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했던 한 해'로 끝나는 일

# 남의 비극은 쉽게 잊힌다.

by 무재

올여름에도 한차례 폭우가 있었다. 비가 무섭게 퍼붓는 여름이 점점 익숙해진다. 이제 장마라는 용어가 폐기될지 모른다는 기사도 나왔다. 최근의 기후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는 구시대의 단어가 되었다고. 우리는 매해 더 습하고 침수되는 여름을 맞게 될 것이란 생각을 오래 했다. 여름이란 글자가 주는 청량함과 쌉싸래한 숲의 향취를 넘실대는 흙탕물이, 소용돌이치는 거대한 쓰레기와 떠내려가는 동물이, 암울한 헤드라인이 대신하고 있다.

충북 오송의 지하차도에서 침수로 14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제 겨우 23인 교사가 스스로 생을 놓았고, 그 일로 또 다른 죽음이, 학생 인권과 교권의 저울질이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극단으로 내달리는 댓글들이 우리가 얼마나 서로 등을 지고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듯했다. 정작 그것을 바로잡을 당국과 정치는 그 극단의 줄다리기를 부채질할 뿐이다. 마치 게임 속인가 싶은 칼부림과 신림동에서의 무력하고 끔찍한 사건까지. 한여름의 악몽이라면 이보다 더한 게 있을까 싶게, 토네이도가 한바탕 쓸고 지나간 폐허를 우리에게 남겼다.

이 모든 게 한 해의 여름에 벌어진 일인데 벌써 먼 옛일처럼 생각되는 게 한편으로 놀랍다. 우리는 적당히 슬퍼하고 떠밀려 분노하지만, 휴가를 떠나고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일상을 산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또한 무력한 일이다. 체념하는 것. 어쩌면 그게 가장 무서운 일이다. 우리에게로 결국 되돌아올 이 체념이.

우리는 이미 그런 전적이 너무 많다. 상처를 제대로 꿰매지 않고 덮어버린 경험과 어딘가 부러진 것을 알면서 모른 척 그럭저럭 살아갔던 경험이, 쓰러진 누군가를 챙김 없이 앞만 보고 달려 쌓아 올린 성취가 우리에겐 많다. 그런데도 여전히 왜 반복하는지. 이 많은 비극이 불과 몇 달 전 지나온 일임을 나조차도 순간 잊고 놀라곤 한다. 내 것이 아닌 비극을 잊지 않기란 이토록 어렵다. 그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막막해진다.


내 것이 아닌 비극은 바깥에도 넘쳐나,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은 해가 바뀌고 또 바뀌기 직전까지 이어져, 이제 보도조차 보기 어렵고 중동에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의 충돌도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간다. 피해자가 가해자로, 다시 가해자가 피해자로, 피해자는 더욱 무자비한 가해자로 뒤바뀌는 이 오래된 굴레가 결국 가장 약한 사람들을 죽이고 그들의 터전을 파괴한다.

쥐면 부서질 명분 없는 전쟁이 나도, 기후 변화로 거대한 산림이 불타고 수십만 종이 사라지고 시체가 널려도 그것을 초래한 소수의 사람들은 절대 죽지 않을 것이다. 비처럼 포탄이 떨어지고 섬이 잠겨도, 팬데믹이 와도 그들은 가장 마지막까지 안전할 것이다. 다수의 우리들이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여전히 무관심하고 이용당하고 쉽게 동요하는 것이 그래서 서글프게 느껴진다.

내일 아침 서울 시내에 포탄이 떨어져도 놀랍지 않은 나라에 살면서 진행 중인 전쟁이 너무나 동떨어져 보인다. 계절의 뒤섞임과 예측할 수 없는 재난이 일상화되어 이것마저 우리가 적응해 버리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한다. 늘 다사다난했다, 로 귀결되는 한 해가 또 한 번 지나간다. 세상이 누구에게나 버틸 수 있는 정도의 고통만 준다는 거짓말을 올해도 실감하면서 한 해의 끝자락을 보내고 있다. 고통의 양은 제각각 다르다.


한쪽은 관자놀이에서 죽음의 별들이 진동하는 소리를 듣고 같은 순간 다른 한쪽은 감미로운 것들을 읽으며 자신들 앞에 놓인 아득히 펼쳐진 시간을 음미하고 있는, 나는 이 삶이라는 것을 더는 이해할 수가 없다. 우리는 죄로 붉게 물든 두 손으로 삶을 헤쳐나간다. 죽음의 홍수가 그 손을 하얗게 하리라. - 크리스티앙 보뱅 <환희의 인간> 중에서



*커버사진 출처 : PIXABAY 무료이미지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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