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끔은 기분을 한껏 더 끌어내리고 싶다
자신감을 갖기가 어렵다. 나는 이토록 애매한 인간. 과거와 크게 다를 바 없이 나이만 먹으니 더 이상 포장도 통하지 않고 발랑 까발려진 느낌이다. 미숙함도 결핍도 무능도 어릴 땐 변명 가능하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변명과 포장이 우스워지는 나이에 다다랐다. 모두에게 공평한 나이라는 무기. 날카로운 무기로써 제구실할 적엔 그 가치를 체감 못 하고 술술 흘려버리던, 영원히 내 어깨에 걸쳐져 있을 것 같던 외투가 스르륵 흘러내리려 한다. 그 벗겨진 자리에 뭐라도 있어야 가까스로 쿨한 인간이 되는 건데 3무, 4무, 5무(無) 쯤을 달성한 지금
제법 우스운 꼴이 된 것이다. 나, 처량한가? 처지도 삶도 상대적이니 처량하지 않은 쪽으로 거울을 돌릴 순 있다. 나는 또 합리화의 달인이니까. 그렇지만 한 번씩 자신감이 땅에 처박힐 때 불난 목욕탕에서 깨 벗으며 뛰쳐나오는 것 같은 수치심이 몰려온다. 마이너스 10년 혹은 플러스 10억 정도가 아니면 안 될 수치심 같은 것. 지극히 속물적이고 하품 나오게 되풀이되는 한심함이지만 알면서도 그런 감정에 처박히는 걸 어떡하나, 종종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고 초조해지고 회한이 드는걸.
회한이라니.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할머니가 축축한 저 아래서 백골의 손을 들어 등을 후려칠 얘기다. 회한까진 앞으로 좀 더 가야 한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이 루저 같은 기분이 과장된 면이 있는 것을 알고 있다. 그 정도 아니고 단순히 투정이라는 것을. 그런데 한껏 과장해 버리고 싶은 것이다. 내 앞의 도화지에 에라 모르겠는 기분으로 까맣게 죄다 칠해버리고 싶은 기분. 세상은 ㅈ같고 나만 ㅈ같지 않다는 우쭐과 외로움을 동시에 끼얹고 싶은 기분. 좀 가라앉네, 정도를 신파극으로 극대화하여 질질 짜고 싶은 기분. 모든 멸종과 소멸을 읽으며 마음 아픈 동시에 모든 망함을 기도하는 기분. 그러다가 하루가 펄럭 지나면, 아니 저녁에 알싸하게 매운 것을 먹고 나면, 온통 까맣게 된 도화지를 다시 뾰족한 것으로 긁고 싶어질까? 그 아래 숨겨진 색색의 선들을 찾아서. 뭐가 배경이었고 뭐가 대상이었는지 모를 그림. 이건 내가 다 애매모호한 탓이다. 자책과 자학마저 어중간해서 아예 침몰해 버리지도, 날뛰지도 못한다. 남몰래 어둠을 즐기는 유형, 내 슬픔을 연료 삼는 자아도취. 이럴 땐 여러모로 가지가지다.
*커버사진 출처 : PIXABAY 무료이미지 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