얕고 넓고 성근 관계들

# 깊이에 연연하지 않기

by 무재

깊이에 연연하지 않는 것. 중요하다.

오래된 관계나 숙명의 관계가 반드시 나를 위한 것이 아님은 수많은 타인의 이야기와 시간이 증명했다. 우연히 만나서 고작 몇 분 대화를 나누고 서로의 일상 어디쯤 공교롭게 교집합이 생겼을 뿐인 이가 그날의 내 기분을 좌우하기도 한다. 그런 사사롭고 소소한 기분들이 쌓여 행복이라 뭉쳐지고 삶을 기름칠하는 게 아닐까.

낯선 곳에서 처음 만난 이에게 때로 가장 내밀한 부분을 엿보이고 그냥 들어간 빵집 직원의 다정함에 그날 하루가 위무되기도 한다. 사랑하는 이에게 가장 큰 울타리를 받기도 하지만 가장 날카로운 칼날을 되돌려 받기도 한다. 서로를 익히 아는 사이에서 스치는 한마디에 곪는 일도 걷어차이게 흔하다. 그러니 시간과 깊이만이 능사는 아닌 것이다.

품이 들고 오래 기다려야만 쥘 수 있는 안정감은 소중하지만 얕고 넓고 성글게 짜인 관계 또한 중요하다. 그런 관계를 떠올리면 띄엄띄엄 얽은 해먹에서 시원한 여름 바람을 맞으며 경쾌하게 흔들리는 듯한 기분이다. 이런 걸 보면 사람 간은 참 알 수가 없고 어려운데, 이게 어쩌면 당연하고 다행인 것은 아닐까. 누군가에게 단 하나가 되긴 어렵지만 그가 짜여나가는 그물의 한 조각, 실 한 가닥이 되는 건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커버사진 출처 : PIXABAY 무료이미지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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