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 8
트레킹을 마치고 구름을 어깨에 맞댄 고산을 굽이굽이 내려오다 보면 알알이 박힌 빛바랜 집들과 남루한 삶의 흔적을 보게 된다. 고산에서도 일구는 밭과 초원을 뛰는 어린 양과 염소는 목가적이지만, 허물어지는지 개축 중인 것인지 분간 안 가는 벽돌담과 투어 차들의 먼지를 뒤집어쓴 채 묵묵히 걸어가는 전통 복장의 여인들이 주는 느낌이 마냥 서정적이지만은 않다.
사천에서 육천 미터 대에 이르는 거대한 산이 방파제처럼 삶을 둘러싼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무언가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덥석 얹어지는 일상의 무게를 버텨야만 하는 삶, 어쩌면 눈에 보이는 거리가 세상의 전부인 삶은. 여행자가 그러하듯 자연에 경이하고 때로 그 준엄한 경고에 순응하며 살아가게 될까. 아니면 언젠가는 이 신의 장막을 스스로 걷어내고 다른 삶으로 나가길 꿈꾸게 될까.
와라즈를 병풍처럼 둘러싼 안데스산맥의 설산 봉우리와 이천 개가 넘는다는 에메랄드빛 호수는 이 여행이 특별한 나에게 경이로움 자체지만 한편으로, 잠시 머무르는 수많은 여행자가 가져온 냄새와 시선, 두 시간여를 쉼 없이 달려도 이어지는 산세가 주는 위압감을 늘 지고 살아갈 이곳이 삶 자체인 사람들을 생각하면 이 풍경이 서늘하게도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