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굵고 길게 일하고 싶은 마음에 대하여
이다혜, 김민철 작가의 일에 대한 에세이를 읽을 때나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독식하는 자기 계발서에 무수히 등장하는 성공적인 직장생활을 볼 때 나는 일단 부럽다. 나는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그들의 성취나 사회적 지위가 아니라 일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그 확신이 부럽다.
"일을 얼마나 사랑해야 하는지 여전히 감이 오지 않았다. 일을 사랑하는 마음이야말로 길들여지지 않는 괴물 늑대와 같아서, 여차하면 이빨을 드러내고 주인을 물 것이었다. 몸을 아프게 하고 인생을 망칠 것이었다. 그렇다고 일을 조금만 사랑하자니, 유순하게 길들여진 작은 것만 골라 키우라는 것 같아 자존심이 상했다. - 정세랑, 시선으로부터 인용 -"
나를 물어 아프게 할 것임을 알면서도, 그것을 포기하거나 대충 하는 일이 자존심 상할 만큼 일을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마음일까. 꾹꾹 쥐어짜 낸 적 없이 그저 당장 눈앞에 보이는 대로 대충 진학하고 걸리는 대로 일을 시작한 나로선 그 지점이 이제 와 뼈아프다.
고민 없이 선택한 진로는 내가 하기에 너무 복잡해 보이거나, 혹은 너무 금방 싫증 날 것 같다거나, 그도 아니면 조직 문화나 사람들에게 적응할 자신이 없어 이리저리 흔들려 왔다. 와 이렇게 허술한데 회사가 굴러간다고? 저 사람은 어떻게 안 잘리고 저 자리에 있나?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첫째로 얻게 되는 깨달음이라는 우스갯소리인데, 이게 웃기지 않고 진지하게도 내가 목격한 현실이었다. 뒤를 쫓고 싶어지는 상사, 영감을 주는 동료, 중요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보람, 가치 있는 것에 스스로를 소진해 재가 되는 가학적 만족감, 전문성이란 옷을 덧입는 이상향의 나, 같은 건 자기 계발서나 드라마에나 나오는 거였다. 분명 존재하지만 내가 겪고 들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위염, 장염, 피부염, 각종 염증을 달고 살고, 오르는 연봉만큼을 병원비에 쏟는 동료들이 있었다. 어쩌다 작은 실수와 누락에 꽂혀 화를 내는 상사들이 있었다. 저걸 다 모으면 숲이 되겠지 싶을 만큼 쓸데없는 문서 작업과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싶은 회의, 형식주의의 끝판왕인 각종 인증과 규제, 절차들. 효율과 합리성으로 포장한 극도의 비효율과 비합리성. 그 모든 게 내가 경험한 회사들에 있었다. 왜 저렇게 몸을 갈아 일하나 싶은 사람들과 쟤는 정말 하루 종일 뭐 하나 싶은 사람들이 꽤 평등하게 공존했다.
"세상은 너무 복잡해졌다. 우리 모두는 일터에서 하루를 헤쳐나가면서도 실은 얼뜨기라는 걸 들키지 않으려 허세를 부리게 되었다. 나는 세상이 매분 매시간 실없는 일을 합리화하려 애쓰는 사람들의 엄청나게 부조리한 노력으로 가득하다고 본다. - 스콧 애덤스, <딜버트>의 작가 - 데니스 뇌르마르크&아네르스 포그 옌센, 가짜 노동 인용의 재인용 -"
물론 잠시 잠깐 내가 이 사회에서 뭐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뭐라고 해 봤자 이제 제법 일이 능숙해진 회사원 1 정도지만, 늦여름 초저녁 상쾌하게 불어오는 서늘한 한 줄기 바람처럼 성취감 비스무리한 느낌이 찾아올 때가 있다. 그리고 그 모든 동료, 겉보기에 한 묶음인 일하는 우리들, 하나하나 뜯어보면 업무 능력도, 가치관도, 성향도 제각각인, 그 모든 좋고 짜증 나고 불편하고 사랑스러웠던 사람들이 있어 띄엄띄엄한 어두운 시간들을 건너올 수 있었다.
내 커리어를 가장 긍정하고 싶은 것은 나. 아등바등 버텨온 내 등을 그래도 나는 쓸어내려 주고 싶어서 어떻게든 그 의미를 만들어 본다. 모래사장 속 바늘이라 해도 어쨌든 바늘은 거기 존재하니까.
이십 대에는 그냥 다 웃기고 무가치하게만 보였다. 신기루 같은 업무도, 영어를 덕지덕지 붙여 이름만 화려해진 낡은 프로세스도, 언제고 대체 가능한 블록 하나가 된 느낌과 점점 냉소적이고 무심해져 가는 나도, 이게 다 무슨 의미일까 싶기만 했다. 배운 게 도둑질, 이란 말을 정말 하고 싶진 않은데 어 업계에서 숱하게 듣고 어쩔 수 없이 내뱉었다. 여러 개의 선택지를 손에 쥔 것이 특권인 이 사회에선 해왔던 일, 배운 것으로 결국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연차란 게 쌓이고 할 줄 아는 업무가 찔끔찔끔 늘어나고 넓어지는 일의 연못에 발을 좀 더 깊숙이 담그다 보면 어느새 나도 일을 사랑하고 싶은 욕구가 든다. 내 일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만 싶어 진다. 그 의미를 걸치고 제법 폼 잡고 싶어 진다.
여전히 내 시야에 쫓아가고픈 이가 잡히지 않는 게 종종 슬프다. 내가, 내가 꿈꾸는 이가 되어 맨 앞에 설 수 있을지 확신도 없다. 내 주변에서 굵고 긴 커리어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이들을 더 많이 보고 싶다. 이제야 조금 알게 됐는데, 이 편안함이 사랑의 다른 이름임을 알게 됐는데 동시에 어긋나는 관계처럼, 지금 싹트기 시작한 일에 대한 사랑이 허무하게 꺼질까 두렵기도 하다. 직장인의 굳은 사명감은 수수깡 같은 것이어서 두터워 봤자 쉬운 계기 하나로도 툭 부러질 것만 같다.
그럼에도 언젠가, 냉담함이 뼛속까지 파고든 직장인을 촉촉하게 위로해 준 글과 비슷한 말을 하고 싶다. 책 속의 그들을 닮아 가고 싶다. 쓸모 있다는 감각을, 나를 추동하는 무언가를 조금 더 크게 키워보고 싶다.
"이 일이 삶의 전부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것. 그리고 또 하나는 그동안 해온 일이 결코 쓸모없지 않다는 것. - 김진영, 우리는 아직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인용 -"
"누구 한 사람만 앞에 있어도, 한 명만 눈에 보여도, 그 길을 선택하는 일에 도움이 된다.
이것 하나만 명심하려고 한다. 내가 얻는 좋은 기회는 과거의 퍼포먼스의 결과다. 과거의 내가 열심히 해서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지금의 내가 두려워하지 않아야 미래의 내가 더 좋은 기회를 얻으리라. 현재의 내가 누군가에게 고마워해야 한다면 그것은 과거의 나다. - 이다혜, 출근길의 주문 인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