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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옥 Dec 06. 2021

파란 눈 시아버지, 우리 집 아이 (18)

우리가 불쌍해? / 선의의 협박

3월 20일

# 우리가 불쌍해?


폴란드에서 온 65세 된 피부가 유난히도 거칠어 보이는 빌리 아저씨가 우리만 보면 동정심 어린 눈빛으로 똑같은 말을 되풀이한다. 


빌리: "나 너네들 생각 자주해, 너희들 아버지 모시기 무척 힘들지? 나 너희 들 위해 기도해. 내가 병원에서 너네 아버지를 봤는데 기가 막히더군, 쯪쯪 불쌍한 사람들 같으니!"


빌리 아저씨는 병든 시아버지가 불쌍하다고 쯧쯧하는게 아니고 병든 아버지를 돌보는 우리가 불쌍하다고 쯧쯧하는거다. 와일드한 아버지! 그 거칠음은 상상을 초월한 거여서 하늘까지 알고도 남을 거라는 이야기다. 

누군가 우리를 이해해 주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그런데 왠지 지금까지 삼일째 조용하다.  


3월 21일

# 선의의 협박

 

7시도 안돼서 시끄러운 소리가 나서 잠에서 깼다. 시아버지가 격렬하게 침대를 흔들어 대 쇳소리가 집안에 진동하고 있었다.  


나: "이렇게 이른 시간에 왜 소란을 피우세요 내가 자고 있었단 말이에요"
시아버지: "그럼 가서 자"
나: "됐어요, 아침식사 하실 때 뭘 마실래요? 커피 아님 차?"
시아버지: "{짜증이 잔뜩 난 소리로 } 아무거나 상관없어"


말린 과일로 만든 차를 끓이고 한쪽의 빵에는 치즈와 또 다른 빵에는 햄을 얹어서 갖다 주자 분주하게 먹더니 오늘은 아침부터 눈빛에 , 시비, 란 글자가 쓰여 있듯 나와 맞서 싸울 태세가 역력하다. 오늘은 나도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지 시아버지가 호락호락하게 그냥 넘어갈 상 싶지 않다. 오늘은 시아버지가 어느 정도까지 가는가 보고 싶은 호기심에 나도 같이 싸워 보기로 했다. 그러니까 나도 속으로 권투선수들이 끼는 장갑을 끼고 시아버지와 맞서 치고받고 싸울 자세를 하고 있는 것이다. 시아버지 자신이 천둥이 치고 나야 공기가 맑아진다고 했으니까! 사람은 천둥과 번개가 치고 나서 맑아진 공기와 그 고요함의 차이를 천둥이 치고 나서야 느끼는 법이니까.  


시아버지: "간호원이 언제 와?"
나: "항상 10시쯤에 오잖아요"
시아버지: "지금 몇 시야?"
나: "8시 밖에 안됐어요. 조금만 더 기다리면 와요"
시아버지: "아냐 지금이 열 시인데 간호원이 안 왔어"
나: "간호원이 꼭 와요. 걱정 마세요, 엄마 병석에 계실 때 간호원이 하루라도 안 온 적이 있나요?"
시아버지: "그런 적이 없지" 
나: "그것 보세요 , 돈을 벌기 위해 꼭 올 테니 걱정 마세요"
시아버지: "아냐 오늘은 간호원이 안와, 케닠씨한테 간호원 보내라고 전화해!" 


여덟 시인데 열시라며 억지를 쓰며 한 발짝도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케닠씨는 간호원 회사에 사장이다. 한참 말씨름을 하고 나서  


나: "정 그렇다면 내가 전화할게요 "
시아버지: "나도 전화하는 걸 들어야겠어, 전화를 이리로 갖고 와 {악을 쓰며}"
나: "전화줄이 짧아서 안돼요"
시아버지: "그럼 핸드폰을 갖고 와!"
나: "핸드폰은 앤디가 갖고 가서 없는데요, 그냥 삼십 분만 더 기다리면 되는데요"
시아버지: "여기 분위기가 이상해! 분명히 간호원이 안 올 거야"
나 : "그렇게 계속 소리를 지르면 라디오를 크게 틀어야겠어요. 당신 소리 지르는 것을 듣지 않기 위해서요."


시아버지는 있는 힘을 다해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한술 더 뜬다. 눈빛이 범죄인의 눈빛처럼 위험해 보인다.

물 잔, 그릇, 약병 등 탁자 위에 놓인 것들은 전부 집어 벽이고 문에다 던진다. 그러면서 오른손으로 침대 창살을 잡고 침대에서 금방이라도 뛰어내려 나마저 팽개칠 기세로 격렬하게 움직인다. 그 장면이 나를 무척 공포스럽게 하고 슬프게도 했다. 저렇게 흥분하다 정말 일어나면 어쩌나 겁이 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일어나려고 발버둥 치는 모습이 안쓰러워 펑펑 울고도 싶었다.

나는 모든 감정 다 누르고 태연한 척하면서 얼른 라디오 볼륨을 낮추었다. 필요 이상으로 시아버지를 자극한 것을 후회하지만 내가 지금 지면 시아버지를 놓칠 것 같다. 


나: "라디오 때문에 당신 목소리를 못 들었어요. 다음에도 소리 지르면 라디오를 크게 틀겠어요." 
시아버지: "라디오를 더 크게 틀어! 이웃들도 음악소리를 듣게"
나: "당신 아내는 병이 들었어도 조용하고 착하던데, 참을성도 많고..."
시아버지: "내 아내 얘기하지 마! 내 아내 얘기하지 마! 내 아내 얘기하지 마!"
나: "당신 아내한테는 배울 점이 많았지요"
시아버지: "내 아내한테 배울게 많고 말고, 배울게 많고 말고!"


여전히 정신 나간 사람이 소리 지르듯 악을 쓴다. 정상적이고 사람다운데라고는 없는 모습이다. 그때 엘리 할머니가 왔다. 그러자 화살이 만만한 할머니에게 돌아가 꽂힌다. 


시아버지: "누가 당신을 보내서 왔어?"
엘리: "나 스스로 왔지 누가 나를 보내서 와?"
시아버지: "아무것도 의미가 없어! 될 대로 되라지"


엘리가 시아버지를 진정시키려 애를 썼지만 시아버지는 하루 종일 얼굴이 붉어가지고 흥분해 있었다.

오후에 아들 앤디가 집에 오자  


시아버지: "내 말 좀 들어봐! 나는 사단의 자식이야! 나는 옛날에도 과격했는데 병 때문에 더 심해졌어 , 기옥이 집에 오면 먼저 내방으로 오라고 해"


내가 집에 발을 들여놓기도 전에 시아버지가 나를 부른다. 

내 눈치를 보며 아침과는 달리 조심스럽게 그리고 인내심 많은 어른처럼 말한다.  


시아버지: "기옥 이리 와 봐 너 나한테 화났어?"
나: "이번은 제가 화가 나고 안 나고 가 문제가 아니에요. 이번에는 사과니 화해니 그런 얘기 꺼내지도 말기로 해요. 우리 해결책을 찾아야 해요 , 제가 지금처럼 음식을 만들고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하고 하루에 몇 시간씩 당신을 위해서 하던 일을 계속할게요. 그리고 제일이 끝나면 저는 우리 집으로 갈게요. 병원에 계실 때도 혼자 계신 적이 많았죠? 어떤 간호원이 항상 24시간 환자 옆에 붙어 있어요?"
시아버지: "네 말이 맞아!"
나: "집에선 잠을 잘 자니까 저녁엔 집에 가서 잘게요. 저 이런 식으론 살 수 없어요. 당신이 병원에 계실 때 찾아간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당신이 고슴도치처럼 가시가 많이 달린 사람이라며 어떻게 아버지를 모시려고 그러느냐고 했어요. 당신이 변하지 않으면 함께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도 했고요. 세 가지 선택권을 드릴게요, 당신이 있던 병원에 딸린 양로원 아님 여기서 가까운 화이박 양로원 아님 예넼씨가 지내던 양로원 중에 한 곳을 선택하세요. 당신 아들 앤디까지도 저한테 아버지 같은 사람을 맡으려고 했다며 저더러 순진하다고 했어요. 유감이지만 어쩔 수가 없어요. 당신을 양로원으로 보내도록 알아봐서 곧 결정을 해야겠어요, 좋은 마음을 가지고 시도해 본 건데 당신을 언제까지 모시겠다고 사인한 것은 아니니까요. 모든 게 당신께 달렸어요. 잘 알겠지만 우리 부모는 모두 로스앤젤레스에 살고 여기엔 부모 중 당신만 살아 있어서 잘해 드리고 싶었어요, 그렇지만 할 수 없죠 뭐! 지금 나 집으로 가서 자고 내일 아침에 와서 아침식사를 차려 드릴게요. 앤디는 당신께 양보하겠어요. 앤디는 그러니까 여기서 잘 거예요."
시아버지: "그러는 게 부부관계에 안 좋아"
나: "모든 게 당신께 달렸어요. 당신이 변하면 내가 다시 올 거예요. 안녕히 주무세요."


나는 일부러 시아버지에게 그분이 잘 아는 양로원만 구체적으로 언급해 양로원으로 갈 수 있다는 게 쉽게 상상이 가게 했다. 그러니까 선의의 협박을 한 셈이다. 그리고 타이르기도 해 앞으로 너무 우리를 힘들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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