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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옥 Dec 16. 2021

파란 눈 시아버지, 우리 집 아이 (29)

잔디가 자라는 소리를 듣는 여자 / 팔씨름

5월 18일


시아버지: "와, 딱 소리가 났어!"

기저귀를 찢으면서 어떤 성이라도 점령한 듯 함성을 지른다. 기저귀 비닐이 찢어질 때 나는 소리를 묘사하면서 말이다. 

오후에 계속 우리 이름을 불러 앤디가 아버지 방으로 갔다. 

시아버지: "나 기저귀 또 찢었어!"
앤디: "그럼 내가 화를 낼 거예요"
시아버지: "아냐 이번엔 거짓말을 했어, 그래야 네가 내 방으로 오니까!"

앤디 친구 로버트가 금발의 머리를 가진 아내 산드라와 함께 왔다. 산드라는 나랑은 파장이 맞지 않아 삼십 분도 같이 있고 싶지 않은 여자다. 그리고 언제나 자기 말이 맞다고 주장해 사람을 피곤하게 한다. 이 나라 사람들은 과장법을 써서 뭐든지 자기 말이 맞다며 잘난척하는 사람을 보고 저 사람은 잔디가 자라는 소리도 들을 거라며 빗대 말한다. 다른 사람이 그건 불가능하다고 해도 이런저런 이론을 피며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그런 사람, 그러니까 자기가 팥을 콩이라고 우기면서도 팥을 팥이라고 하는 다른 사람의 이론을 묵사발을 만드는 그런 스타일의 사람들 보고 하는 말이다. 

나 : "진정제도 시아버지한테는 안 듣나 봐! 계속 말썽을 부려"
산드라: "그럼 그 진정제를 네가 먹 지그래! 그러면 시아버지가 말썽을 부려도 상관없이 느껴질 테니까"

그러면서 산드라가 재밌는 얘기를 했다.

한 남자가 설사를 해 자주 바지를 더럽혀 의사한테 갔단다. 의사가 설사에 대한 처방을 해줘 약국에 갔는데 약사가 잘못해 설사약 대신 신경안정제를 줬다. 그 남자는 신경안정제를 먹었고 또 의사에게 갔다. 의사가 약이 도움이 됐냐고 묻자 그 남자는 대답했다. <그럼요, 설사는 지금도 하는데 그게 그렇게 속이 상하거나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아요. > 하더란다. 설사는 여전히 하지만 신경안정제덕? 에 설사하는 것도 불편하지 않다는 얘기다.  그러니 내가 안정제를 먹으면 시아버지가 우리를 힘들게 해도 상관없게 여겨질 것이라는 것이다. 


5월 21일

# 팔씨름

  

시아버지가 병이 든 이후로는 얼굴이 항상 굳어 있어 표정이 없거나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처럼 찡그리고 있다. 본인이나 우리가 우스개 소리해도 마찬가지로 웃지 않고 입모양은 언제나 한문으로 일자 모양을 하고 있다. 시아버지를 웃게 하는 딱 한 가지 방법은, 아버지와 팔씨름을 하면 절대로 지지 않으려고 힘을 주는데 그때 힘이 세다고 칭찬하면서 져 주는 것이다. 그러면 언제나 입을 함박꽃처럼 벌리고 웃는데 특히 틀니를 뺏을 때 웃으면 정말 귀여워서 우리가 세 살짜리 아기를 보고 있는 게 아닌가 가끔은 착각하곤 한다. 우리가 아버지를 모시고 나서부터는  노인네들을 보면 예쁘고 귀여워 보인다. 노인네들을 모셔보지 않은 사람들은 아마 이런 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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