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에서 싯다르타로 걸어가기

# 이미 너는 완성되었다는 위안

by 무재

데미안에서 우리는 시원으로부터 내던져진 무엇이었다. 유래가 같은 투척이었다. 싯다르타에서 내던져진 돌멩이는 그저 돌멩이기도 하고, 짐승이기도 하고, 신이기도 부처이기도 한 무엇이다. 그 모든 존재는 하나로서 동시에 존재한다. 그러니까 장차 이러저러할 것이기 때문에, 무엇이 되고자 소망하므로 좌절하고 기뻐하고 고통스러워할 이유가 없다. 그 자체를 경험하면 된다. 내가 나로 이르는 길을. 때로 나를 벗어나고, 저 멀리 돌아 나가도 두려워하지 말고 걸어가면 된다. 존재하는 것을 감각하고 무너지고 사랑하면 된다.

그러다 시원의 점액과 알껍질을 묻힌 개구리가 되거나, 물고기의 꼬리를 달게 되거나, 내가 상상하던 내 모습이 아니게 되더라도 그게 실패가 아니라고 말해준다. 애초에 나는, 우리는, 그 모든 내가 될 수 있던 경우의 수조차 모두 가진 완성된 존재였으므로.


<한 인간이 온통 신성하거나 온통 죄악으로 가득 차 있는 경우란 결코 없네. 그런데도 그렇게 보이는 까닭은 우리가 시간을 실제로 존재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네. 시간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네... 이 세계는 매 순간순간 완성된 상태에 있으며, 온갖 죄업은 이미 그 자체 내에 자비를 지니고 있으며, 어린애들은 이미 모두 자기 내면에 백발의 노인을 지니고 있으며, 죽어가는 사람도 모두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지. 아무도 다른 사람에 대하여 그 사람이 스스로의 인생행로에서 얼마만큼 나아간 경지에 있는가를 이러쿵저러쿵 말할 수는 없네. 깊은 명상에 잠긴 상태에서는 시간을 지양할 수가 있으며, 과거에 존재하였던, 현재 존재하고 있는, 그리고 미래에 존재할 모든 생명을 동시적인 것으로 볼 수가 있어. 그러면 모든 것이 선하고, 완전하고, 모든 것이 바라문이야... 나는 나 자신의 육신의 경험과 나 자신의 영혼의 경험을 통하여 이 세상을 혐오하는 일을 그만두는 법을 배우기 위하여, 이 세상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하여, 이 세상을 이제 더 이상 내가 소망하는 그 어떤 세상, 내가 상상하고 있는, 머릿속으로 생각해 낸 일종의 완벽한 상태와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 위하여, 그리고 기꺼이 그 세상의 일원이 되기 위하여, 내가 죄악을 매우 필요로 하였다는 것을, 관능적 쾌락, 재물에 대한 욕심, 허영심을, 그리고 가장 수치스러운 절망 상태를 필요로 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네... 이 세상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일, 이 세상을 설명하는 일, 이 세상을 경멸하는 일은 아마도 위대한 사상가가 할 일이겠지. 그러나 나에게는, 이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것, 이 세상을 업신여기지 않는 것, 이 세상과 나를 미워하지 않는 것, 이 세상과 나와 모든 존재를 사랑과 경탄하는 마음과 외경심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는 것, 오직 이것만이 중요할 뿐이야. -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중 ->


keyword
작가의 이전글페이스트리를 한 겹 한 겹 벗겨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