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범하지만 특별해
스스로를 특별한 사람이라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들어 봄 직한 칭찬과 애정 어린 시선으로, 아직 자신을 객관화하지 못한 무모함으로. 나는 더 옳고 너희보다 울창한 숲을 키워내고 있다는 우쭐함이 있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더 많은 시선에 평가받고 이런저런 상황에 놓이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된다. 내가 얼마나 평범하고 평범한지를.
세속적인 기준에 따르면 더 적게 가진 쪽에 놓인 것도 맞다. 그 사실을 잘 알게 됐고 그렇다고 스스로 폄훼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칠칠치 못한 아이가 미처 털어내지 못한 과자 부스러기 같은 비참함을 보곤 한다. 그 비참함의 조각을 맨눈으로 보는 것은 안다고 해도 씁쓸한 일이다. 어쩌면 그래서 나는 발가벗겨지기보다는 내가 만든 옷을 덧씌우는 쪽을 택했는지 모르겠다. 온전한 나를 보면 서도 잘 모르겠는 느낌을 갖기를 택했는지도. 어쩌면 이 누추한 우월감만이 그래도 나를 사랑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그 얇은 천 하나가 내 비참함을 덮어 살아가게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었다.
한 사람의 특질은 고유하고 그의 생각과 삶의 궤적은 오직 그만의 것이어서 대체될 수 없다. 그래서 개인은 그 자체로 세계이고 우주라는 통념은 오래된 만큼 진부하고 위대한 것이지만 때로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 실은 개인의 존재는 몇몇 특별한 존재를 위한 배경에 지나지 않느냐는 의혹이 우리 확신의 문을 두드린다. 한때 우리의 자리에 존재했던 수많은 사람들을 상상하다 보면 귀신같은 허무함은 점점 실체가 된다. 우리가 기억하는 인생, 현재를 가능케 한 삶이 얼마나 드문 일이었는지를 생각하면 그렇다. 평생을 타의에 의해 좌지우지되다 다 먹은 과자봉지처럼 버려졌거나 혹독한 건기의 육식동물처럼 발버둥 치다 끝난 삶, 빗속에 찍힌 발자국처럼 빠르게 흐려져 없어질 인생, 기록을 들여다볼 틈도 없이 허무하게 사라진 블랙코미디 같은 삶이 확률상 우리의 미래인 것이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그 많은 하찮은 개인에게도 불꽃놀이처럼 화려한 삶에 대한 이상과 환상이 스민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이 재가 되어 흩어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평범으로 간주되는 어마어마한 양의 바닷물이 증발하고 남긴 소금이기를 희망한다. 그게 염전의 목적이니까.
그러나 현실은 소금이 될 기회는커녕 최소한의 기쁨을 주는 것에도 인색하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누군가를 우러러보게 하고 내 초라함과 비교해 적선하듯 비참함을 건넨다. 나는 하필 이 시기, 이 공간에 태어나 광활한 사막 속 오아시스 같은 한 줌의 의식 속에서 꿈꾸다 낙담하다 고민하고 환멸을 느끼다가, 조금쯤 행복했다 다시 의문에 휩싸여 위로받고자 책을 뒤적이고 바다를 보다가 불현듯 죽어 없어질 것이다. 나만의 우주는 아무도 모르게 그렇게 사라질 것이다.
모든 것은 역설이고 모순이다. 우리 존재는 민들레 홀씨만큼이나 연약해서 후 불면 금세 날아가 버리지만, 호기심 많은 아이의 의외성으로 뜻밖의 곳에 우리를 뿌리내리게도 한다. 또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진열되는 상점의 물품처럼 숙명을 겸손히 인정하라면서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의미를 부여하고 헛된 믿음을 품어야만 살아갈 수 있게 만든다. 그래서 뫼비우스의 띠일 게 분명한 체념과 반항 사이를 언제까지고 맴돌게 만든다.
*커버사진 출처 : PIXABAY 무료이미지 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