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 9
페루와 볼리비아를 거치며 보게 되는 비현실적인 풍광은 아름답지만, 한편으로 고독감을 준다. 구름과 맞닿은 구릉과 끝없이 파란 티티카카 호수, 해발 4~5천의 압도적인 봉우리들을 보고 있으면 감탄보다 고립감이 먼저 든다. 낮은 능선은 때로 끝이 없을 것처럼 지루하게 이어지고 도시는 손바닥으로 뜬 물고기알처럼 그 안에서만 찰랑거리고 눈이 시리게 새 파란 하늘은 날카롭게 몸을 찌른다. 와라즈의 땅과 하늘의 간격은 고개 아플 만큼 멀었는데 코파카바나의 호수와 하늘은 또 너무 좁아서 숨 막히게 느껴진다. 이 거대한 자연에 내가 티끌만 한 존재감으로 갇혀 있는 것 같고, 이 먼 곳에서는 아무도 나를 안아주지 않을 것만 같다. 나 혼자 이 모든 것을 담고 새기기에 내 감정의 그릇이 너무 작아서 자꾸만 새어 나올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일상에서 시야는 늘 어딘가에 부딪친다. 몇십 센티 떨어진 모니터나 버스 광고판에, 위압적으로 선 빌딩에, 선과 면과 꼭짓점에 부딪친다. 어떤 때는 눈을 감아도 눈꺼풀에 그 형상이 묻어난다. 멍하게 앉아 있는 순간과 꿈에서도 나는 늘 높낮이를 가진 익숙한 배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 대부분이 비슷할 것이다. 그래서 문득 차를 몰아 동해를 찾고, 주말 산에 올라 괜히 소리쳐 보고, 어떤 의미로든 멀리 보기를 소망하는 것이겠지. 우유니 사막이나 티티카카 호수의 수평선 앞에서, 파타고니아 40번 국도의 소실점과 마주 섰을 때, 그래서 내 눈이 잠시 방향감각을 잃었는지 모른다. 예기치 않게 출소해 세상에 내던져진 모범수처럼 어리둥절한 해방감을 느낀 듯도 싶다.
세상이 원래 가진 굴곡과 따뜻한 색채로 가득 차서 거칠 것 없이 나를 에워쌀 때 내 눈은 이 모든 것을 담으면서도 동시에 어디를 봐야 할지 몰랐었다. 눈 맛이 시원하면서도 마음은 울렁거렸다. 알랭 드 보통은 숭고하고 장대한 자연의 공간이 인간을 부드럽게 다독여 한계를 인정하게 한다고 말했다. 책의 몇 줄이 실체적으로 몸에 들어온 기분이다.
늘 어딘가에 부딪혔던 나는 이 거대한 산맥과 지평선 앞에서 당연하게 굴복하고 동시에 자유로워진다. 광활함 속에서 하찮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이리저리 고개 돌리고 카메라를 들이미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