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무엇이든

# 삼체 - 류츠신

by 무재

이 광막하고 아득한 우주에 우리만이 유일한 생명체인 것과, 확률적으로 더 타당하듯 발견하지 못했을 뿐 이미 수십억 문명이 존재했거나 존재하는 것 중 어떤 게 덜 외로운 일일까. 138억 년 전 빅뱅 이후 45억 년 전 지구의 탄생으로부터 지금까지, 어쩌면 정말 우리만이 유일한 별의 후손일 수도 있을까? 우주 자체가 이제 겨우 한 번 몸을 뒤집은 갓난아기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건 선득하게 외로운 상상이지만 어디서 어떻게 발현될지 모를 균이 잠복해 있다는 상상 또한 덜 외로운 것은 아니다.


수없이 과오를 반복하는 인류를 끝내 신뢰할 수 있을까? 지구에는 찰나이고 인류에겐 긴 시간 동안 마치 행사의 식순처럼, 새 가구의 조립설명서처럼 차근차근, 우리는 일어나고 허물어지고 쌓고 파괴하는 일들을 되풀이해 왔다. 역사를 배우고 고귀한 가치를 새겨도 그렇다. 문명의 마지막 날 인류는 살기 위해 우리를 지키는 선택을 할까, 무너뜨리는 선택을 할까. 이 질문에는 어쩔 수 없이 가장 쉬운 답인 비관과 체념이 먼저 앞으로 온다. 사랑이 있다면 어떨까? 하지만 그도 한갓 추상일 뿐 우리의 사랑은 너무나 잘고 잘게 개별적인데 이 거대한 시간과 공간 앞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트롤리 딜레마에서 다수를 구하기 위해 선로를 바꾸거나 육교 위에서 사람을 제 손으로 떠미는 선택을 하는 이가 있고, 그렇다고 한 명의 희생이 옳은 것은 아니라는 믿음으로 주저하는 이도 있다. 조작 버튼을 적극적으로 누르는 이와, 어떤 선택도 할 수 없어 육교 위에 주저앉아 엉엉 우는 이 중 누가 옳고 그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시간이 흐르면 그 모두는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의 위치와 상황에 따라 두 선택 모두를 끌어안을 수도 있고 하나를 지목하여 마녀사냥하듯 단죄할 수도 있다.


극한에 몰릴 때 사람이 얼마나 쉽게 존엄성을 내던지고 잔인해질 수 있는지, 얼마나 빨리 이기적이고 비굴해질 수 있는지는 너무 쉽게 짐작되는 일이다. 종국에는 내가 가장 중요해질 것이다. 온통 나로 가득 찬 세계를 그토록 경계했어도, 아무리 염세에 절은 회의론자라도 살고 싶을 것이다. 내 밑으로 흔들리는 게 밧줄이라면 잘라내고 사다리라면 걷어찰 장면이 그려진다.

그러나 한편 역사는 그와 상반된 행동과 선택들도 수없이 보여준다. 겸허히 엎드려 자신의 등에 타인을 받쳐준 이들, 소극적으로 문을 열어두고 적극적으로 타자를 끌어안는 사람들을. 그리고 그게 우리가 인간임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배워왔다. 그래서일까. 절망의 냄새 가득한 디스토피아적 상상을 멈출 수 없으면서도 한 조각 감성과 의의에, 인류의 이야기가 스민 아름다운 작품 한 점에 울컥 눈물이 치밀기도 한다. 이 불완전하고 나약하며 사악한, 그러나 때로 한없이 다정한 인간에게 해피엔딩을 기대하게 된다. 그렇지만 또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우리가 아슬아슬하게 옳든 그르든, 학살하든 희생하든, 스스로를 얼마나 위대하게 여기든, 우주는 정말 아무런 상관도 없을 것이다.



"그 고독은 정말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어. 때로 야근을 마치고 나와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별들이 마치 빛나는 사막처럼 느껴졌어. 나는 그 사막에 버려진 불쌍한 아이같고... 이런 생각이 들어. 지구의 생명은 정말 우주의 우연 속의 우연이라고. 우주는 텅 빈 궁전이고 인간은 그 궁전에 있는 유일한 하나의 작은 개미지. 때로 생명은 정말 귀해서 태산처럼 무겁게 느껴지지만, 또 때로는 인간이 너무나 보잘것없이 미미하게 느껴져."


"우주는 암흑의 숲이에요. 이 숲에서 타인은 그 자체만으로 지옥이고 영원한 위협이에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그 어떤 생명도 곧바로 없애버려야 해요. 이것이 바로 우주 문명이고 페르미 역설에 대한 해석이에요."


"5000년 동안 미친 듯이 달려온 문명이었다. 끊임없는 진보가 더 빠른 진보를 부추기고, 수많은 기적이 더 큰 기적을 만들어냈다. 인류가 신처럼 위대한 힘을 가진 것 같았다. 하지만 결국 진정한 힘을 가진 건 시간이며 발자취를 남기는 것이 세상을 창조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 문명의 끝에서 그들은 태곳적 갓난아기 때 했던 일을 해야 했다. 돌에 글씨를 새기는 일을."


- 류츠신 <삼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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