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몰 사냥꾼

# 여행 26

by 무재

일몰을 좋아한다. 어느 곳으로 여행하든 도시를 한눈에 조망하며 멋진 일몰을 감상할 뷰포인트는 하나씩 있기 마련이고 그것을 놓치고 싶지 않다. 그렇지만 선명하고 그림 같은 석양이 늘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아니다. 운때가 맞아야 한다. 대기 중의 구름과 수증기의 양, 앞뒤의 날씨, 공기의 질 등이 골고루 영향을 미친다.

여행자는 특정한 날씨를 선택할 수 없고 그저 뜻하지 않은 행운처럼 쥘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간혹 퇴근길에 우연히 황홀한 하늘색이 머리 위로 드리워지는 날이면 바쁘게 걸음을 재촉하던 사람들이 약속한 것처럼 카메라를 켜는 것인지 모른다. 영혼 없이 지친 하루의 끝에 문득 그런 풍경을 담고자 하는 마음을 말하지 않아도 서로서로 안다. 매일 돌아오는 일몰이지만 그 얼굴은 매일 다르기에 나는 늘 기대감을 품고 바닷가로, 언덕 위로, 성곽으로, 전망대로 뛰어가 여행지에서의 마지막 날을 보내곤 했다.


알록달록하고 아기자기한 멕시코 중북부 과나후아토, 산 미겔 데 아옌데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저녁은 낮의 활기와 반대로 고즈넉했다. 골목마다 다채로운 색을 내뿜는 도시여서인지 쾌활하게 거리를 누비던 한낮의 아이가 어둠이 몰려오자 갑자기 조숙한 청년으로 자라 버린 느낌이었다.

가오슝 치진섬은 야자수가 늘어진 해안가를 따라 자전거나 전동차를 타고 달리며 바다를 감상할 수 있는 일몰 명소인데, 변덕스러운 날씨로 채도 높은 석양을 보기는 어렵지만 두터운 회색빛 아래 옅은 분홍빛이 칵테일처럼 층을 이루는 것도 꽤 멋진 풍경이다. 이곳의 랜드마크인 무지개교회의 프레임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심플한 칵테일에 갇히는 일도 괜찮다.

빈티지하고 쨍한 원색이 섞여 나뒹구는 아바나의 거리 위로 주황색 빛이 침공하는 모습을 루프탑 바에서 모히토를 홀짝이며 바라보는 일도 멋지지만, 쿠바에서 내가 가장 좋아한 일몰은 플라야 히론의 저녁이었다. 단출한 시골 풍경에 저녁이 덮이면, 화려하지 않아 눈이 더없이 편하고 부유하던 생각들도 차분히 가라앉는다. 해변엔 버석하게 마른 나뭇가지들이 널려 있고 야자수는 정돈되지 않은 머리칼을 휘날린다. 빨갛고 노란색이 얕고 부드럽게 내려앉는 저녁에 해변에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일몰을 구경하고 천천히 집으로 돌아오면

어느새 초원에 드문드문 서 있는 말들의 윤곽만 어스름하게 보이는데, 완전히 어두워지기 직전까지의 풍경마저 참 서정적이었다.

대체로 자연의 공간에 펼쳐진 일몰을 나 역시 좋아하지만, 가장 감탄했던 도심의 일몰이 있다면 단연 뉴욕이다. 화려함의 끝이랄까, 우리가 환멸하는 저 높다랗고 위대한 성취들을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색이 위로하고, 다시 그 색을 거대한 인공의 반짝임이 물들여 버리는 풍경은 넋 놓고 몇 시간도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사막의 오아시스에도, 화성 같은 달의 계곡에도, 손바닥만 한 고지대의 작은 마을에도, 마천루의 도시에도 저녁은 공평하게 왔다. 하지만 그 얼굴은 매일 달랐고, 우연히 그 장소에 머무른 덕에 어쩌면 한 번 뿐일 표정을 볼 수 있었다. 그 표정은 슬플 때도 있었고 무감하기도 했으며 때로 벅찬 감동을 주기도 했다. 고대의 석상, 식민지의 성당, 오래된 무덤이 저녁에 짙어져 푸른 윤곽만 남으면 다 비슷해진다. 낮에 서로 다른 역사와 이야기를 품은 것들이 하나의 부드러움으로 융화된다. 결국 모두 같은 어둠에 파묻히고 다시 내일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매번 알려주기 위해, 그 뻔한 사실을 잊고 분투하는 세상을 위무하기 위해 저렇게 아름답게 해가 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수많은 일몰로 위로받았고 조금 슬프기도 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깜짝 선물처럼 퇴근길과 산책의 공원에서 문득 찬란한 일몰을 보게 되길 바란다. 어느 날 늦은 저녁을 먹으로 숙소 문을 열고 나왔을 때 보았던 푸에르토 나탈레스의 찬란한 하늘빛처럼 말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