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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옥 Dec 09. 2021

파란 눈 시아버지, 우리 집 아이 (22)

레슬링 선수

3월 31일

우리는 지금도 아버지에게 매일 아버지의 뇌를 자극하게 하기 위해 대화를 하면서 그날이 몇 년 몇 월 며칠인지 묻는데 아버지는 시간에 대한 관념도 관심도 전혀 없다. 오늘이 몇 월 며칠인지 그걸 왜 알아야 하는지 이해하려 들지도 않고 기억하려 하지도 않는다.

오늘로 삼일째 기저귀를 찢었다. 앤디는 아버지 오른손에 두툼한 겨울장갑을 끼워 주었다 뭉툭한 장갑을 끼면 기저귀를 못 찢을 것 같아서, 하지만 우리가 기대했던 것처럼 장갑을 벗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장갑을 끼면 옛날 유머감각이 발동하여 권투선수처럼 포즈를 취하면서 환자들이 잡게 한 삼각형을 치며 재밌어했고, 앤디도 남은 다른 장갑을 끼고 서로 권투 연습을 하곤 했다. 

시아버지가 젊었을 때엔 레슬링 선수였다. 시아버지가 살던 프랑스 국경이랑 붙어있는 도시, 사부뤽큰이란 도시에서 우승도 할 정도로 잘했지만 결혼하고 나서 시어머니가 말려서 그만두었단다. 그래서 키는 작은데도 목이 무척 굵었고 (와이셔츠 넘버가 독일 치수로 43이었다.) 맞는 와이셔츠가 시중에 없어 특별 사이즈나 맞춰 입어야만 했다. 얼마 전만 해도 젊고 키가 큰 사람도 금방 잔디밭에 눕히고 꼼짝도 못 하게 만들었다. 지금도 왼쪽 귀가 오른쪽 귀보다 훨씬 두껍다. 레슬링을 하면서 상대 선수가 시아버지의 왼쪽 귀를 바닥에 대고 눌러 됐을 테니까,

오후에 장갑이 바닥에 떨어져 있어서, 


나: "이제 권투 안 해요?"
시아버지: "아니 이제 안 해, 내가 앤디를 K.O 승으로 이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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