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멋진 다이어리

# 우리는 기록의 민족이니까

by 무재

기록의 나라, 기록의 민족인 우리가 기록하는 행위를 흠모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결국 언젠가 소각될 운명이어도 나만의 기록이 착착착 쌓여서 탑을 이루는 것을 오래전부터 꿈꿔왔으나, 현실은 착착착착착이 아니라 착착.. 정도에서 멈추었다.

나는 일기를 잘 써서 상도 받은 어린이였으나 사실 그 일기들은 개학 직전 한 달 치를 몰아넣은 반은 허풍인 일기였고, 나는 몰랐던 부족한 사회성과 쪼그라드는 용기에 놀라버린 청소년 시기와 울적함과 허무로 버무려진 이십 대에도 어떤 기록을 흩뿌렸으나, 꼴에 완벽을 기했던 것인지 마음에 안 들면 나중에라도 다시 쓰기를 반복하다 잃어버리거나 지나친 허무와 자기혐오가 뒤늦게 낯부끄럽고 공허한 말장난처럼 느껴져 쓰레기통으로 보내기도 했다. 사실 꾸준함은 나의 미덕이 아니기도 했다.

그렇지만 끄적거리는 일은 내가 그나마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이고, 세상엔 텍스트든 이미지든 물건이든 자기만의 역사를 다채롭게 기록하는 멋진 이들이 넘치고, 결제를 누를 수밖에 없게 하는 다이어리와 펜도 넘치므로 어느 시점에는 1년에 한 권은 무조건 기록한다로 원칙을 세우게 되었다.

옹졸하고 쓰레기 같은 생각도 장황하게 늘어놓고 보면 반성에 좀 도움이 된다. 어쩌다 꼴 보기 싫은 사람도 자세히 묘사해 보고 왜 거슬리는지 적어 가다 보면 정말 무엇이 싫었는가를 알게 된다. 그놈의 우울하다, 불안하다, 모르겠어, 의 반복도 나중에 모아 놓고 보면 그 시절 나는 저런 지질한 사람이었구나 인정하게 된다. 한두 번 만난 사람의 인상 깊었던 말도, 여행지의 낯선 풍경과 그때의 기분도 글씨로 잡아 묶어 두면 더 오래 내 것이 된다.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색깔과 대화와 감정들을 콕콕 찍어내어 종위 위로 납작하게 안착시키고 펜으로 바느질을 해준다고 생각한다.

다행히도 세상의 많은 금손들이 해마다 키치한 다이어리와 문구류를 생산해 내고 표현을 거들어 줄 스티커도 넘치므로 매해 새로운 마음으로 기록에 임하기도 쉽다. 어차피 완벽하지 않으므로 완벽함에 집착하지 않고, 또한 어차피 가장 사적인 영역이므로 내키는 대로 풀어간다. 덕지덕지 붙은 매일의 짜증도 하찮은 경험도 유치한 스티커도 어쨌든 기록이라고 조상님들은 다 이해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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