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계 맺기
얼마나 나를 드러내고 감춰야 하는 걸까. 간장 한 큰 술, 설탕 반 스푼처럼 적당한 레시피라도 있었으면 싶다.
학교에서, 일터에서, 동네에서, 이런저런 온오프라인 모임에서조차 공적-사적 대화와 친목의 구분은 쉽게 모호해진다. 회사에선 일에 집중하고 적당히 사람들을 대해야지 해도 누군가와 어느 날 문득 가까워지고, 친구가 필요해 두드린 문 안에선 겉돌다 씁쓸함만 손잡고 나오기도 한다. 공적인 자리에 실은 공적인 관계만은 없고, 사적인 자리가 부식되고 깨지는 것도 흔한 일이다.
점점 어렵고 외롭다. 정말 외로운가 하면 그런 것은 아닌데, 아니라고 하기엔 헛헛함이 드는 그런 외로움이다.
관계가 책이라면, 서로를 속속들이 아는 두꺼운 책은 부담스럽고 내지마저 얇디얇아 손을 베기 십상인 책은 소장하고 싶은 욕구까진 들지 않는다.
관계가 컵이라면, 고고히 진열된 저 각양각색의 컵들을 구경하고는 싶지만 다가가기 어렵고 내가 가진 오래된 잔은 어느덧 이가 빠져 내 손을 상처 입힌다.
관계가 빛이라면, 새로운 관계는 어두운 무대에 홀로 선 내게 어디선가 겨눈 핀 조명. 무엇이 드러났고 어디가 감춰졌는지, 어디에서 몇 명이 지켜보는지 어지러워진다. 반면 오랜 관계가 건네는 지는 오후의 느긋한 빛은 한결같이 따스하지만, 그 이상의 화려함과 강렬함은 기대하기 어렵다.
대화의 깊이만큼 관계가 깊어지는 것도 아니고, 시간의 길이만큼 두 사람이 가까워지는 것은 아님을 안다. 스치듯 우연히 나눈 대화가 느닷없이 떠오르고, 하루의 루틴 같은, 매뉴얼이 있는 절차 같은 대화가 어느 날은 한없이 지긋지긋해진다. 내가 바라는 나는 다가가기 편하고 쉽게 감정을 주고받는 사람이길 바랐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안다. 관계라는 고무줄이 느슨하든 빠듯하든 그 안에 쉽사리 들어가고 나오는 일이 여전히 어렵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그렇게 돼버렸다.
어떤 말을 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레시피가 있다면 조금 덜 허전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커버사진 출처 : PIXABAY 무료이미지 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