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좋아하세요?

# 아니요, 네...

by 무재

후텁지근하게 흐린 날, 오랜만에 면접을 다녀왔다. 경력직의 면접은 판에 박힌 자기소개를 한다거나 나의 강약점 같은 항목을 너무 뻔해 낯간지러운 멘트로 포장해야 하는 불상사는 없는 편이다. 전 직장에서의 업무 범위, 사용 프로그램, 무엇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같은 실용적인 얘기들이 오간다. 그렇다 해도 면접관은 요즘의 대이직 시대에 이 직무에 대한 충성도가 어디까지 갈지를 떠보고 싶어 하고, 면접자 또한 자신이 해 온 일에 대한 애정을 보여줄 필요가 있는데, 나름의 어필을 하면서도 내가 일에 대한 애정이 있는 건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익숙한 일, 경력을 이어 가야 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연봉 조건을 제외하고 난 내 일을 계속해 나가고 싶은 열의가 얼마나 있는 걸까. 못 해 먹겠다 싶을 정돈 아니지만 특화된 스트레스 부분이 있고, 연차를 쌓을수록 확장될 여지가 있는 분야지만 역시나 늘 대체는 가능하다. 종종 재미랄까, 이 부분 더 공부해 보고 싶다는 호기심도 일지만 그 호기심을 충족할 기력을 다 뺏어가는 회사도 부지기수다. 애초에 매사 열도가 낮은 나의 문제일까. '꿈은 없고요, 그냥 놀고 싶습니다.'


일에 대한 과한 열정은 현실의 사무실에서는 종종 화를 부르고 눈치껏 적당한 실력과 책임감의 정도로만 대하는 게 이롭다는 주의는 변함없다. 다만 오늘 같은 상황에서 오랜만에 일에 임하는 내 마음을 다시 상기시켜 볼 때면 주저 없이 내가 하려는 일을 좋아한다고 말해보고 싶기는 하다. 사랑까진 아니고 오, 충분히 좋아합니다, 정도는.

시작이야 어땠든 한 분야의 일로 지금껏 먹고살며 사회인이란 감각을 키워왔다. 영영 떠나고 싶다가도 결국 돌고 돌아 돌아오기도 했고 동료들과 한 무더기의 푸념을 쌓으면서도 동시에 조금씩 그걸 딛고 올라서는 나를 보기도 했다. 볼륨을 줄이듯 태도의 농도를 낮추면 애증의 일을 긍정할 수도 있지 않을까. 숙련도를 다듬고 싶다는 마음, 오래 해온 일은 이러나저러나 나를 설명해 주는 또 하나의 도구라는 생각, 결국엔 내 손으로 선택한 가장 긴 시간 동안의 나일 것이므로. 그러니까 일은 나의 일부분이고 빛나는 성취 없이도 그것을 긍정하기 위해서 일 또한 긍정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커버사진 출처 : PIXABAY 무료이미지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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