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을 사랑하는 일

# 괴물들 - 클레어 데더러

by 무재

예술가와 그의 작품을 완벽히 분리하는 일은 가능한가?


*가능하다 : 작가에 대한 정보가 없어도 자체로 매력적인 작품이 얼마나 많은가. 어떤 작품은 우연한 마주침의 첫인상만으로 사람들을 동요시키고 전율하게 만들 수 있다. 사람은 다면적이고 예술가의 감수성은 언제 어디로 뻗어 나갈지 몰라서, 때로 불순한 것에서 순수한 것이 탄생하기도 한다.

원천이 얼마나 더럽든 가장 마지막 구멍에서 흘러나온 물빛이 아름답다면 그걸로 만족하기도 쉽다. 때로 가치 있는 결괏값을 위해 예술가의 비틀림과 난동이 필요했다면 그쯤은 넘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지기도 한다. 대가에는 희생이 따르고 대작을 남긴 위대한 이들 중 조금쯤 미치지 않은 이가 있었나 하는 합리화도 가능하다.


*가능하지 않다 : 긍정적으로, 어떤 작품은 창작자의 삶을 함께 통과해야만 이해된다. 그가 겪은 시간과 사건, 삶의 굴곡들을 알아야만 최종적인 의미가 전달되는 작품도 있다. 또 어떤 작품은 창작자를 알고 싶은 욕구를 부추긴다.

부정적으로, 범죄나 돌이킬 수 없는 오점을 남긴 이라면 그의 작품을 접할 때마다 그 일들이 자동연산 되는 것을 막기 힘들다. 부득불 꺼내 들었어도 작가의 이력이나 언행을 완전히 무시하기란 어렵고, 그럼에도 소비하고 있는 나에 대한 찜찜함까지 더해진다. 또 어떤 작품의 가치는 예술가가 떨어뜨린 평판과 함께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우리는 도피용 비상구다. 우리는 가볍다. 우리는 개인의 책임을 은근슬쩍 내려놓는 동시에 손쉬운 권위라는 탈을 쓰는 방식이다. 우리는 타인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자신이 전부 알고 있다고 진심으로 믿는, 중도 남성 비평가의 목소리다. 우리는 부패한 단어다. 우리는 속임수다. 진짜 해야 할 질문은 다음이다. 나는 어떤 예술을 사랑하면서 그 예술가를 미워할 수 있을까? 당신은 할 수 있나? 내가 ‘우리’라고 할 때의 우리는 ‘나’를 의미한다. 나 그리고 당신 말이다.


가끔 인정할 수밖에 없는 진실은 우리가 나쁜 사람들에게 흥미가 있고 그렇다, 때로는 그들에게 매력을 느끼기도 한다는 점이다. 최신 뉴스가 쏟아져 나오면 다 함께 분노하지만 진실은 무시한다. 이렇게까지 많은 관심이 피카소나 헤밍웨이 같은 남성들에게 쏟아지는 이유는 그들이 개자식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의 개자식스러움에 흥분한다.


결국 생각은 행동이 아니다. 이야기가 범죄는 아니다.


- 클레어 데더러 <괴물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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