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선 아닌 생애

# 가족을 구성할 권리

by 무재

어떤 불안감은 혼자라는 것에서 온다. 난 괜찮은 것 같은데 외로울 것이라는 짐작에서 오고 언젠가 젊음의 그림자가 나를 서서히 비껴가면 제도의 선 안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손가락질에서 온다. 오롯이 나에게만 기대어도 버텨지는데 사람들은 다리 한 짝이 덜렁거리는 의자에 억지로 나를 앉힌다.

누구나 그렇게 되고, 어젯밤 꺼내 둔 옷을 챙겨 입듯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일. 적당히 일하고 적당한 누군가를 만나서 적당한 시기에 누군가의 입방아에 오르내릴 일 없이 사회가 쓱 그어 놓은 원안에 들어가는 일. 어떤 불안은 아주 쉽고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에서 비켜서 있다는 생각만으로 온다. 실은 나는 흙바닥에 그어진 불분명한 선 따위 발로 슬쩍 문지르면 그만이지 싶은데 그건 어떤 무책임, 예외, 불행한 결론에 대한 확신을 강요받는 시선에서 온다.


그리고 그 시선은 자신의 미래를 의심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나중의 나는 무엇이 될까. ‘무엇’이 될 수나 있을까. 허리가 굽고 주름이 팬 나는 여전히 내 몫을 하고 있을까. 일을 하고 일상을 누리며 살고 있을까. 따뜻한 대화를 나누고 건강을 챙기고 자존심을 지키며 생활하고 있을까. 왜 누군가에게 거저 주어지는 안온한 일상이 또 다른 누군가에겐 이토록 힘들게, 온몸 부서져라 살아내야 하는 무엇일까. 손발이 부르트게 분투한 사람들은 그럼에도 어떻게 저렇게 쉽게 웃음이 나는 것일까, 그런데도 모든 삶이 귀하다고 말하는 세상의 위선을 화내지 않고 받아들일까, 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이 개인적인 마음이 실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임을 새롭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익숙하게 학습해 온 방식으로 내가 얼마나 세상을 단편적으로만 보고 있었는지를, 비가시화된 삶에 그토록 무감했던가를, 일직선으로 그려지는 생의 모습이 한편 거북스럽고 불편했음에도 결국 나의 문제로 귀결했는지도 알게 되었다. 변하는 시대와 가치와 환경을 반영하지 못하는 이 느리디 느린 사회 체계에 화내면서도 실은 편승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반성하게도 되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할 때 우리는 경제적인 고민뿐만 아니라 누구와 살 것인지, 아플 때 누가 나를 돌볼 수 있는지, 멀리 있는 원가족 대신 일상적인 힘겨움을 누구와 나눌 수 있는지 등 사회적 재생산을 둘러싼 다양한 고민과 불안을 경험한다. 이는 취약한 집단과 취약하지 않은 집단이 임의적으로 구분될 수 없으며, 취약성 자체가 보편적인 삶의 조건으로 수용되는 사회의 필요성을 의미한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여전히 삶의 재생산에 필요한 다양한 돌봄망이나 상호의존망에 대한 지원을 마련하기보다 여성에게 강제되어 온 돌봄을 지금까지도 당연시하며 개별적인 가족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시민들의 삶을 분절적으로 바라보는 정치는 이러한 문제들을 세대갈등, 젠더갈등으로 치환한다. 그러한 시각에서 사회적 재생산의 위기, 돌봄 공백의 근본적인 문제는 사라지고 시민의 삶은 끊임없이 개별적인 이슈들로 파편화된다. 즉, 독거는 노인의 이슈로, 비혼은 여성의 이슈로, 청년세대의 불안정성은 남성의 이슈로 분리되며, 세대갈등과 젠더갈등이라는 구도 속에서 시민들의 삶이 손쉽게 동질화되고, 그 안에 존재하는 불평등은 가려진다.


국가와 사회는 가족의 틀을 매우 고정적인 것처럼 여기게 하고, 이에 따라 ‘정상가족’과 ‘취약가족’으로 시민의 삶이 분리 가능한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실제 시민들의 삶은 생애에서 누구나 취약성을 경험하고, 동시에 고유한 관계들을 쌓아간다. 삶 안에서도 삶이 얼마나 유동적일 수 있는지, 혼자 살면서도 여러 갈래의 함께 살기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우리는 이미 체감하고 있다.


기존의 규범적인 친밀성과 불화하며 ‘나’로서 살고, ‘나’로서 연결되고자 하는 실천은 나의 의지만으로는 쉽지 않다. 제도는 계속해서 기존의 정상성을 공고히 하는 실천들만을 강요하며, 이는 어떠한 관계를 설명할 때 그 관계가 ‘정상가족’의 그것만큼이나 ‘정말 깊은 관계’라는 사실을 증명해 내야 한다는 압박으로도 이어진다. (중략) 소위 정상가족 외곽의 존재들에게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정말 헌신하는 관계인지, 헤어지지 않을 것인지에 대한 증명을 요청하는 것은 배제를 넘어서 가족은 이러한 의미다라는 것을 공고히 하는 효과적인 장치로도 작동한다. 하지만 저마다 삶의 가치와 가족의 의미가 동일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한평생 일관된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삶의 시기마다 경험하는 관계도, 관계에 대한 욕구도 달라지며, 어떠한 관계나 욕구가 정상적이라고 규정할 수도 없다.


불안함은 어디에서 오는가? 이들의 불안함은 이성애 결혼, 가족 안에 속하지 않는다는 데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관계를 계속 이어갈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데서 기인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불안함에 압도되거나 좌절하기보다 불안해서 연결되고 불안해서 새로운 생활세계를 구축하며 사회변화를 상상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우연한 계기들을 통해서 다시금 ‘나’를 발견하며 새로운 상호의존의 관계망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김순남 - <가족을 구성할 권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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