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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옥 Nov 24. 2021

파란 눈 시아버지, 우리 집 아이 (5)

고슴도치 / 요도염

2001년 2월 10일  

# 고슴도치


시아버지 성격은 점점 괴팍해져 주위 사람들 모두를 힘들게 했다.

휠체어를 타면서 움직일 수 있게 되자 병원 내에서 끊임없이 움직였다.  

움직일 수 있는 오른손으로 있는 힘을 다해 병원에 환자들의 침대가 드나들 수 있는 그 큰 문을 꽈당하고 열고 복도와 방을 1초의 쉼도 없이 태엽이 감긴 장난감 인형이 계속 돌아가다가 태엽이 풀려야 멈추듯이 시아버지는 휠체어에서 나와서 침대에 눕혀야만 멈췄다.  

우리가 아버지를 방문해도 마찬가지였다 방에서 복도 사이를  번이면  왔다 갔다 하며 잠시도 멈추지 않고, 너네들 왔니, 하고 상냥하게  인사하고  한 바퀴 돌고는 또, 응 나왔어, 하며 끊임없이 왔다 갔다 하는 게 정말 가관이었다.


남편 앤디가 어이가 없어서, 아버지 계속 이러시면 우리 집에 갈 테니 어서 브레이크를 넣으세요, 하고 압력을 넣자 아버지는 이의 없이 즉시 브레이크를 넣더니 그제야 가만히 있어서  말귀를  알아들으면서 저러는구나 하며 아연실색했다.

우리를 알고 시아버지를 잘 알던 사람들이 시아버지 병문안을 갔다 오면 하나같이 혀를 끌끌 차며 시아버지가 고슴도치 같아서 가시만 잔뜩 난 사람 같다며 시아버지를 정말 모실지 잘 생각해봐야 할 거라며 우리에게 귀띔해줬다.

한국말에도 가시가 난사람, 가시가 돋친 소리 란 말을 하는데 독일 사람들도 그런 말을 쓸 때 고슴도치와 같다는 말을 한다. 고슴도치보다 더 가시가 많은 짐승은 없을 테니까.

처음에는 원래 활동적이던 분이고 평생 가고 싶은 곳에 다 다니던 사람이 갑자기 못 움직이다가 휠체어로라도 움직일 수 있어서 너무 좋아서 저러나 보다 이해하려고도 했고 병 때문에 참을성이나 망설임이란 단어를 잊어버렸다고 생각했고 속에서 끓어오르는 화를 발산시키고 싶어서 그러는가 보다고 이해하려고 시도도 해봤지만 해도  정말 너무 한다. 문자 그대로 완전히 병적이다.

독일에 온 지 삼십 년 된 의료원에서 일하는 한 한국 간호원 아줌마가 병든 노인네를 집에서 모시는 게 꽤 힘들 텐데 잘 알아서 해야 하라며 충고해준다. 아마 이런 환자를 집에서 모시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다고 말리고 싶고 다른 방법을 찾아보라고 말하고 싶은 거다.


2001년 2월 15일  

# 요도염


아직도 시아버지가 의료원에서 조금씩 치료를 받으면서 왼손으로 찻잔을 간신히 드는 정도의 약간의 발전을 하다가 갑자기 요도염에 걸려서 항생제를 먹고 이주를 꼼짝없이 누워 있어야 했다. 그동안 조금 발전한 게 모두 수포로 돌아간 것을 의미했다. 몸에  수분이  부족하면 요도염에  쉽게  걸린다는데 누가 그렇게 우리 시아버지에게 시간 맞춰 물을 마시게 했겠는가!

시아버지가 그 의료원에서 요도염 치료를 받는 동안에는 다른 병동으로 옮겨졌다.  

그동안  병원에서 극성맞기로 유명해서 그 병원에서 제일 유명한 환자를 대라고 하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우리 시아버지 이름을 말할 것이다. 시아버지는 그 유명세 덕분에 맨 끝에 있는 귀퉁이 방으로 옮겨졌다.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들리지 않는 그런 곳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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