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 14
광대한 자연과 이질적인 거리, 낯선 경험은 여행이 주는 특별함이지만 그 사이사이를 메우는 건 너무나 일상적인 것들이다. 비우는 만큼 채워지는 배낭을 풀고 싸기를 반복하고 공항에서 숙소까지, 숙소에서 터미널까지의 경로를 검색한다. 오늘 저녁은 뭘 먹을지 고민하고 자잘한 손빨래를 해치우고 씻고 잠자고 다시 짐을 챙긴다.
사진에 담기거나 박제되는 특별한 기억들 뒤에 수많은 일상성이 존재한다. 그리고 때로는 그게 익숙해지다 가도 한없이 지치게 만든다.
어느 방향으로 여행하든 산티아고쯤 오면 누구나 쉼, 혹은 재정비가 필요해진다. 그럼에도 새로운 도시에 대한 호기심 또는 고질적인 의무감으로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는 이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짧게 발파라이소를 다녀오거나 한인 마트를 들르는 정도다.
서울과 어딘가 비슷한 도시를 거닐며 나도 아무것도 안 하는 중이다. 1월 말의 한낮은 너무나 뜨겁고 밤 12시가 다 되도록 그 열기가 쉬이 식지 않는다. 아마도 산 크리스토발 언덕 정도를 빼면 산티아고 내에서 최고이지 않을까 싶은 호스텔 테라스에서 야경을 감상하며 차가운 음료를 마시고 괜스레 여기저기 연락해 보고 파타고니아 정보를 검색해 보는 게 전부다.
이틀간 머리를 비우는 중이다. 앞으로의 시간을 더 소중히 보내기 위해, 더 나아가려고, 잠시 숨을 고르고 욕심과 걱정을 이곳에 내려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