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변형되는 마음

# 그래서 차라리 다행인지도

by 무재

날씨가 마음을 움직이고 음악이 마음을 움직이고 걷고 뛰는 일이 마음을 움직인다. 책 속의 인물이 문득 내게 말을 걸 때, 데면데면하던 동료가 시답잖은 농담으로 웃음을 건넬 때 마음이 움직인다. 맛있는 걸 먹는 일이, 사사로운 내일 할 일을 계획하는 것이 마음을 움직인다.

그러니까 마음은 이렇게나 쉽게 흔들린다. 아이가 놓친 풍선처럼. 느슨한 빛에도 바르르 떠는 잎사귀처럼.


도무지 움직일 것 같지 않다가도, 사방이 꽉 막혀 빼낼 수 없을 것처럼 보여도 언제 그랬냐는 듯 스르르 허탈하게 굴러가 버리는 게 마음이다. 그런 마음이 황당하고 분통하다가도 또 그래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쉽게 흔들려 주어서 다행이다.

그 성기고 무른 마음을 악의와 적의의 감정들이 쉽게 쉽게 통과해 주기를 바란다. 무력과 허무함이 그 말랑한 마음에 섞여 들어가 제 모습을 잃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나는 안전하기를.


한때는 늘 단단한 마음만이 안전하다고 느꼈다. 점점 휘둘리지 않고 굳건해지는 것이 어른이 되는 일이라고 여겼다. 사사로운 일 따위는 튕겨 내고 상처에도 담담해지는 것. 화낼 일도 웃을 일도 함께 줄어드는 것. 그런 게 나이를 먹어가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착착 맞물린 돌을 쌓아 만든 성 안으로 들어가고도 싶었다. 진척이 없었을 뿐. 감정의 진폭은 분명 좁아지지만 그렇다고 단순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복잡하고 나부끼고 휘둘린다.


그래서 차라리 그런대로 두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얼기설기 쌓은 성이라고 해도, 조몰락거리는 대로 변형되는 반죽이라 해도, 차라리 쉽게 허물어지고 부서져서 그만큼 빠르게 다시 쌓을 수도 있는 법이니 말이다.

작은 행동, 말 한마디, 사소한 불운에도 흔들리는 마음이 충분히 어른답지 않아 자책했지만, 또 그만큼 여린 마음이 그 자책을 빨리 털어내 주리라 생각한다.

유연한 마음이 가볍게 변덕을 부려 디폴트인 우울감을 빠져나와 주기를 기대한다. 거센 여울을 헤집어 나가는 물고기같이.


*커버사진 출처 : PIXABAY 무료이미지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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