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는 꿈

by 무재

꿈에 대해 말하는 것만큼 무상한 게 있을까. 지독히 세속적인 이 사회에서는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연령 제한이 있고, 범주화된 시기별로 그 내용도 달라져야 한다. 이 나이 먹고도 어린 날의 꿈을 꾼다면, 저 나이 되도록 그가 묶인 범주의 꿈에서 벗어나 있다면, 그것은 민물의 물고기가 문득 길을 잘못 들어 해수로 흘러 들어가는 것과 같은 위험이다. 그래서 우리는 형제처럼 닮은 삶의 방식과 태도를 지니고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나이가 불과 몇 살 위아래뿐임에도 호들갑을 떨며 서로 선 긋지 못해 안달인지 모른다.

나도 내 또래와 비슷한 꿈을 꾼다. 비슷한 행운을 바라고 비슷한 형태와 감정과 방법을 따라가려 애쓴다. 그런 한편 평생 민물에 살아온 주제에 문득 바다로 뛰어드는 꿈도 꾼다. 그리고 그 꿈이 불안하고 자조하지만 못내 놓지는 못한다. 대단한 꿈이어서가 아니다. 그냥 너무 애 같거나 노인 같거나 터무니없어서다. 사회적 가면을 쓴 채로 멀쩡히 생활하며 그런 꿈을 주머니에 손을 넣어 남몰래 만지작거린다.


유치하고 형편없는 꿈을 어린 시절에라도 말한 적이 있었나? 돌이켜보면 그마저도 고만고만했던 것 같다. 어른들이 일러주거나 상상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직업이 꿈의 다였다. 요즘의 영악한 아이들이라면 더하지 않을까. 아이의 눈에도 어른의 눈에 어린것과 비슷한 성공의 색이 곧 행복일 것이다. 성공과 행복은 다르지만 아이들은 구분하지 못하고 어른들은 눈이 먼지 오래일 테니까. 지극히 현실적이고 화려한 성취가 곧 꿈이 되는 시대를 줄곧 살고 있다. 아무도 그러라고 강요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모두 비슷비슷한 생각만을 하는 어른으로 커버렸다. 그렇게 생각하니 우리가 참 짠하게 여겨진다. 다른 가능성을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하루아침에 지금의 일상과 대척점에 있다고 해도 결국 살아질 텐데 그것이 끔찍한 우리가, 상상조차 못 하는 우리를 생각하면 가끔 안아주고 싶어 진다.


현실감각이 떨어지고 끈기 없는 나를 주변의 어른들은 무책임하다고 걱정했지만, 이제는 어린아이에게 꿈을 일러줘야 할 나이가 된 지금도 나는 끝내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자고로 꿈이란 비현실적이어야 한다. 가능성, 타협, 성과 같은 단어보다 소망, 망상, 어처구니 쪽이 유의어에 가깝다고 여긴다. 꿈에서 만나는 세계가 시공간을 넘나들고 기억 저편의 인물이 등장해도 꿈속의 나는 전혀 이상함 없이 살아가니까, 가끔은 짜릿하니까. 우리가 꾸는 꿈이 그런 것이어도 괜찮다고 느낀다.

그래서 페르소나를 쓰고 몰래 허황된 꿈을 꾼다. 직업을 몇 번씩 바꾸기도 하고, 노매드가 되고 싶기도 하고, 지금껏 나를 알아 온 모든 이가 떠올리는 나에게서 가장 반대편에 서서 미친 짓을 벌이고 싶기도 하다. 망해가는 세상을 위한 헌신... 까지는 무리지만 기여 정도는 하는 삶 또한 꿈꾼다. 숭고함이란 것을 체험하는 삶을 꿈꾼다.



*커버사진 출처 : PIXABAY 무료이미지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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