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지 않은 민주주의

# 지금의 겨울을 바라보며

by 무재

80년 후반생에게 민주주의는 거저 손에 쥐어진 당연한 세상의 장치였다.

독재의 긴 터널을 가까스로 빠져나와 다시 겨우 맞이한 직접민주주의의 시작점에 태어난 세대는 청소년기에도 정치가 먼 어른들의 일이었고, 호남의 차별 같은 건 몰랐다. 차차 교과서 속 근현대사를 외우며, 수도권 거주자가 되면서, 지역 간 정치색과 뿌리 깊게 강력한 보수의 존재감이 체감되었다.


나와 내가 지지하는 편만이 옳다는 생각이란 당연히 틀린 것이고, 추구하는 가치가 다른 정당이 권력을 주고받는 게 자연스럽고, 소수가 지향하는 가치 또한 보호받아야 하고 포용되어야 하는 것이 민주주의임을 배웠지만, 그 배움을 믿음으로 간직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도 동시에 느끼는 요즘이다.


명백히 폭력적이고 차별적이고 지극히 속물적인 주장들을 동등한 무게로 취급하는 것도 민주주의일까, 의심이 든다. 취약한 소수자를 배제하는, 여전히 피의 흔적이 가득한 거리를 은폐하고 조롱하는, 현대의 우리가 이미 아니라고 판정을 마친 독재의 그늘로 자꾸만 후퇴하려는 말들을, 무지성의 맹신자들을 포용하는 것은 그럴 가치가 있는 일일까.

이 모든 게 무용하지 않은지, 위험하게도 독재의 생각을 닮아간다. 독재의 방식은 늘 가장 편하고 손쉬운 선택이었으므로. 민주주의는 얼마나 짧고 불완전한 체제인지. 다수 시민의 감시가 없다면, 한 명이라도 더 온건한 이성으로부터 이탈한다면, 얼마나 상처받기 쉬운 체제인지를 떠올린다.


한겨울 찬바람을 맞으며 우리가 지키려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두가 함께 지켜보아야 한다. 그래도 민주주의만이 폭력으로부터 우리를, 무지성의 지배로부터 우리를 구할 것이므로. 민주주의의 가면을 쓴 소수의 특권과 극단이 이 허점을 이용할 수 없도록, 이 모순과 허무를 극복해야 한다. 그럼에도 시민 다수는 아주 조금 더 옳은 쪽으로 늘 향하고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뚜렷하게 독재적인 인물은 쉽게 확인이 가능하다. 그들은 자신의 힘만으로 민주주의를 무너뜨리기 위한 여론의 지지나 정당성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가(권력으로 나아가는 길에 숨어서) 그들과 협력할 때, 노골적인 독재 세력은 훨씬 더 위험해진다. 주류 정당이 전제적인 극단주의자를 용인하고, 묵인하고, 혹은 이들에 대해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할 때, 민주주의는 곤경에 빠진다. 그들은 독재를 현실적으로 구현하는 조력자가 된다.

이것이 바로 독재의 평범성이 의미하는 바다. 민주주의 붕괴를 주도하는 많은 정치인은 자신의 자리를 보존하거나 더 높은 자리로 올라서려는 야심 찬 경력지상주의자다. 그들은 심오한 원칙을 기반으로 민주주의를 반대하는 게 아니라, 단지 민주주의에 무관심할 뿐이다. 그들이 반민주적 극단주의를 묵인하는 이유는 그게 가장 쉽게 갈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 스티븐 레비츠키, 대니얼 지블랫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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