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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옥 Nov 24. 2021

파란 눈 시아버지, 우리 집 아이 (7)

간호를 반대하는 시숙

우리는 시아버지를 방문하고 나서 집에 가던 길에 남편형 즉 시숙을 찾아갔다. 우리가 아버지를 모시기로 했다고 알리려고 말이다.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지는 상상도 해 보지도 않아 마음의 준비를 하지도 않았다. 자기 아버지를 모신다고 해 고마워할 것인지 우리끼리 결정했다고 화를 낼 것인지 모르는 채로 말이다. 시숙은 우리가 사는데서 엎드리면 코가 닿을 만큼 가까운 큰 거리에 있는 쉘 주유소 뒤쪽 단독주택에서 살고 있다. 정원은 없지만 이층으로 된 제법 큰 집이다. 시숙 내외와 국민학교에 다니는 딸 제시카와 카스튼이란 이름을 가진 머리가 노란 아들이 그 집에 살고 있었다. 집안 장식하는 것을 좋아하는 동서 우술라는 응접실에 물건들을 끊임없이 바꾸고 새로운 것들을 사들이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은행빚도 많아 돈 때문에 자주 남편하고 다툰다. 나와 남편은 다툴일은 별로 없지만 혹시 다툴일이 있으면 시아버지가 없을 때 다툰다. 시어머니도 없게 외롭게 사는 노인네 불편해할 것 같아서, 

자녀들이 싸우는 것을 보는 것은 분명 고역일 테니까, 

시숙과 동서는 우리와 너무 달라 같이 앉아 있으면 대화거리가 없어 가족 얘기 직장 얘기 날씨 얘기 정도로 시간을 때운다. 우리는 단도직입적으로 찾아온 이유를 말했다. 

우리가 아버지를 모시겠다고 하자 시숙, 후리츠는 말도 안 된다며 흥분했다.


시숙: "이 세상에 모든 노인네를 다 모실 수 있어도 우리 아버지는 절대로 모실 수 없어! 우리 아버지가 어떤 양반인지 아버지를 병원에 가서 보지 않았어? 너네들을 생각해 줘서 하는 말이야 ,, 좋게 충고할 때 들어, 너네들 인생을 백 퍼센트 망쳐!"
나: "우리 생각해 줘서 고맙지만 자녀들도 부모를 위해 희생을 해야 할 땐 해야 하지요. 우리가 할 수 있는지 없는지 적어도 시도도 안 해보고 처음부터 양로원으로 보낼 순 없지 않겠어요?"
시숙: "왜 못해! 세상 사람들 다 부모들 양로원으로 보내는 것 보면 몰라, 너네들 언젠가는 지쳐서 아버지를 양로원으로 보낼게 뻔한데 처음부터 양로원으로 보내는 게 집에서 사시다가 나중에 양로원으로 가게 하는 것보다 더 나아! 전문가들이 너네들보다 더 아버지를 잘 돌볼 텐데..."


시숙은 양로원이 더 나은 선택 이라며 전문가 운운하며 아버지를 생각해서 인양 억지를 쓰며 적극 반대했다.

  

나: "양로원에서 일하는 사람 들은 단지 그들 직업이니까 그 일을 할 뿐이지 사랑해서, 마음에서 우러나와하지는 않지요"
시숙: "너네들 어디 가고 싶어도 맘대로 못 가고 휴가도 제대로 못가"
나: "아이들이 있어도 제한이 있는 것은 마찬가지 아니에요?"
시숙: "나 애들이 둘이 있어도 그런 제한 같은 것 못 느꼈어, 가고 싶은데 다 갔어, 애들 데리고" 
우술라{시숙의 부인}: "그럼 잠은 어디서 자고?"
나: "작은 방에서"
우술라: "아유 말도 안 돼! 하긴 너는 특성이 우리랑 다르니까"


내가 아시아 사람이니까 불편한 것도 잘 감수할 거라는 얄미운 발언이다.


나: "꼭 그런 건 아냐! 나도 불편한 게 뭐고 편안한 것이 뭔지 알고 , 편안한 것을 좋아하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야"
우술라: "그럼 기저귀는 누가 갈고?"
앤디: "하루에 한 번 간호원이 오고 내가 갈 예정이야"
우술라: "나는 어른 기저귀는 못 갈아! 내 아버지라도 나는 절대로 그런 건 못해"
나: "나도 어렸을 적부터 절대로 간호원은 안되고 싶어 했어, 간호원을 훌륭하게 보고 이곳 독일에 한국인 간호원이 많지만 내가 그 일을 직업으로 삼고 싶어 한적은 한 번도 없으니까 , 하지만 부모를 모시는 일은 다르지, 이제 당신들 의향을 알았어 , 당신들 말이 맞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어쨌든 우리가 아버지를 돌보는 일을 시작할 거야! 지금 언제까지 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우리는 언성을 높이고 언짢게 하고 헤어졌다. 자기 아버지를 닮아 와일드한 후리츠는 자기 말이 절대로 맞는다며 펄쩍펄쩍 뛰며 큰소리를 쳐 나도 화가 났고 우리는 자녀가 없지만 자녀를 나서 키우는 사람이 자기를 키워준 아버지에 대한 무정함에 놀라웠고 휴가가 더 중요하고 편안하게 지내자고 우리가 모시겠다는 데도 도움을 줄 마음의 자세조차 전혀 안돼 있는 것 같아 화가 났고 섭섭했다. 시숙은 아버지한테 맞을 짓도 많이 했단다, 16살에 디스코에 간다고 해 아버지가 방문을 걸어 잠그자 침대에 있는 이불보 두 개를 묶어 고정시켜 이층 창문을 타고 내려가 디스코장을 가곤 했단다. 그러면 아버지는 디스코장까지 찾아가 자기 아들을 끌고 왔단다. 시어머니는 아버지랑 큰 아들 둘이 똑같아 사이가 안 좋다고 얘기했었다.  

시숙과 동서의 도움받을 생각은 아예 지워 버렸다. 어쨌든 나는 시아버지를 모시겠다고 시숙과 싸운 셈이 되었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시아버지가 누구 아버지야? 시숙 아버지야? 아님 내 아버지야? 사람들이 들으면 웃을 일이다. 식구가 없는 셈 치자. 식구들의 간섭도 안 받을 것을 생각하니 어떤면으로 홀가분했다.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앞으로 어려운 일도 많을 텐데 어떻게 감당하려고 … 

나는 마음속으로 두고 보자 누구 말이 맞는가! 병든 아버지를 모시는 일이 꿀을 먹듯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고 지금 시아버지 거칠음을 봐서 정말 자신은 없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쉽게 포기해서 시숙 말이 맞게 하지 않을 것을 것을 나 혼자 다짐해본다.

우리가 시아버지 모시는 일을 무슨 이유 때문인가 못 해내더라도 시도도 안 해보고 시아버지를 양로원으로 떠다밀 수는 없다는 사실이 현실이니까, 시아버지가 밖에서 주룩주룩 비를 맞고 있는데 아무 조처도 취하지 않고 모른 척하고 그냥 지나칠 수는 없지 않은가? 

앞으로 어떤 일들이 우리에게 닥칠지 시아버지와 지낼 우리의 앞날은 하얀 백지장과 같다. 앞으로 그 하얀 종이에 어떤 그림이 그려져 갈는지 호기심과 두려움이 섞인 그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시아버지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호기심 1퍼센트 두려움 99퍼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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