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한 도시들을 적어 보기

# 여행 25

by 무재

잊을만하면 한 번씩 여행했던 도시들을 적어본다. 아바나, 쿠스코, 블라디보스토크, 프라하, 런던, 가고시마,,, 도시들을 적다 보면 기억도 줄줄이 딸려 온다. 내가 이런 곳에도 갔었나 새삼 놀라기도 한다. 꽤 많이 호명할 수 있는 도시의 숫자에도, 아직 가보지 못해 가고 싶은 도시의 숫자에도 놀란다. 혼자만의 추억팔이는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은 마음을 부채질하기도 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냐고 마음을 주저앉히기도 한다.

여행할 이유도 많지만, 하지 않아야 할 이유도 많은 게 현실이다. 부지런히 일해 자리를 잡아야 할 연차고, 내키면 집어치우고 떠나는 습관 같은 건 점점 무책임해지는 나이고, 언제든 나와 함께 떠나 줄 이도 점점 줄어든다. 무던하던 나는 까탈스러워지고 겁이 많아지고 낯선 이를 초대할 마음의 문도 좁아진다. 어릴 때 상상하던 어른의 마음과는 대체로 반대로 향하는 게 실제 어른이 된 나의 마음이다. 과거 여행을 함께한 이들과 교집합을 만들기도 점점 어려워진다. 누구의 탓이 아니라 자연스레 서로의 취향이 공고해지고, 우리는 이제 더 빨리 지치고, 돌아가기를 꺼리고 불확실성을 경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언제든 이유 없이 함께 떠나 줄 이가 존재하면 좋겠지만 우리는 다들 바쁘고 아무리 서로를 아낀다 해도 충분한 시간을 내어주기 어렵다. 혼자 떠나는 일이 새삼스러운 것은 없으나 한 번씩은 마음의 누더기를 꺼내 보여 줄 오래된 관계의 부재에 초조하다.


여행이 전부는 아니지만 여행을 통해 가장 많이 나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일상에서라면 쓰지 않을 소비를 하며 먹고 노는데 잠깐의 쾌락일 뿐이라는 말에도 공감하지만, 그 잠깐의 유희가 지나간 후에도 무형의 동력이 남았다. 나와 다른 문화가 주는 기쁨과 슬픔을 배우고, 자연과 도시를 내가 어떻게 감각하는지 느끼게 되었다. 일상의 생활에서도 감정은 느끼지만, 여행을 통해 세분화되고 더 잘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다채로운 예시를 갖게 되었달까, 스스로에게 설명할 수 있는. 앞으로 몇 개의 도시가 내 리스트에 추가될까. 아직 어렴풋이 꿈꾸는, 작게나마 환상을 품고 있는 장소가 내겐 많은데.

여행을 계획하고 공항으로 향하는 것부터가 내겐 여행이다. 떠난다는 사실 만으로 아직 새로운 장소에 몸이 없어도 새로운 내가 되는 기분이 든다. 전혀 새로울 리 없이 어제와 똑같은 나지만 뭐든 받아들일 수 있는 나다. 그것은 1센티라도 변할 가능성을 지닌 나다. 사람이 변하는 건 얼마나 어렵고 어려운 일인지. 그러니 그럴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쥐고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내게는 여행이고 그 의욕과 희망이 아직은 잘 타고 있다. 한때는 반복되는 하루하루가 지루해서, 남들도 손쉽게 주말을 이용해서도 떠나는 시대니까, 이런저런 나이대에 한 번은 가봐야 할 것 같아서, 가 동기였지만 지금은 여행 자체가 이유가 되었다. 가장 많은 인풋을 주고 내가 모르는 나를 여전히 발견하게 한다. 새로운 것을 배울 수도 그만 놓을 수도 있게 한다. 학창 시절처럼 짜인 스케줄을 사는 인생이 꼭 답은 아니라고 말해주는 몇 안 되는 친구이기도 하다. 말도 안 되는 당혹감을 주면서도 때로 선물처럼 경이와 환희를 주는 대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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