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랙케이크
언제, 어떤 장소, 누구에게나 어떤 방식으로든 연결이 있었다. 세상은 날카로운 칼을 너른 품에 숨기고 한 사람을 베기도, 우리를 잔혹한 풍랑 한가운데로 내던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살아낸다면 그것은 늘 어딘가에 한편으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보이지 않는 연결이 느슨하여 안전할지 팽팽히 긴장되어 있어 위험할지 알 수 없더라도 말이다. 가장 신뢰했던 관계가 나를 위험에 빠트리고 애정을 쏟았던 관계에게 폭력으로 되돌려 받는 일은 생각해 보면 얼마나 흔한 일인지. 눈인사만 나눌 뿐이던 인연이, 우연한 교집합 속 무심한 관계가 어떻게 때로 한 사람을 살리게 되는지. 왜 가장 가까운 태초의 관계가 세상에서 가장 멀어질 수 있는지. 안전하게 둘러싸인 관계에서 그토록 쉽게 상처받고 외면할 수 있는지. 모든 관계는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새삼 불가해하다. 비논리적이고 무분별하고 아리송하다. 우리 모두가 쉽게 정의되지 않는 관계들을 쥐고 있다. 스스로 빈손을 바라보는 순간에도, 외떨어져 저 혼자 자라고 있다 믿던 과거에도, 아무도 곁에 없으리라 상상되는 고독한 미래에도 실은 우리가 늘 혼자는 아니었으며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폭력에 대해 말하자면, 폭력이 아닌 것으로 이루어진 삶이 있을까 싶어 진다. 폭력이 우리가 쥔 첫 번째 무기인 것 같고, 우리가 가진 첫 번째 감정이었을 것 같고, 첫 번째 필요이자 마지막 모습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폭력의 역사를 살아낸 사람들의, 특히 여성의 서사를 읽을 때 그것이 내가 살아보지 못한 먼 과거의 일이든, 카리브해 어딘가에서 일어난 일이든 전혀 낯설지 않다. 부풀려진 무엇으로 읽히지도 않는다. 그런 일들은 사실이었고 지금도 사실이니까. 우리는 어머니와 할머니와 할머니의 어머니와 그 친구들이 겪은 일들이 무엇인지 똑같이 살아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
그 두터운 시대와 제도, 공간의 벽을 뚫고 그래도 의심하고 거스르는 사람들이 늘 존재해 왔다는 건 인간을 더 사랑할 수 있게 하는 일이다. 그리고 한편으로 우리가 연결되어 왔다는 것, 그 희미한 실선을 따라 서로 도움을 건네고 살아냈다는 것이 뭉클하다. 그 수많은 소녀와 여인들과 노인의 손을 잡고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손은 시장이 아니라 이런 연대 혹은 유대에 붙여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