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기옥 Dec 16. 2021

파란 눈 시아버지, 우리 집 아이 (28)

옛날의 시아버지가 그립다 / 경찰을 부를까

5월 14일  

시아버지는 나를 조심스레 쳐다보며 눈치를 보는 걸 보니 시아버지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알고 있다. 우리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아버지 방을 들여다보며 무엇이 필요한가를 살피니 사실 아버지가 우리를 부를 이유는 거의 없다. 아버지가 자기 아들을 바라보며  

시아버지: "내가 나쁜 짓을 했어"
앤디: "무슨 나쁜 짓을 요?"
시아버지: "기저귀를 찢었어!"
앤디: "언제요?"
시아버지: "조금 전에 , 가려워서"

우리들의 대화는 보통 이렇다. 

지금도 우리가 아버지 얘기를 사람들한테 잠깐만 털어놓으면 열이면 열 모두 이구동성으로 그렇게 어떻게 사느냐며 아버지를 양로원으로 모시라고 한다. 하지만 우린 그렇게 쉽게 기권하지 않을 것이며 해결책을 찾아 지금보다 조금 덜 힘들게 아버지랑 함께 살게 될 날이 오게 되기를 손꼽아 기다려본다. 

병들기 전에 시아버지가 얼마나 좋은 사람이었는가를 기억하는 것은 극성맞은 지금의 시아버지를 이해하고 견딜만하게 해 준다.. 99년에 내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매일 나를 찾아왔고 내게 선물하고 싶어서 잠옷을 사주고 한국 간이식당에 가서 오징어 볶음밥을 사서 담요로 똘똘 싸가지고 와서 내게 따뜻한 음식을 먹게 했고 만약을 위해 작은 전자레인지까지 갖고 와서 음식이 차면 덥혀 먹으라고 할 정도로 자상했다. 병원비용에 쓰라고 목돈도 주고 내 얘기만 나오면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좀 과장하자면 , 길가는 사람도 붙잡고 내 얘기를 하고 싶어 할 정도로 나를 사랑했다. 한 번은 방문객에게 눈물을 글썽글썽하면서 이런 좋은 며느리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하다고 그러더란다. 

시아버지는 우리가 보이는 조그만 성의에도 항상 고마워했고, 내가 운전면허증이 없을 때 남편은 가끔 인상을 찌푸린 적이 있어도 시아버지는 전혀 투덜거리지 않았다. 나를 데리고 다니는 게 유명인사를 호위하는 바디 가드처럼 특권인양 생각하고 언제나 정각에 나를 데리러 오곤 했다. 그렇게 내게 시아버지가 보인 사랑이 진정한 가족이고 애정의 표시가 아니겠는가? 그건 나의 부모가 내게 보인 그것보다 더 큰 것이었다. 나는 팔 남매 중 다섯 번째여서 부모의 관심과 애정이 공평하다고 쳐도 팔 등분으로 나뉜 그런 사랑을 받았으니까 , 하지만 지금 나는 시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유일한 며느리이다. 물론 나 역시 거의 매일 먹을 것을 해주고 시어머니가 아파 누워 있었을 때에는 청소와 식사를 맡아했고 최선을 다했다. 아직 장담할 수는 없어도 아버지가 오 년을 더 누워 산다 하더라도 변덕 없는 나는 지금처럼 변함없이 돌볼 것이다. 시아버지는 지금 어느 때보다도 더욱 우리를 필요로 하니 앞으로 시아버지가 조용해지면 다행이고 아니면 우리가 유스트 돼서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에 두 손 들고 항복하지 않을 것이다. 기차역 주위에 사는 사람들이 그곳에 오래 살다 보면 소음에 익숙해져 포기하고 살듯이 우리도 시아버지가 내는 소음에 익숙해지기를 바란다. 



5월 15일

# 경찰을 부를까

  

시아버지가 삼십 분 정도 혼자 있었고 엘리 할머니가 왔다. 시아버지가 겁에 질려 어쩔 줄 몰라하더란다.  

시아버지: "엘리, 여기 모두 너무 조용해! 사람 냄새가 안 나! 나 혼자 있었어, 다음에도 나를 혼자 있게 두면 나는 경찰을 부를 거야! 내가 나쁜 짓을 하면 나를 혼자 있게 해, 하지만 난 혼자 있을 수가 없어, 기옥이 가게 문 닫고 당장 집으로 오라고 해요"

오해다. 아버지가 나쁜 짓을 한다고 일부러 혼자 둔적은 한 번도 없는데 우리가 자신을 벌주는 것으로  생각한 모양이다. 

작가의 이전글 파란 눈 시아버지, 우리 집 아이 (26)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