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나

# 여행 6

by 무재

쿠바에 온 첫날. 당장이라도 문짝은 떨어져 나갈 것 같고 시트는 푹 꺼진 초록색 올드카 택시를 25 쿡에 탔고, 매연 냄새가 온몸에 스밀 듯 심했으며, 다소 황량한 공항으로부터 올드아바나에 접근해 가지만 내 예상보다 도시는 더 낡고 바랜 느낌이었다.

최대 번화가라는 오비스뽀 거리는 좀 더 생기가 돌긴 하지만 역시 기대만큼의 감흥은 없었다. 쿠바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영향인지 한국인은 굉장히 많고, 멕시코에서보다 훨씬 외국인에 무관심하다. 그 무관심이 호의가 아닐 뿐이지 온갖 호객과 캣콜링은 부족하지 않다.


거리에는 비쩍 마른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사람과 화려하게 치장한 사람들, 원색의 레깅스와 나이에 무관하게 너풀거리는 패션과 그게 이색적인 관광객들이 아무렇지 않게 교차한다.

2 쿡짜리 일본식 덮밥을 점심으로 먹고 아텍사 앞에서 두시 간이 넘게 줄을 서서 겨우 한 시간짜리 인터넷 카드 5장을 샀고, 너무 피곤해서 체크인하자마자 곯아떨어졌다. 아바나에 온 지 겨우 몇 시간 만에 동행인은 당장 바라데로로 떠나버리고 싶다고 농담 반 진담 반 소리를 했고, 나 역시 너무 지쳐서 인터넷도 안 되는 이 공백을 어떻게 감당할지, 당장 모레부터의 숙소는 어떻게 할지, 진공 같은 이 고립감은 뭔지 막막했다.


첫 이틀간 느낀 아바나는 너무나 불친절하고 무례했는데, 영어를 하는 현지인은 다 사기꾼이라더니 택시 기사부터 도와줄 것처럼 접근한 사람들은 결국 다 우리를 돈 몇 푼으로만 보는가 싶었다. 모로 요새 위의 저녁은 이상하리만치 평화로웠지만 비아술 터미널에서 도시를 떠나기까지도 온갖 짜증 나는 일들로 점철이었다.

그런데도 참 알 수 없는 것이, 자본주의의 가면을 쓴 이 속물적인 도시가 남부의 도시들을 여행하고 영영 떠나기 위해 다시 돌아왔을 땐 어쩐지 좀 친숙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몇몇 거리와 광장을 제외하면 깜깜한 밤과 두통을 유발하던 매연보다 파스텔의 색감이, 온갖 곳에서 펄럭이는 쿠바 국기와 관광객을 태운 반짝이는 올드카가, 이제야 걸어보는 말레꼰 풍경이, 아무리 봐도 바가지인 플로리디따 다이끼리의 차가운 맛이 더 와닿았다. 이곳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바라볼 준비가 이제야 된 것일까.


체 게바라의 나라임과 동시에 헤밍웨이의 도시답게 그로부터 유명해진 술, 작품을 쓰며 묵었다는 호텔방, 단골식당, 뼈만 남은 청새치와 돌아온 지친 어부를 맞으러 소년이 뛰었을 꼬히마르의 언덕을 내가 걸을 때는, 정말 그렇다고 생각하면, 이상한 감동마저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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