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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옥 Nov 24. 2021

파란 눈 시아버지, 우리 집 아이 (4)

의사의 진단-중풍 / 한 시간에 벨을 34번 누르다

2000년 12월 22일

# 의사의 진단-중풍


시아버지를 찾아갔더니 시아버지의 눈빛이 어제의 눈빛과 너무 달라 또 한 번 놀랐다.  

분노기가 없이 순해 보여서 의외였고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눈의 흰자와 검은 자가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눈빛이 풀어진 것을 봐서 강한  진정제 주사를 맞은 게 틀림없었다.

크리스마스 기간이라 시아버지 건강을 체크하는데 진전이 느렸지만 시아버지는 예상대로 중풍에 걸렸다는 진단이 나왔고 왼쪽이 마비돼 왼쪽 손과 왼쪽 다리를 전혀 못 움직였다.

말은 청산유수처럼 쉬지 않고 해서 병이 들더니 어른답지 않게 수다쟁이가 된 게 우리에겐 낯설었고 말의 내용이나 하는 행동이 뭔가 전과 달라 우리는 아버지가 병으로 인해 점점 변해 가고 있음을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했다.

시아버지랑 한방에 있는 85살 먹은 할아버지는 심장이 안 좋고 중풍에 걸려 꼼짝없이 누워 있었는데 정신력은 좋고  약과 음식은 아예 거부하고 물과 아이스크림만 먹었다. 죽기로 작정해서 결의가 대단하신 노인네 의사를 받아들여야지 어떻게 하겠느냐며 딸과 사위가 가끔 아이스크림을 사다 주면 그것만 먹었다. 후에 들은 얘기인데 그 할아버지는 얼마 후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2001년 1월 4일

# 한 시간에 벨을 34번 누르다


크리스마스와 연말 연휴로 인해 모든 게 지연돼 시아버지는 2주 만에야 갱신 의료원으로 옮겨졌다. 사람이 중풍에 걸리면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고 처음 몇 시간 안에 치료를 제대로 하면 건강상태가 많이 회복되고 그래서 신속한 치료야 말로 마비된 신체를 다시 사용할 수 있게 하는데 꼭 필요한 것인데 유감스럽게도 그렇게 조처가 취해지지 않아 시아버지의 왼쪽 수족을 못 쓰는 것은 여전해  조금의 차도도 보이지 않았다.            


의료원이 우리 집에서 겨우 15 킬로미터 떨어 진곳(췰피시)이어서 우리는 매일 시아버지를 방문해 시아버지가 왼쪽 손과 발을 조금씩 움직이며 발전하는 것을 보며 누구보다도 기뻐했다. 왼손으로도 간신히 안경을 내렸다 올렸다 할 만큼 발전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아버지가 집에 오면 우리가 아버지를 모셔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중에 아버지가 적어도 휠체어에서 변기까지만 이라도 혼자 움직여 줄 정도의 발전만 이라도 했으면 하고 욕심을 냈다.  

내가 의사는 아니지만 시아버지의 현재  상태로 봐서 그 정도의 발전을  바라는 것이 무리임을 잘 알고 있지만 병든 사람을 돌보는 것도 다 좋은데 몸의 배설물과 관련된 일은 타인은 물론이고 본인한테도 견디기 어려운 불쾌한 일일 테니까, 기적이라도 믿고 싶은 심정에서 그런 바람을 해본다.


의료원에서 여러  환자들이 둥글게  원을 그리고 앉아 가볍고 큰 하얀 공을 던지며, 세워진 자전거를 타고, 아는 단어들을 반복하면서 세러피를 받는다.

종이에 내 이름을 써 놓은 것을 보니 kee ok 대신 또 keeeee  놓았다. 

모음이 몇 번 들어가야 하는지 감각이 없는 게다. 하지만 내 이름 쓰는 것을 연습한 종이를 보고 나는 감동받았다. 그래서 나는 시아버지가 K자 두 개 빼고 잔뜩 모음만 써놓은 종이가 너무 신기해서 집으로 가지고 왔다. 마치 아기가 처음으로 서툴게 그린 그림을 간직하고 싶어 하는 엄마의 마음과 비교하면서...


의료원에서 시아버지는 우리 눈에도 띄게 난폭해져서 간호원들을 끊임없이 부르고 벨을 눌러 하루는 간호원이 세어보니까 한 시간에 34번까지 벨을 눌렀다며 환자들을 체크하는 서류를 보여 주며 그래서 벨을 뺏었다고 했다. 한 시간에 34번이면 거의 이분에 한번 눌렀다는 건데 간호원이 왔다가 돌아서기가 무섭게 또 누른 셈이다. 시아버지는 누군가가 하루 종일 옆에서 자기 수종만 들어줬으면 하고 바라는 것 같았다. 

병든 노인네만 상대하는 의사나 간호원들이 이구동성으로 이런 환자는 처음 본다며 혀를 찼다.

우리가 아버지에게 왜 그렇게 자주 벨을 누르느냐고 묻자 장난기 넘치고 심술로 가득 찬 얼굴로  


시아버지: "벨을 누를 이유는 만들면 얼마든지 있지, 예를 들면 나 목말라, 나 오줌 눌 거야, 아니면 나 오줌 눴어 이런 식으로 말이야"


우리는 우리가 어른과 대화하는 것인지 아니면 개구쟁이 어린애 하고 대화하는 것인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 겨울이어서 밖에서 산책할 때 쓰라고 귀까지 덮이는 어두운 밤색의 두꺼운 털모자를 사드렸는데 며칠 후에 휠체어를  태우고 산책하려고 찾아보니 그 모자가 없어졌음을 알았다. 그러자 시아버지의 유머감각이 발동하여 말하기를


시아버지: "그럼 신문에 광고를 내야겠군"
나: "어떻게요?"
시아버지 "어떻게는!, 잃어버린 모자를 찾습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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