 위계가 없는 것이지만 그 최정점에 항상 인간을 세워두었다. 그러나 아직 우리가 모르는 공간과 생명은 얼마나 많은지, 잘못 분류되고 오해의 종이에 감싸인 생물은 또 얼마나 다양한지,
우리가 감히 상상조차 못 할 영혼은 어디에 어떻게 있는지. 어쩌면 9개의 영혼을 문어가 지니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식탁 위 바나나 꼭지 위를 맴돌고 있는 하찮은 초파리에게조차 그들 나름의 계획이 있고 신경전달물질이 있음을 생각하지 못한다.
우리는 결코 꿀벌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없고 고래의 꿈을 들여다보지 못하며 문어 다리 하나하나가 동시에 다채롭게도 읽어내는 정보를 감각하지 못한다. 저 심해 어딘가에서 수십 개의 서로 다른 종들이 서로를 탐색하고 인식하는 동안 인간은 신처럼 군림하면서 저 자신밖에 모르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니 우리는 얼마나 편협하고 오만한 종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실은 지구에서 우리의 역할이 저 잘난 맛에 건방만 떨다 결국 망신당하고 극에서 물러나는 빌런 조연 같은 게 아닐까.
우리가 옷깃에 닿기만 해도 질색하는 여름 강변의 날벌레와 엇비슷한 구조로 이루어졌다는 것, 영원히 붙박인 것으로 상상되는 오래된 나무들의 소통을 영원히 해독할 수 없으리라는 사실, 쉽게 발로 차는 길거리 돌멩이와도 한 몸으로 순환하는 존재라는 것. 그런 사실들이 내겐 이 세상을 이해하는 데 무엇보다 힘이 되는 정보들이다. 때로 거지 같은 삶이 그래도 아름다워지는 마법이다. 실은 마법이 아니고 과학이라는 게 또 존재에 관한 가장 쉬운 해답이기도 하다.
미국인 박물학자 헨리 베스턴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동물은 “우리의 교우도, 우리의 졸때기도 아니다. 동물은 상실했거나 결코 획득한 적 없는 확장된 감각의 세계에서 우리가 끝내 듣지 못할 목소리를 따라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이들은 “우리와 더불어 생과 시간의 그물에 잡힌 다른 종족들, 곧 지구라는 장려한 고해에 갇힌 동료 죄수들이다.”
칼리는 다른 문어나 인간 잠수부들은 물론, 가지가지 종의 새와 고래, 바다표범, 바다사자, 상어, 게, 물고기, 거북이를 만나 겨루었을 수도 있다. 하나같이 다른 종류의 눈과 생활방식, 감각, 동기, 성격, 분위기가 있었을 생물들과 말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일상생활이 오직 같은 종과의 직접 교류로 이루어진다는 사실과 비교하면, 칼리는 범세계적 교양인이고 우리는 소도시 촌뜨기인 셈이었다.
- 사이 몽고메리 <문어의 영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