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 늘 읽는 사람이 되고 싶다

by 무재

어린이용 학습문고 전집 옆으로 청소년 소설이 하나둘 꽂혀 가고, 중앙동 서점에서 책을 들추며 배 시간을 기다리던 기억들로부터 지금까지 당연하게 내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다. 읽는 행위가 내 정체성의 일부가 되기를, 책을 둘러싼 환경과 그 이미지가 주는 부차적인 것들까지 모두를 원했다.

끈기는 없지만 지적 허영만은 낙낙한 애였고 늘 무언가를, 그 무엇이 무엇인지 모르는 무지와 모호성 속에서도, 알고 싶었다. 있어 보이는 제목을 아는 체하고 싶었고 작가가 인용한 작가가, 텍스트가 인용한 텍스트가 궁금했다. 그것을 따라가는 일은 어렵고 충만하고 때로 실망스러웠지만, 잊고 있던 내 모자람을 새삼 자각하는 일이 부끄럽기도 했지만, 그래도 언제나 균형을 잡고 멋지게 선 서퍼가 되고 싶었다. 책과 책이 연결 지어 밀려오는 그 파도 위에서.


그렇지만 파도의 속도를 따라가기에 나는 게을렀고 넘쳐나는 시간을 아무것도 안 하느라 허비한 덕에 내 독서량은 미미한 수준이었다. 밀린 숙제를 바라보는 방학 끝물의 어느 날처럼 쌓아 둔 책이 짐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삼십 대에 들어서야 취미가 독서,라는 뻔한 말이 의례적이지도 찜찜하지도 않게 일상에 자리 잡은 느낌이다. 또다시 부끄럽게도 나에겐 미개척된 황무지 같은 바다가 드넓게 펼쳐져 있었고, '얼어붙은 바다를 깨부숴 줄 도끼' 같은 책은 끝이 없었다.

그 속에서 새로운 사람과 사건과 감정과 감각을 만난다. 어둑한 책상 앞, 따스한 침대 위에 앉아 전혀 다른 시대와 장소로 숨어든다. 왜 자꾸만 튀어나오고 인용되는지 모를 이름들이 비로소 실처럼 가늘게 연결된다. 그 연약한 연결이 타래가 되고 형태와 질감을 갖춰 나간다. 계속 실을 잣다 보면 작은 장갑 하나라도 뜰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아무것도 되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쉴 새 없이 밀려오는 파도를 느끼는 일만으로, 그러다 잔잔해진 표면에 볼을 대고 가만히 엎드려 있는 것만으로 즐겁기 때문이다.


*커버사진 출처 : PIXABAY 무료이미지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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