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 재밌다, 너무 재밌다.

by 무재

사람은 필연적으로 아주 큰 공간이 필요한 존재로 빚어진 게 아닐까?

어릴 땐 모든 게 커 보였다. 학교도, 운동장도 광활해서 종일 뛰어다녀도 지겹지 않았고, 동네 놀이 공터나 바닷길도 넓고 길기만 해서 우리는 어디든 숨을 수 있었고 한나절을 걸으며 조잘댈 수 있었다. 늘 나보다 큰 어른이란 존재가 어서 되고만 싶었다.

나이를 먹고 옛 공간과 물건이 장난감처럼 보이면, 그래서 나를 둘러싼 세계가 비좁게 느껴지면, 왜인지 그 좁은 공간에서 길을 잃는다. 더 큰 세계가 필요해진다. 나의 세계가 좁을수록 헤매는 느낌과 세계를 넓히고 벌릴수록 명확해지는 기분은 모순적이지만 이상하지는 않다. 우리는 그런 식으로 어른이 되어가니까. 누구나 새로운 관계로, 다른 공간과 경험 못했던 일로 떠나간다. 그러나 그것도 물리적인 한계는 있으니까 어느 시점에선가 다시 벽에 갇힌 듯 답답해진다. 누군가 설계해 놓은 미로 속에서 규칙을 모르는 게임을 하는 것 같다.

더 이상 내 세계를 확장할 수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두 발로 더 나가기도 어렵고 빈약한 상상력마저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면 말이다. 다음 스텝은 떠오르지 않고 이게 나에게 허용된 전부라면 어쩌나 싶은 공포와 맞닥뜨리게 된다면. 그러면 내가 가진 모든 패턴을 깨고 환상으로, 내가 아닌 삶, 우주를 상상해야 한다. 전혀 다른 세계를 떠올려야 한다.

그렇지만 그 환상은 철저히 현실이기도 하고 도피이기도 하고 과학이기도 하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한 뻔한 낙관이기도 하고 지극한 비관이기도 하다. 결국은 사람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면서, 그 사람과 사랑을 편편이 부수는 허무의 서사이기도 하다. 나는 태양권계면에 있다는 보이저 1호의 심정으로 오르트구름을 만나길 기다린다. 또는 예측조차 어려운 차원으로 이동하길 바라면서 책장을 넘긴다. 어느 방향이든 더 큰 무엇을 상상하게 하는 힘은 옳다.

그게 내가 SF를 사랑하는 이유가 아닌가 싶다.


*커버사진 출처 : PIXABAY 무료이미지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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