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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옥 Nov 30. 2021

파란 눈 시아버지, 우리 집 아이 (10)

앤디 말고 하인리히를 부를까?


2001년 3월 8일


시아버지는 건강했을 때 소식가 여서 음식을 보통사람의 반 정도를 먹어 식당에 가면 노인들이 먹는 적은 양의 접시를 주문하곤 했는데 병이 들고 나서는 보통사람만큼 먹으니 전보다 배는 먹는다. 하지만 보지 않은 사람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침대에서도 끊임없이 움직이고 항상 짜증을 내 칼로리가 소비돼서 인지 살이 쪽 빠져 살 한 겹과 뻐만 앙상하게 남아 굶주린 아프리카 사람을 연상하게 한다. 병들기 전에 1미터 65 정도의 키에 78킬로 그램 정도 나갔었는데 지금은 57킬로그램 정도? 그러니까 족히 이십 킬로 그램 정도는 빠진 것이다. 

오전에 엘리 할머니가 와서 시아버지 마실 것도 주고 설거지도 하고 빨래도 널고 빨래가 마르면 자로 잰 것처럼 개 놓곤 했다. 자기 남편은 개어놓은 이불을 반듯하게 하기 위해 빗자루대로 이불 위를 반듯하게 하고 지나가게 했단 말도 덧붙였다. 


시아버지: "우리가 엘리를 고용해야겠어"


엘리: "그럼 얼마 줄 건데?" {손가락으로 돈 세는 흉내를 내면서 } 
시아버지: "{작은 목소리로} 우리는 가난하니까 우리한테 보태줘야지"


머리 좋은 우리 시아버지 동정을 호소하며 돈까지 달란다. 그렇게 한술 더 떠야 다음부터 돈을 안 달라고 하겠지... 시아버지가 저녁 8시경 까지는 순하고 길들여진 양처럼 순했다. 하지만 그 시간이 지나면 툭하면 기저귀를 찢어서 한 번은,


나: "내가 잠옷 바지에 옷핀을 꽂을까요? 당신도 모르게 기저귀에 손이 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요"
시아버지: "그래 그런데 옷핀이 나를 찌르면 어떻게 하지?"
나: "그럼 기저귀를 찢는 일을 하지 말아야죠"
시아버지: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그러면 내가 벽을 두드릴게"
나: "우리가 자면 못 들어요"
시아버지: "상관없어 어떻게든지 알게 할 수 있어, 필요하다면 벽을 부수는 한이 있더라도"
나: "당신이 벽을 부수는 일은 못 할 거예요"
시아버지: "하고말고 내가 못 하는 일이 어디 있어."


두 시간쯤 지나서 별 다른 이유도 없이 멈추지 않고 우리를 부르다가 아니나 다를까 벽을 쾅쾅 소리가 나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통보했던 것처럼 침대를 벽에서 일 미터 정도 떨어지게 했다. 그러자 시아버지는 환자 침대에 매달려 있는 쳘로된 삼각형으로 철대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는 삼각형을 위로 걸어놓고 돌아서자 우리가 우리 방으로 채 오기도 전에 시아버지는 침대에 창살을 위아래로 흔들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완전히 굉음이어서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귀가 따가워 남편과 나는 할 수 없이 번갈아 가며 아버지 방으로 가서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었다.

그럼 시아버지는 한 번은 {나추워} 아님 {나 목말라}{ 나 소변봐야 해}{나 잠이 안 와} 하며 부를 이유를 만들어 낸다. 시아버지는 잠이 안 오면 세상 사람들이 모두 자기처럼 깨어 있어야 되는 것으로 착각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잠이 들 때까지 우리가 그 방에 있어야지 그렇잖으면 소란을 피워 우리도 못 자게 하니까 왔다 갔다 하는 것보다 차라리 아버지 방에 있는 게 낫다. 어린아이와 같이 잠투정도 한다. 밤한시고 두시고 깨어나면 다시 소란을 피워서 우리를 깨우면 내가 그 방으로 가 왜 그러냐고 하면


시아버지: "나 잠이 안 와"
나: "당신 잠이 안 오는 것과 나와 무슨 상관이 있어요. 그런다고 계속해서 법석을 피우면 우리도 잠을 못 자잖아요. 하루 종일 가게일, 당신 보살피는일, 힘들었는데 저녁에 잠도 못 자게 하면 어떻게 해요? 우리가 잠이 안 온다고 당신도 못 자게 소란을 피우면 좋겠어요?"
시아버지: "{내 말엔 아랑곳도 하지 않고 명령조로} 나 목말라 물 줘!"
나: "그렇게 쉬지도 않고 앤디를 부르니 목마른 것은 당연하겠죠"
시아버지: "그럼, 앤디 말고, 하인리히를 부를까?" {아들 이름이 앤디인데 듣기 싫다고 다른 이름을 부를 수는 없지 않냐는 변명이다.} 
나: "아무 이름도 부르지 말고 잠을 자요. 당신이 이런 식으로 우리를 괴롭히면 우리 함께 못 살아요. 당신을 아는 입가진 사람들은 하나같이 우리에게 당신을 맡지 말라고 충고했어요. 당신이 이럴 줄 알고요. 그렇지만 우리는 시도를 해보기로 한 거죠. 그렇지만 이런 식으론 살 수 없어요. 알아서 하세요. 내가 보기에 당신은 양로원으로 가야 할 것 같아요. 양로원에는 일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밤중에도 당신 필요를 돌봐줄 수 있겠지만 우리는 낮에 일하고 당신을 보고 저녁엔 잠을 자야 하는데 우리를 자게 내버려 두질 않으니 다른 방법이 없어요. 다시 소란을 피우지 않는다고 약속을 하면 물을 드릴게요."


이러는 것은 어른을 대하는 방법이 아니지만 병든 시아버지는 순진한 어린아이와 같아서 이런 타협이 통한다. 그도 새로운 환경에서 사는 방법을 배워야 하니 의사의 말대로 우리는 시아버지를 어린아이 대하듯 하고 유감이지만 교육을 시켜야만 한다.  


시아버지: "그럼 나 물 안 마시고 말지"


뗑깡까지 부린다. 그런다고 내가 질 수야 없지. 


나 : "그럼 나도 당신을 안 봐요"
시아버지: "{애원조로} 내입이 짝짝 들러붙어, 물 줘, 내가 약속할게"


내가 물을 주고 내방으로 돌아와 잠을 청하려 하자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시아버지는 또 침대에 창살을 흔들어 대며  앤디 이름만 끝없이 불렀다. 나는 방금 설교를 했으니 좀 껄끄럽겠지, 건강할 땐 무슨 일이 있으면 나만 찾고 속마음은 내게 우선 털어놓더니 병이 들더니 내 아들, 내 아들 하며 자기 아들만 최고 란다. 그러면 나만 편하겠지만 앞으로 시아버지 가려운 데를 긇어 드리는 것은 날 텐데 두고 보라지 뭐! 우리는 아버지가 고칠 수 없는 가망 없는 환자?라고 생각하고 못 들은척하고 자려했지만 소란스러워 잠이 오지 않았다. 아무리 설명을 해 이해를 시키려 해도 야속하게도 소용이 없다. 건강했을 땐 우리 도움을 조금도 안 받으려고 하고 같이 살자고 해도 우리에게 부담될까 봐 혼자 살기를 고집해, 자존심이 강한 분, 이라고 한 적도 있었는데 지금 아버지는 낮이고 밤이고 우리를 못 살게 하는 막무가내다.

망설임을 책임진 뇌의 세포가 사라졌거나 망가진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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